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Kitchien 2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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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만화계의 전성기였던 시절, 서울문화사에서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주력 잡지 <윙크>를 비롯하여 로우틴용 순정 잡지 <밍크>와 성인용 <나인>, 그리고 후발주자로 잠깐 발행되었다 휴간된 <슈가>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별 타깃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순정잡지를 발행했었다. 현재는 일찌감치 손을 들고 접었던 추억의 잡지 <나인>, <슈가>와 함께 지난 15년간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밍크>도 잠정 휴간에 들어감에 따라 <윙크>만이 외로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순정만화를 사랑하는 독자로서는 수많은 잡지들이 창간과 휴간을 반복할 때마다 출판만화계의 어려운 현실을 슬프게 체감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서울문화사의 프리미엄 브랜드 [마녀의 책장] 시리즈는 이러한 출판 만화계의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보다 높은 퀄리티의 작품으로 20대 이상의 구매력이 높은 독자를 끌어들이고자 한다. 어린 독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평가 절하되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 만화의 독자층은 상당히 넓어졌다. 출판 만화계의 전체적인 침체로 인해 현재는 오히려 구매력이 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만화가 주력상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열광했던 과거의 인기작을 애장판 형태로 재발행하거나 단가를 높이더라도 소장가치가 있는 작품을 속속 내놓고 있는 것이다.

서울문화사 프리미엄 브랜드 [마녀의 책장]의 첫 번째 시리즈는 현직 교사 출신의 만화가로 유명한 조주희 작가의 『키친』이다. 제목에서 상상할 수 있듯이 이 만화는 『맛의 달인』이나 『심야식당』, 『식객』을 잇는 요리만화다. 흔히 요리를 전면에 내세운 만화에서 떠올려지듯 이 만화에는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주제가 되는 요리를 소재로 그 요리를 매개로 한 여러 사람들의 사연이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프리미엄 브랜드에 걸맞게 올 컬러의 찬란한 속지를 자랑하며 말이다^^;;

따로 정해진 모임날짜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친구의 고향 시골에서 생굴을 보내는 날 자연스럽게 모여 굴과 함께 회포를 푸는 친구들의 이야기, 비오는 날의 우연한 만남과 감자전의 노스탤지어, 매번 정성을 다한 요리를 해주고도 번번이 실패로 끝나버린 연애를 한탄하는 대신 자신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하며 쿨하게 웃어넘기는 여자 이야기, 꼬마 돈까스 도시락으로 전해지는 사랑의 시작, 헤어지는 남자를 위한 마지막 식사에서 통쾌한 복수를 하는 여자, 그리고 어느 사생 팬의 스타와 컵라면의 추억까지…… 각각의 음식을 매개로 다양한 에피소드가 맛깔스럽게 그려진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가슴에 남았던 이야기는 '된장찌개 끓이는 법'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요리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홀로 된장찌개를 끓여 드실 모습이 걱정스러워 차라리 자신이 끓여드리고픈 마음이 들었을 때, 결혼 후 처음 된장찌개를 끓일 때 요리라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된 것이다. 처음 된장찌개를 끓일 때 요리법을 몰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생중계로 된장찌개를 끓여해 했던 자신의 모습이 현재 홀로 어설픈 된장찌개를 끓여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새삼 어머니의 추억에 사로잡히게 되는 여자. 그래서 여자는 결혼을 해야, 혹은 아이를 낳아야 부모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하는 건가.

짧은 이야기 특유의 긴 여운과 함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주는 잔잔한 감동이 훈훈한 만화 『키친』. 또한 각각의 에피소드 후에 그 음식이 주제가 되는 작가의 경험담은 이 만화를 읽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된다. 생굴과 감자전, 된장찌개, 꽃게, 단팥빵, 컵라면, 돈까스, 호두과자, 육개장, 고추장아찌, 치즈케이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음식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각각의 음식과 어우러지는 따뜻한 이야기가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이야기. 조금 덜 다듬어진 그림체만 극복해 낸다면 근래에 보기 드문, 읽는 내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만화가 아닐까. 물론, 다이어트 중이거나 허기진 시간에 이 만화를 보게 된다면 순식간에 자제력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르니 그건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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