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의 독법을 모를 뿐더러 눈썰미도 없어서 영화를 볼 때 특정 장면이나 소품이 눈에 들어오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몇 년 전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신발이었다. 그리고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신발은 내 기억에서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을 되살아나게 했었다.
이송희일 감독은 이 작품을 자신의 마지막 퀴어 영화로 선언한 것 같은데, 나는 이 영화의 주제를 퀴어가 아니라 학교폭력으로 읽었다. 지금까지 학교폭력이나 왕따 문제를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보지 못했다. 특히 왕따를 당하던 기택이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과 한패가 됨으로써 폭력에서 벗어나는 대목은 사실적인 설정이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나는 비 오는 날 이 영화를 봤었고, 그 후 몸살이 났다.
영화의 주인공은 용주이고 극중에서 그는 게이다. 영화는 용주와 기웅의 로맨스가 학교폭력과 함께 내용 전개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다만 나는 신발에 주목하다 보니 이 영화를 기웅이 자아와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성장담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에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기웅이 되었다. 자아 확립과 관련해 기웅의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버지의 부재이고, 다른 하나는 성적 정체성의 혼란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어김없이 신발이 등장한다. 물론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나의 오독일 수 있다.
기웅의 아버지는 해고노동자로서 거리에서 투쟁 중이다. 당연하게도 기웅은 아버지를 찾아 헤맨다. 나중에 기웅을 만난 아버지가 건네는 선물이 바로 신발이다. 왜 하필 신발일까? 신화 속에서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을 주는 사람이다. 기웅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고, 그런 기웅에게 아버지는 신발을 선물한다. 선물 받은 신발은 바로 기웅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아버지가 자신을 대신해 보낸 분신일 수도 있겠다. 신화에서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곧 내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같기 때문이다.
용주와 기웅이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면서 용주가 기웅의 신발을 살짝 밟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예전에 기웅이 잃어버렸던 신발을 용주가 보관하고 있다가 기웅에게 가져가라며 던져주는 장면도 등장한다. 나는 이 두 장면을 기웅은 애써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는데, 용주는 그것을 기웅에게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다는 상징으로 읽었다. 신화 속에서 신발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해주는 신표로 등장한다. 그 신표를 용주가 밟으면서 통성명을 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그 신표를 용주가 가지고 있다가 던져준다. 이 장면들은 기웅이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이며, 나중에는 용주에게 마음을 열 것임을 짐작하게 했다.
맞다. 영화를 보며 떠올랐던 책은 바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다. 5권까지 나온 이 시리즈 제1권의 첫 번째 꼭지가 바로 신발 이야기다. 외짝 신 사나이 이아손, 칼과 가죽신을 신표로 아버지를 찾은 테세우스가 주인공이다. 덤으로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와 콩쥐의 꽃신도 등장한다.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렇듯 끝이 없었다. 신발은 자살하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벗어놓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책에서 이윤기 선생은 묻는다. '우리는 혹시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닌가?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잃어버렸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사람은 신발 한 짝 이상의 어떤 것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선생은 또 이렇게 단언하기도 한다. '자신을 알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을 향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문은 누구나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의문을 제기한 다음에는 그 답을 모색하는 경험이 뒤따라야 한다.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의 답을 모색하는 사람은 신화의 주인공,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의문만 제기할 뿐 그 답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은 신화의 조연, 자기가 사는 모듬살이의 조연에 머문다.'
이윤기 선생에 따르면 기웅은 영화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자기 삶의 주인공은 된 것 같다. 그리고 기웅이 주인공이 되는 길에는 늘 친구 용주가 함께 있었다. 영화는 말한다. 친구가 없으면 이 세상은 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