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책을 읽고 서평이나 독후감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은 웬일인지 모르겠다. 늘 그렇듯이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았던 한해였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많은 책을 (특히 소설을) 읽었다. 이것은 다행인가, 불행인가. 올해 읽은 책을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간다. 이제 곧 한 살 더 먹는다.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이 남았다.
1. 카프카
올해는 내 사주에 '병화'가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시작했다. 큰 불을 뜻한단다. 카프카의 사주에도 병화가 들었단다. 읽은 작품이 없어도 친밀감을 느꼈던 이유가 이것이었을까? 내친김에 미뤄왔던 카프카 장편 읽기에 도전했다. 병화때문인가? 차마 남을 태울 수 없어서 작가가 자신을 태우기 위해 쓴 작품으로 읽혔다. 이것은 아무런 근거도 댈 수 없는 뜬구름 잡는 식의 감상일 뿐. 사실 나 같은 무지렁이가 카프카를 한 번 읽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알겠는가? 최근, 독서모임에서 카프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침'으로 읽는 관점을 접했는데, 흥미로웠고 그럴듯했다. 다른 번역본으로 다시 읽어볼 일이다.
2. 나쓰메 소세키
전부터 읽고 싶었던 작가다. 몇몇 장편이 남긴 했지만, 올해는 소세키를 읽어서 좋았다. 소세키는 내게 내용과 상관없이 읽을 때 마음을 편안하고 흐뭇하게 만드는 작가다. 메이지 시대, 조국 근대화의 사명과 문학에 대한 개인적 취향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해야 했던 소세키.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삶은 결말이 성공적이라 할 수 없지만, 소세키의 삶은 나름 잘 버텨낸 삶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의외로 좋았던 작품은 데뷔작 <고양이>와 <이백십일>이라는 단편이었다. 우울할 때 남몰래 꺼내서 키득거리며 읽기에 좋다.
3. 일본 문학
소세키 소설 두 편과 함께 독서모임에서 읽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몇몇 단편들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 선생의 통찰. 현재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사태들은 그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처음부터 그러한 것이 아니라, 어느 역사적 시점에 부자연스럽게 끼어든 일들이라는 것. 시점과 문체와 개인의 내면과 같은 근대문학의 담론도 그러하다는 것. 원래부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은 없다는 말씀.
4. 프랑스 문학
다작의 작가 발자크와 에밀 졸라가 버티고 있어 공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두 작가의 작품은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이 많이 남았다. 남은 19세기 프랑스 문학은 내년으로 미룬다. 올해 읽은 프랑스 문학의 압권은 단연 <보바리>다. 문학의 수도승이 써내려간 치밀한 묘사와 구성은 일종의 명품 수공예를 연상케 했다. 처음에 다소 지루하다고 불평하며 감히 플로베르를 몰라봤다는 것을 사죄드린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제르미날>. 에밀 졸라와 같은 문제의식을 괜찮은 장편으로 써낸 한국 작가가 없어서 아쉽다. 조세희의 <난쏘공> 정도가 있을 뿐. 작년에 읽은 <목로주점>과 <돈>에 이어서 내년에는 <나나>, <인간 짐승>과 같은 작품으로 이어지겠다.
5.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드디어 우리 도선생님과 톨선생님의 장편을 읽었다. 혹은 읽어버렸다. 사실 이 작품들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훌륭하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겠다 싶었다. 특히 <전평>과 <까라마조프가>는 압도적이었다. 사실 올해의 독서는 이 두 편의 소설을 읽었다고 적고 넘어가도 될 것인데, 적다보니 말이 길어진다. 톨스토이는 저 높은 곳에서 역사와 세상과 인간 군상을 한눈에 조망하게 해준다. 한데 그렇게 조망하는 세계는 결코 질서정연하지 않다. 특히 전쟁터에서의 주인공들의 헛짓거리란 말도 못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작품 속에서 이런 인간 쓰레기들을 끌고 가서 도대체 뭘 어쩌려나 싶은데, 결국엔 구원을 말한다. 한데 그것이 전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높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넓다. 톨스토이는 얼마큼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디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까?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다.
6. 러시아 문학
올해의 발견이라 한다면 투르게네프와 레스코프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작가들이야 작품을 읽지 않아서 그렇지 워낙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두 작가는 특히 레스코프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주인공이 맞는 허무하면서도 당연해 보이는 비극적 결말, 인상에 남는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맥베스 부인>은 강력한 여성 캐릭터를 내세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러시아 소설에 이런 작품도 있었나 싶었다. 레스코프의 <광대 팜팔론>이나 <왼손잡이>와 같은 다른 작품이 기대된다. 이것은 내년으로 넘긴다.
7. 영국 문학
올해의 독서에서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했던 작품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영국 작가들이 모여서 '이런 것을 쓰자'라고 담합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한마디로 이들 작품들은 잃어버린 핏줄과 돈줄을 찾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그 비중이 크든 작든 이런 이야기가 반드시 등장한다. 알고 봤더니 너랑 나랑 사촌이래. 알고 봤더니 주인공이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래. 분명 이에 대한 연구도 되어 있을 것이니, 한 번 찾아봐야겠다. 한 편을 꼽자면 <테스>다. 지인이 예전에 이 작품을 두고 '자존심을 지킨 사랑'이라 평한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평이었다. 다음에 다시 읽는다면 백석의 번역으로 보고 싶다.
8. 미국 문학
얼마 읽지 않은 미국 문학이지만 <모비딕>을 읽었기에 그것으로 되었다. 1951년이라는 연도를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되었다. 당대에 읽히지 않은 것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역자도 말하고 있듯이 이 소설은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바다와 같다. 바다와 고래와 인간의 육체를 묘사하는 물질성에서부터 철학과 영혼과 종교를 말하는 형이상학까지, 거대하다. 올해 읽은 책은 첫째 <전평>, 둘째 <까라마조프가>, 셋째 <모비딕>이다. 이 세 작품과 같은 작품을 앞으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홍 글자>의 주인공은 <맥베스 부인>과 더불어 올해의 잊을 수 없는 여성으로 꼽는다. <톰 아저씨>의 경우 당대 가장 첨예한 문제였던 노예제에 관해 작가가 할 수 있는 말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작가들도 이 시대의 첨예한 사안에 대해 더 많이 발언하기를 기대한다.
9. 독일 문학
독일 문학은 많이 읽지 못했다. 사실 도서관에서 빌려다놓고 조금 읽다가 포기한 작품이 몇 편 있다. 파우스트도 1권만을 겨우 읽었을 뿐이다. 그나마 <미하엘 콜하스>라는 신선한 작품을 만나 즐거웠다. 카프카의 3대 장편을 읽은 것으로 독일 문학의 아쉬움을 달랜다.
한편 올해는 괴테가 제출한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 많았다. 거기에는 조영일의 <세계문학의 구조>라는 책을 읽은 것도 한몫했다. 소세키와 같은 국민작가의 부재, 한국문학의 위상과 번역의 문제, 세계문학 전집의 유행과 효용의 문제 등. 내가 답을 낼 수는 없지만 이런저런 생각은 많았다.
10. 기타
주로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들이다. 우선 제발트와 존 버거를 알게 된 것이 수확 중의 수확이다. 이들 두 작가는 내 독서 행태에 대해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렵고 재미없다고 쉽게 포기하고 말았던 지난 독서 경험들, 반성한다. 평생에 걸친 경험과 생각을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쓴 작품을 단 몇 시간만 읽고 뭔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놓아버렸던 것이다. 제발트와 존 버거는 읽을 때는 힘들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은 작가가 되었다. <종이 동물원>과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훌륭한 sf를 알게 된 것도 좋았다고 한마디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