[가리사니] 신자유주의 과거와 미래
김영삼 정부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인식은 별로 진전이 없어서 대체로 신자유주의를 레이건-대처식 신보수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재야 진보세력이 김대중 정부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면서 신자유주의와 코퍼러티즘(조합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4·13 총선에서 경제정책에 대한 합리적 논쟁은 실종되고 오히려 낙선운동만 부각되면서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깊어진 것도 물론 이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논쟁의 구도
미국에서 법인자본의 금융화 및 구조조정이 진점됨에 따라 성장기 경제정책인 케인스주의는 불황기 경제정책인 새 케인스주의로 `개혁'된다. 50~60년대 케인스주의는 보수주의적 우파를 통합함으로써 자유주의적 중도좌파의 헤게모니를 실현한다.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다”라는 닉슨의 선언은 이를 상징한다. 그러나 70년대 케인스주의의 헤게모니가 위기에 빠지면서 화폐주의를 매개로 신우파, 신보수주의가 등장하고, 80년대 중반 신중도좌파, 신자유주의의 새 케인스주의가 출현한다. 90년대 신보수주의는 또다시 신자유주의로 수렴하는데, 이를 넓은 의미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를 수 있다.
전후 유럽에서 자유주의는 사민주의에 의해 대표되는데, 특히 독일의 경우 59년 고데스베르크 대회에서 코퍼러티즘으로 변질된 사민주의는 보수주의의 포스트파시즘적 `사회적 시장경제론'을 수용하기까지 한다. 90년대 이후 출현한 유럽식 신자유주의는 금융세계화에 순응하려는 현대화된 사민주의로서 `사회자유주의'라 불린다. 블레어의 `제3의 길'의 논거로 제시되는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자본주의'란 클린턴이 제시하는 새 케인스주의의 유럽식 변종이다. 클린턴과 블레어는 범대서양적 규모에서 신자유주의의 초민족화를 상징하고 있다. 97년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태평양지역도 초민족적 신자유주의에 통합되고 있는 중이다.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수렴은 우파와 중도좌파의 분열 가능성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생산한다. 극우 보수주의로서 인민주의 또는 커뮤널리즘(코뮌주의, 공동체자치주의)이 우파에서 분리되고, 자유주의 좌파로서 진보주의 또는 코퍼러티즘(조합주의)이 `좌파의 좌파'를 자처하면서 중도좌파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 가능성일 뿐인데, 예를 들어 블레어에 대한 라퐁텐의 반대나 조스팽의 유보는 신자유주의와 코퍼러티즘의 절충이 계속 쟁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쨌든 진보주의적 경향의 자유주의 좌파가 인민주의적 경향의 극우 보수주의와 연대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유럽과 일본의 요구로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의 `뉴 라운드'에 대한 반대 투쟁은 미국의 방조라는 조건 속에서 복잡 다양한 정치적 경향들이 수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벨 에포크와 파시즘의 위험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이런 논쟁 구도는 언뜻 보아도 바이마르 시대 독일의 상황과 유사한데, 세계사적으로 볼 때 이는 우연이 아니다. 양자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일반적 위기가 전개되면서 자유주의의 위기와 보수주의의 예외적 형태로서 파시즘의 위험이 동시적으로 발생한다는 정세적 공통성을 갖는다. 특히 `벨 에포크'(일반적 위기를 구성하는 두차례 대불황 사이의 경이로운 호황기)에 중간층과 노동귀족이 몰락하면서, 불가능한 개혁 전망에 대한 좌우의 비판이 전개되고 진보주의적 코퍼러티즘과 인민주의적 커뮤널리즘이 연대하는 `원한의 정치'가 분출한다면, 부르주아지가 위기에 빠진 자유주의를 파시즘으로 대체할 예외적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윤소영/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 spinmax@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