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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평점 :
오랜만에 내 스타일의 책을 만났다. 우리 선인들의 지혜, 멋들어진 한문 문장, 18세기 조선, 절제 속에 배어나오는 분방함 등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한 권에 다 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글들을 보기 힘들어 삭막했다. 우리 선인들의 이야기를 이처럼 멋들어지게 조탁해낸 글들이 툭툭 튀어나오니 이제 책 읽을 맛이 난다.
<백이전>을 일만번 읽고도 까먹는 건망증을 무서운 노력으로 이겨나간 김득신, 굶어죽은 동생을 향해 울부짖는 이덕무, 과거시험대필꾼이면서도 존경받고 산 노긍, 산과 내, 온갖 꽃과 대나무 천그루, 도서 천 권과 애첩이 따라주는 동동주가 있는 마이 스윗 홈을 그리던 허균, 비가 올 듯하자 벗들과 말타고 세검정에 올라 술 한 잔에 폭포수의 장관을 감상하던 정약용...
책을 읽으면 그들이 마치 눈앞에 살아오는 듯하다. 그들이 대면했던 삶이 내게도 느껴지고, 그들의 섬세함과 기발함과 장난스러움과 슬픔과 의분이, 그들이 운명을 향해 쟁투하던 기개가 내 가슴을 친다.
특히 세검정에서 술 한 잔 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를 찾아 서슴없이 말 달려간 정약용의 모습은 진정한 풍류객의 자세를 보여준다. 이 책에는 바야흐로 민물매운탕의 계절을 맞아 정약용이 조정에서 `땡땡이`를 치고 뚝섬에서 배타고 양수리에 나가 물고기 잡아 매운탕 끓여먹는 이야기도 나온다. 진정한 풍류객은 아무 때 아무 데나 가서 놀지 않는다. 가장 적절한 장소에 가장 적절한 때를 골라 노닌다.
선조들의 이야기가 특별히 살가운 이유는 현실감 혹은 감정이입 때문이 아닐까. 바로 이 땅에서 나의 선조들이 살았던 이야기이기에 더욱 리얼하게 느껴지고 나도 그럴 수 있을 듯한 자신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