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욱이와 마주 앉아 곰팡이 슨 속을 씻어 내리며, 동옥이도 위로해주어야겠다는 원구의 계획대로 그날 그들 셋은 술과 통조림을 앞에 두고 오랜만에 즐거웠다. 그런데 얼마 후 원구가 동욱을 찾아가 보니 동욱 남매는 보이지 않고 새로 집주인이 된 사나이가 동욱은 외출한 채 소식 없이 돌아오지 않게 되었고, 그 뒤 동옥 역시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는 소식을 전한다. 원구는 우산을 쓴 채 동욱 남매가 살던 집을 나온다. 손창섭은 <비 오는 날>의 결말을 이렇게 쓰지 않았다. 진짜 결말은 이렇다. 보자기를 싸 들고 간 원구는 사라져버린 동욱 남매의 소식을 듣고 발길을 돌려 나오다가 다시 돌아가 주인 사나이에게 보자기에 싼 물건을 준다. 원구가 친구와 함께 먹으려고 가져간 술과 통조림은 작품에 이름도 없이 잠깐 등장하는 웬 사나이의 차지가 되고 만다. 그 대목을 옮겨보면 이렇다. '한 손에 보자기 꾸러미를 들고 한 손으로는 우산을 받고 선 채, 원구는 사나이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었다. 원구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몇 걸음 걸어 나가다가 되돌아와 보자기에 싼 물건을 끌러 주인 사나이에게 주었다. 이거 원, 이거 원, 하며 주인 사나이는 대뜸 입이 헤 벌어졌다.' 

  이를테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손에는 더는 소용없는 보자기를 들고, 또 한 손에는 우산을 받고 선 채 비를 맞으며,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라고. 그러니 그 보자기를 앞에 선 모르는 사람에게 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어쩌면 손에 들고 있는 보자기가 사실은 소용없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일지 모른다고. 


2. 

  <미해결의 장>에는 주인공과 광순이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아니, 나오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광순에게 삼백 환을 받아든 나는 도넛 집에 가서 '젠자이(팥고물을 한 떡)'를 주문한다. 그런데 젠자이가 나오는 동안 나는 '불시에'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쌀밥과 김이 떠오르는 만둣국을 생각한다. 나는 주문한 떡은 먹지도 않고, 만둣국에 꼭 밥을 먹어야 한다며 젠자이 값으로 백 환짜리 한 장을 내놓고는 도넛 집을 나온다. 백반 한 그릇이 필요한 나는 몇 군데 기웃거리다가 마침내 어떤 양식점으로 들어가 메뉴에 '돈까쓰'라고 적힌 글자를 본다. 나는 '그 발음이 내게 알맞은 것 같아서' 돈가스와 백반을 먹어보고 싶은데, 가격이 삼백 환이다. 일하는 소녀에게 가격을 한 번 더 확인한 나는 백 환을 더 장만해 가지고 오겠다고 일러놓고 밖으로 나온다. 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되돌아가 소녀에게 십 분 안으로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한다. 소녀뿐 아니라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은 물론이다. 광순의 '오피스'로 가 광순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백 환을 더 청한다. 광순은 오래간만에 돈가스 맛을 좀 보겠다며 나를 따라나선다. 그런데 양식점의 그 소녀가 보이지 않는다. 몸이 불편해서 방금 돌아갔단다. 나는 실망하여 광순을 떠밀 듯이 밖으로 나온다. 결국 둘은 다른 음식점으로 가서 비빔밥을 먹기로 한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광순은 내게 묻는다. 대체 날 뭐 하러 찾아오는냐고, 나한테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너는 왜 사느냐? 하는 물음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끝내 등장하지 않는 비빔밥과 같은 것이다. 아니, 끝내 등장하지 않는 비빔밥을 먹기까지의 그 어이없고 우스꽝스러우며 서글픈 에피소드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쉽게 대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칫 그 대답은 우리가 말하려는 그 삶이란 것에 비해서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작 비빔밥 먹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고, 난데없이 '너는 왜 사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작가의 솜씨가 기가 막힌다.


3.

  소년은 점직한(부끄럽고 미안한) 듯이 그러고 한쪽 손에 든 고무신을 뒤로 슬며시 감추었다. 그러나 만기는 그제야 눈치를 채고 소년이 들고 있는 고무신을 걸으면서 유심히 보았다. 그것은 달아서 뒤꿈치가 터지고 코뚜리가 쭉 찢어져서 도무지 발에 걸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만기는 가슴이 찌르르 했다. 전차를 타기 전에 그는 소년에게 고무신부터 한 켤레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근처에는 고무신 가게가 눈에 뜨이지 않았고 때마침 전차가 눈앞에 와 멎어서 그대로 이내 차에 오르고 말았다.

  이를테면 <잉여인간> 속 '그제야' 눈치 챈 고무신, 또는 '때마침' 도착한 전차와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나 '그제야' 눈치를 채고, 언제나 '때마침' 눈앞에 와 멎은 전차에 오른다. 뭔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다음이고, 필연이라고 믿었던 것은 사실 우연의 연속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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