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지나의 다리 이정애 컬렉션 1
이정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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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씨아이에서 issue collection으로 발행되는 만화의 면면을 보자면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을 소재로 여러 명의 작가가 하나의 주제로 다양하게 풀어내는 연작시리즈 순애보를 필두로 몇 권의 중편 시리즈와 단편집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발행되는 이정애 컬렉션이 반가운 이유는 더 이상은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는, 꽤 오래전 절필 선언을 한 안타까운 작가의 복간작품이라는 데 있다.

이정애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열왕대전기]나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을 집필 중에 절필 선언을 한 탓에 그 작품들의 결말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예전에 발행된 작품을 다시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완결을 볼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 되겠지만.

이번에 발행된 이정애 컬렉션의 1권은 [키 큰 지나의 다리]라는 작품이다. [열왕대전기]나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을 제외하고는 긴 호흡의 작품이 드문 탓에 유난히 중 ․ 단편 작품이 많은 이정애 작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간택(?)된 작품은 솔직히 좀 예상 밖이었다. [키 큰 지나의 다리]라니……. 어떤 만화였지? 오래전 만화를 다시 읽을 때면 문득 ‘어? 그게 무슨 내용이었지? 결말은 어땠더라?’ 하는 가물가물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이 작품 역시 그랬다. 허나, 이 작품을 다시 읽은 후에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이 10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작가 자신도 새롭게 느껴질 만큼 [키 큰 지나의 다리]에는 그의 작품의 원형이랄까, 소재랄까 싶은 전형적인 것들이 그 어떤 작품보다도 뚜렷하게 담겨진 작품인 듯 하다.

20XX년 여름, 퉁구치(서울). 밀수와 갈취, 매매춘이 기승을 부리는 혼돈의 국경도시를 배경으로 퉁구치 밀매조직의 2대 세력 가운데 하나인 족제비파의 두목 지나와 지나의 오른팔이자 족제비파의 실질적인 두뇌 한, 그리고 그들 사이에 르포라이터 에블린이 개입하게 되면서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형과 다리를 나눠가진 샴쌍둥이로 태어났으나, 분리수술의 성공으로 공유했던 다리 한 쪽과 사랑했던 형을 동시에 잃어버린 태생적 아픔을 지닌 주인공 지나는 그 상실감을 탐욕과 폭력성으로 드러내는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어린 시절 지나와 만나 비상한 머리로 지나의 두뇌이자, 상실한 다리와 같은 존재가 된 선(善)을 대변하는 인물 한. 한은 지나에게 구원되었으나, 또한 주변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파멸시키는 지나에게 애증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한에게 반한 괜찮은 여자 에블린이 이들 사이에 끼어들면서 지나와 한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고, 결국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지독하고 절대적인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정애 작가의 작품 속에는 유난히 키가 크고 각진 근육질의 사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흡사 인체해부학 책에나 등장할 법한 날렵한 근육덩어리의 몸을 자랑한다. 가뭄에 콩 나듯 등장했던 여주인공은 [아테르타 연대기]의 남성적인 여신, 혹은 몇 몇 단편들에 등장했던 성별이 불분명한 꼬마 여자아이의 모습이거나 그도 아니면 이 만화에 등장했던 에블린과 같이 제 3자의 눈을 가지고 작품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성이 전멸하다시피한 마초적이고 남성적인 인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독히 남성적인 모습과 아름다운 남자들과의 사랑으로 여성독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그의 만화에서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미(美)의 상징적 존재도 남자의 몫이었다.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의 소델리니 교수라던가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의 나녹, 그리고 그 맹목적인 사랑을 동경하게 만들었던 [열왕대전기]의 아름다운 소년 쇼너 스키올라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절대 사랑에 목말라 하며,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절망하고, 그리고 행복해한다. 그들의 사랑은 언제나 안타깝고 애처롭게 펼쳐지며, 때로는 가슴 저릿한 충격과 비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도 한다. 이 작품 [키 큰 지나의 사랑]에서도 지나와 한의 지독하고 절대적인 사랑의 끝을 이야기한다. 허나, 에블린의 시선으로 그려진 그들의 사랑은 비극적이긴 하지만, 절망적이진 않다. 몇 페이지 넘겨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아! 이건 이정애 만화다!” 라는 그런 느낌이 무엇보다 좋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만나도 여전히 반갑고 뭔가 차별화된 특별함이 느껴지는 만화. 언젠가는 미완의 걸작 [열왕대전기]나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의 완결과 그의 새로운 작품도 만나볼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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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 이정애 컬렉션 2
이정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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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여름에 창간되어 2001년 봄 폐간하기까지 정확히 딱 70권이 발행되었던 성인용 순정만화 잡지 『화이트』. 물론, 『화이트』이전에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순정지가 발행된 적이 있었고, 이후에도 몇 몇 잡지들이 등장하고 사라졌지만, 『화이트』는 그 잡지들 중 그나마 가장 오래 살아남았었다. 분명, 성인대상 잡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 성인이 되기 전인 내가 버젓이 교복을 입고서도 구매할 수 있었던, 그래서 지금도 고향집 벽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추억의 잡지 『화이트』. 돌이켜보면 『화이트』라는 잡지는 당시 어린 나이의 나에게는 조금 감당하기 벅찬 감도 있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 작품들 중 절반쯤은 이해했고 나머지는 그저 읽고 흘려버렸었다. 그것은 신일숙, 강경옥, 김기혜, 한혜연 작가 등과 함께 『화이트』를 대표했던 작가 중 한 명이었던 이정애 작가님의 다소 난해한 작품도 한 몫 단단히 했었다.

  물론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든 작품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사람마다 취향도 제각각, 작품을 받아들이는 견해도 남다른 법이니 그건 개인차 일수도 있으나, 보편적으로 나이가 들다보면 예전에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것도 있을 테고, 또 사고의 유연성 같은 것도 생기지 않으려나. 각설하고, 이정애 작가님은 지금은 물론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진 않지만, 그 시절 그의 작품은 뭐랄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묘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만화는 충분히 마니아틱해서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경하던 친구의 취향이었던 이정애 작가의 만화를, 그의 만화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좀 버거웠던 내가 열심히 보았던 건, 아마도 취향과 상관없이 그의 작품에서 열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넘치는 열정에 나도 모르게 반하고 말았다.

  이정애 컬렉션의 두 번째 작품인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은 그의 전작들에선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학원물로 시작한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그 특유의 분위기와 아우라를 분출했던 그가 거의 유일하게 취약했던 장르였던 학원물에 도전한 것이 다소 의아하다 싶었더니, 결국은 작가의 말에서 표현했듯이 결과적으로는 이정애 특유의 SF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물론 그런 장르의 전환이 전혀 낯설지도, 불편하지도 않다는 것이 그의 작품을 즐기는 또 다른 묘미이긴 하지만. 그리고 또한 이 만화는 그간 나를 힘들고 혼란스럽게 했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좀 더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세인트 니콜라스 예비학교를 대표하는 세기의 꽃미남이자, 세인트 니콜라스 예비학교 뿐 아니라 근처의 세리단 여학교에까지 명성을 떨치는 발렌타인 왕자님 나녹 맥클레인이 어느 날 우연히 부딪치게 되는 아프리카 출신의 여학생 모딘 그웬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 절대적 아름다움과 그에 못지않은 까칠하고 결벽증에 가까운 별난 성격으로 모두의 왕자님으로 군림하는 나녹이 자신을 벌레 보듯 하는 무심한 여학생 모딘에게 반하면서 벌어지는 유쾌한 소동을 시작으로 냉혹하기가 시베리아 벌판이라는 세인트 니콜라스의 훈육위원장 야스민 르로이가 나녹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게 전개된다. 물론 여기까지만의 이야기였다면, 조금 독특한 주인공들이 풀어가는 특이한 학원물일 뿐이었겠지만 나녹과 모딘, 그리고 야스민이 얽힌 이(異) 세계인 다른 별에서의 애증관계가 드러나면서 당당히 SF로서의 본색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에서 야오이란 만화장르가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보편화되기 전, 표현의 자유가 심히 제약을 받던 무렵에 그려진, 그래서 다소 억눌리고 자유롭지 못했던 표현의 한계가 느껴져 때때로 안타까움을 주었던 그의 만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지금이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독특한 그 시절만의 감성과 향수가 느껴져 아련함을 더한다. 어찌되었던 그는 분명 시대를 앞서간 혁명적 만화가였고, 내가 본능적으로 거부했던 동성 취향의 만화를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나아가 그의 만화에 열광하게 만들었던 유래 없는 작가다. 만화가 절필 10년 가까운 세월, 새삼 그의 절필이 안타까운 것은 지금이라면 나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그의 작품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법 한데 이제는 추억 속 작품들을 뒤적이며 애틋한 마음만을 가져야한다는 아쉬움 탓이다.

  6월에 발간 예정인 컬렉션 시리즈 [탈콘의 피], [신데렐라 이야기], [용왕의 근심]의 출간 소식도 더없이 반가운 일이긴 하나, 오래전 작품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에 더해서 언젠가는 그가 다시 만화계로 복귀하여 미완된 걸작들을 마무리 해 주길 간절하게 바래본다. 그의 작품에 열광했던 팬이라면, 인내심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끈질길 테니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기다림의 끝이 있기만 하다면 언제까지고 행복한 기다림에 빠져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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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숲의 아카리 2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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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본 순간부터 수채화나 동화를 연상시키는 따스한 색상의 표지와 제목에 매료되어 이 만화의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Yuki Isoya라는 작가의 이름이 생소하다 싶었더니, 역시나 이 책은 이소야 작가의 첫 단행본이란다. 그러나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던 매력적인 표지와는 달리 다소 어설프고 정돈되지 않은 그림체가 낯설어서 마음과는 다르게 쉽게 책장이 넘겨지지 않아서 한동안 묵혀두었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그 살랑거리던 첫 느낌을 잊을 수 없어서 봄맞이 기념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처음 책장을 넘기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일단 읽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었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사랑하는 주인공 코노 아카리가 26년간 살던 고향 오카자키를 떠나 도쿄의 스오도 본점으로 전근을 가면서 시작된다. 이후 아카리가 어려서부터 살던 고향에 있던 스오도 서점의 지점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의 대형서점인 스오도 본점에서 벌어지는 아카리의 좌충우돌 적응기가 풋풋하게 그려진다. 그리하여 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에선 아르바이트 직원보다 어눌할 때가 많을 정도로 실수연발인 아카리가 여러 유형의 동료 직원들과 다양한 사연을 지닌 주위 사람들, 그리고 고객들을 대하면서 차츰 일에 있어서도 성숙한 모습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무조건 응원하게 되는 귀여운 주인공 아카리 외에도 스오도에서 아카리와 인연을 맺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면면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우선 하루에 10권, 한 달에 300권의 책을 읽으며 수입의 대부분을 책 구입에 쏟아 붙는 열정적인 독서가이자 어리버리 아카리의 오아시스이기도 한 테라야마 모리조 부점장, 북 디자이너를 꿈꾸다 서점에 취직해 베스트셀러를 귀신 같이 찾아내는 능력자인 동시에 모두에게 포근한 누님 같은 존재가 된 주임 사코 시오리, 화려한 미소년 풍의 꽃 미모를 지녔지만 이기적인 독설가인 냉미남 동기 카노 미도리, 코믹 담당 아르바이트 직원이자 동인지 작가로 활동하는 모리시타 키코(키코는 업무적인 부분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선보이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서툰 미도리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인물로 코믹페어 행사를 통해 아카리의 절친이 되기도 함), 그리고 업무상 바쁜 관계로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직관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중후한 매력의 점장님에다 47년 전통의 상가에 있는 전통 있는 서점 토케이칸의 호시노씨와 토케이칸을 이어받으려는 열정적인 손녀 유미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넘치는 매력도 맛볼 수 있다.

책에서 읽은 엄청난 지식으로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박식하지만, 정작 실제 사물이나 사람사이의 관계에선 서툴기 짝이 없는 모리조 부점장의 귀여운 면을 발견했을 땐 어쩔 수 없이 아카리에 빙의되어 아카리의 짝사랑이 쌍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헌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항상 냉정한 독설을 쏟아내는 수완가인 동시에 때론 모리조 부점장에게 열등감을 표출하기도 하는 미도리의 본질적인 아픔이 드러난 후, 미도리가 밝고 긍정적인 아카리에 조금씩 동화되며 마음을 열기 시작할 땐 갈등에 빠지게 된다. 예로부터 순정계에서 냉미남의 전형이었던 흑발의 안경맨은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미스테리하지만 다정한 쪽이고, 그간 수많은 순정만화에서 따뜻한 온미남을 대표했던 백발의 미소년은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냉미남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카리에 지나치게 빙의된 나머지 두 사람 사이에서 쓸 데 없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첫 단행본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작가는 몇 되지 않았는데, 그 중 한 명은 피아노 선율이 들리는 듯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선물했던 『KISS』의 작가 마츠모토 토모였고, 또 다른 작가는 7살 차이 연상연하 커플의 유쾌하고도 상콤 달달했던 러브스토리 『어른이 되는 방법』의 야마다 난페이였다. 아! 또 있다. 미대생들의 달콤 쌉싸름한 사랑과 청춘의 성장통을 감각 있게 표현한 작품 『허니와 클로버』의 작가 우미노 치카! 이 작가들은 모두 첫 단행본의 대 히트 이후로 현재는 인기 작가 반열에 올라섰는데, 『서점 숲의 아카리』의 작가 유키 이소야의 미래는 어떨까? 아직은 그닥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다소 밋밋하고 어쩌면 산만하기까지 한 그림체를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단정하고 유려한 그림체로 다듬어간다면 사랑받는 작가가 되기 위한 조건은 충분히 갖춘 듯해 보인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각 사각관계로 얽힌 러브코미디나 매번 어디서 본 듯한 빤한 전개로 이어지는 시시콜콜한 연애이야기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면 파릇하고 신선한 샐러드같은 상큼함과 살랑이는 봄바람같은 따스함이 느껴지는 아카리의 서점 숲으로 가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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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Kitchien 2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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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만화계의 전성기였던 시절, 서울문화사에서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주력 잡지 <윙크>를 비롯하여 로우틴용 순정 잡지 <밍크>와 성인용 <나인>, 그리고 후발주자로 잠깐 발행되었다 휴간된 <슈가>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별 타깃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순정잡지를 발행했었다. 현재는 일찌감치 손을 들고 접었던 추억의 잡지 <나인>, <슈가>와 함께 지난 15년간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밍크>도 잠정 휴간에 들어감에 따라 <윙크>만이 외로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순정만화를 사랑하는 독자로서는 수많은 잡지들이 창간과 휴간을 반복할 때마다 출판만화계의 어려운 현실을 슬프게 체감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서울문화사의 프리미엄 브랜드 [마녀의 책장] 시리즈는 이러한 출판 만화계의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보다 높은 퀄리티의 작품으로 20대 이상의 구매력이 높은 독자를 끌어들이고자 한다. 어린 독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평가 절하되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 만화의 독자층은 상당히 넓어졌다. 출판 만화계의 전체적인 침체로 인해 현재는 오히려 구매력이 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만화가 주력상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열광했던 과거의 인기작을 애장판 형태로 재발행하거나 단가를 높이더라도 소장가치가 있는 작품을 속속 내놓고 있는 것이다.

서울문화사 프리미엄 브랜드 [마녀의 책장]의 첫 번째 시리즈는 현직 교사 출신의 만화가로 유명한 조주희 작가의 『키친』이다. 제목에서 상상할 수 있듯이 이 만화는 『맛의 달인』이나 『심야식당』, 『식객』을 잇는 요리만화다. 흔히 요리를 전면에 내세운 만화에서 떠올려지듯 이 만화에는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주제가 되는 요리를 소재로 그 요리를 매개로 한 여러 사람들의 사연이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프리미엄 브랜드에 걸맞게 올 컬러의 찬란한 속지를 자랑하며 말이다^^;;

따로 정해진 모임날짜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친구의 고향 시골에서 생굴을 보내는 날 자연스럽게 모여 굴과 함께 회포를 푸는 친구들의 이야기, 비오는 날의 우연한 만남과 감자전의 노스탤지어, 매번 정성을 다한 요리를 해주고도 번번이 실패로 끝나버린 연애를 한탄하는 대신 자신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하며 쿨하게 웃어넘기는 여자 이야기, 꼬마 돈까스 도시락으로 전해지는 사랑의 시작, 헤어지는 남자를 위한 마지막 식사에서 통쾌한 복수를 하는 여자, 그리고 어느 사생 팬의 스타와 컵라면의 추억까지…… 각각의 음식을 매개로 다양한 에피소드가 맛깔스럽게 그려진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가슴에 남았던 이야기는 '된장찌개 끓이는 법'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요리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홀로 된장찌개를 끓여 드실 모습이 걱정스러워 차라리 자신이 끓여드리고픈 마음이 들었을 때, 결혼 후 처음 된장찌개를 끓일 때 요리라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된 것이다. 처음 된장찌개를 끓일 때 요리법을 몰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생중계로 된장찌개를 끓여해 했던 자신의 모습이 현재 홀로 어설픈 된장찌개를 끓여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새삼 어머니의 추억에 사로잡히게 되는 여자. 그래서 여자는 결혼을 해야, 혹은 아이를 낳아야 부모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하는 건가.

짧은 이야기 특유의 긴 여운과 함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주는 잔잔한 감동이 훈훈한 만화 『키친』. 또한 각각의 에피소드 후에 그 음식이 주제가 되는 작가의 경험담은 이 만화를 읽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된다. 생굴과 감자전, 된장찌개, 꽃게, 단팥빵, 컵라면, 돈까스, 호두과자, 육개장, 고추장아찌, 치즈케이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음식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각각의 음식과 어우러지는 따뜻한 이야기가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이야기. 조금 덜 다듬어진 그림체만 극복해 낸다면 근래에 보기 드문, 읽는 내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만화가 아닐까. 물론, 다이어트 중이거나 허기진 시간에 이 만화를 보게 된다면 순식간에 자제력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르니 그건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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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인이 있다! 세미콜론 코믹스
하기오 모토 지음, 서현아 옮김 / 세미콜론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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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만화의 새로운 출간 소식은 언제나 두근거림과 설렘을 안겨 준다. 특히 일반적으로 소설류의 책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 동안 판매가 이루어지고 절판이 빠른 만화책의 경우 그 기다림의 시간은 기약 없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기다림 끝에 고대하던 만화책을 손에 넣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준다.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나 『토마의 심장』으로 국내에도 꽤나 알려진 작가 하기오 모토의 『11인이 있다!』가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추억의 애니메이션 <11인의 우주용사>의 원작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솔직히 <11인의 용사>? ‘뭐지?’라는 생각이 앞서는 작품이다. 다소 촌스러운 표지와 함께, 36년만의 정식출간이라 함은 적어도 36년 이상 된 작품이라는 뜻일 텐데 과연 재미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이 작품의 표지를 넘기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비교적 더 최근 작품이지만 국내에선 오히려 먼저 소개된 작품인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나 『토마의 심장』을 먼저 볼까 생각도 했지만, 하기오 모토의 다른 작품을 보지 않아서 작가에 대한 깊이 있는 평가나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는 다소 떨어질 수도 있으나, 오히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읽게 된 『11인이 있다!』는 생각만큼 날 괴롭히지는 않았다. 직접 읽어보진 않았지만 주위의 평가라던가 인터넷 서평 등에서 하기오 모토의 작품은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지만, 읽기 시작한 후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술술 읽혀져서 오히려 의아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워프항법과 반중력의 발견으로 지구의 우주여행이 경이적으로 발전하게 된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지구는 지구연방과 51개의 식민행성이 연합한 통합정부 「테라」를 발족시킨다. 그 후 지구는 로사, 세구르, 사바의 3개 대국과 작은 다른 종들로 이루어진 성간 연맹에 「테라」라는 이름으로 가입하게 된다. 2년 반마다 한 번 씩 열리는 우주대학 시험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데, 종족이나 성별, 연령을 불문하는 우주대학의 응시자격은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개성을 일찌감치 짐작케 한다.

테라계 시베리스 출신의 주인공 타다를 비롯하여 전 우주의 여러 종족들이 응시한 우주대학 입학시험장. 최종시험은 10명이 한 팀을 이루어 외부와의 접촉이 일절 차단된 폐 우주선 화이트 호에서 53일간 살아남는 것. 그러나 우주선에 있는 사람은 11명!!! ‘진짜’ 응시자들 사이에 초대받지 않은 한 사람의 불청객이 섞여 있는 것이다. 위급한 상황일 경우 비상버튼을 누르면 되지만, 비상 버튼을 누르는 순간 모두가 탈락하므로 응시자들은 1명의 불청객과 함께 계속 시험에 응시하기로 한다. 불안감과 의심 속에서 일어나는 반목과 그 사이에서도 조금씩 싹트는 우정이 저도 모르게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온갖 다양한 종류의 SF 작품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눈높이가 높아진 독자들에게 과거의 SF 작품의 상상력의 한계를 드러낸 복장이나 촌스러운 장비 등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지만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이면서도 이 만화는 세련되고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깊은 고민과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여러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들추어내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커지는 불신과 연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이들이 시련을 극복하고 나아가 진정한 승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이 되어서야 신분이 밝혀지는 1인의 정체가 이 만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과연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은 누구일까? 그리고 11명의 수험생들은 우주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 것인가? 진부한 표현이지만 해답은 책속에서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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