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숲의 아카리 2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 본 순간부터 수채화나 동화를 연상시키는 따스한 색상의 표지와 제목에 매료되어 이 만화의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Yuki Isoya라는 작가의 이름이 생소하다 싶었더니, 역시나 이 책은 이소야 작가의 첫 단행본이란다. 그러나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던 매력적인 표지와는 달리 다소 어설프고 정돈되지 않은 그림체가 낯설어서 마음과는 다르게 쉽게 책장이 넘겨지지 않아서 한동안 묵혀두었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그 살랑거리던 첫 느낌을 잊을 수 없어서 봄맞이 기념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처음 책장을 넘기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일단 읽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었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사랑하는 주인공 코노 아카리가 26년간 살던 고향 오카자키를 떠나 도쿄의 스오도 본점으로 전근을 가면서 시작된다. 이후 아카리가 어려서부터 살던 고향에 있던 스오도 서점의 지점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의 대형서점인 스오도 본점에서 벌어지는 아카리의 좌충우돌 적응기가 풋풋하게 그려진다. 그리하여 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에선 아르바이트 직원보다 어눌할 때가 많을 정도로 실수연발인 아카리가 여러 유형의 동료 직원들과 다양한 사연을 지닌 주위 사람들, 그리고 고객들을 대하면서 차츰 일에 있어서도 성숙한 모습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무조건 응원하게 되는 귀여운 주인공 아카리 외에도 스오도에서 아카리와 인연을 맺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면면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우선 하루에 10권, 한 달에 300권의 책을 읽으며 수입의 대부분을 책 구입에 쏟아 붙는 열정적인 독서가이자 어리버리 아카리의 오아시스이기도 한 테라야마 모리조 부점장, 북 디자이너를 꿈꾸다 서점에 취직해 베스트셀러를 귀신 같이 찾아내는 능력자인 동시에 모두에게 포근한 누님 같은 존재가 된 주임 사코 시오리, 화려한 미소년 풍의 꽃 미모를 지녔지만 이기적인 독설가인 냉미남 동기 카노 미도리, 코믹 담당 아르바이트 직원이자 동인지 작가로 활동하는 모리시타 키코(키코는 업무적인 부분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선보이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서툰 미도리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인물로 코믹페어 행사를 통해 아카리의 절친이 되기도 함), 그리고 업무상 바쁜 관계로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직관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중후한 매력의 점장님에다 47년 전통의 상가에 있는 전통 있는 서점 토케이칸의 호시노씨와 토케이칸을 이어받으려는 열정적인 손녀 유미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넘치는 매력도 맛볼 수 있다.

책에서 읽은 엄청난 지식으로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박식하지만, 정작 실제 사물이나 사람사이의 관계에선 서툴기 짝이 없는 모리조 부점장의 귀여운 면을 발견했을 땐 어쩔 수 없이 아카리에 빙의되어 아카리의 짝사랑이 쌍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헌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항상 냉정한 독설을 쏟아내는 수완가인 동시에 때론 모리조 부점장에게 열등감을 표출하기도 하는 미도리의 본질적인 아픔이 드러난 후, 미도리가 밝고 긍정적인 아카리에 조금씩 동화되며 마음을 열기 시작할 땐 갈등에 빠지게 된다. 예로부터 순정계에서 냉미남의 전형이었던 흑발의 안경맨은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미스테리하지만 다정한 쪽이고, 그간 수많은 순정만화에서 따뜻한 온미남을 대표했던 백발의 미소년은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냉미남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카리에 지나치게 빙의된 나머지 두 사람 사이에서 쓸 데 없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첫 단행본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작가는 몇 되지 않았는데, 그 중 한 명은 피아노 선율이 들리는 듯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선물했던 『KISS』의 작가 마츠모토 토모였고, 또 다른 작가는 7살 차이 연상연하 커플의 유쾌하고도 상콤 달달했던 러브스토리 『어른이 되는 방법』의 야마다 난페이였다. 아! 또 있다. 미대생들의 달콤 쌉싸름한 사랑과 청춘의 성장통을 감각 있게 표현한 작품 『허니와 클로버』의 작가 우미노 치카! 이 작가들은 모두 첫 단행본의 대 히트 이후로 현재는 인기 작가 반열에 올라섰는데, 『서점 숲의 아카리』의 작가 유키 이소야의 미래는 어떨까? 아직은 그닥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다소 밋밋하고 어쩌면 산만하기까지 한 그림체를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단정하고 유려한 그림체로 다듬어간다면 사랑받는 작가가 되기 위한 조건은 충분히 갖춘 듯해 보인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각 사각관계로 얽힌 러브코미디나 매번 어디서 본 듯한 빤한 전개로 이어지는 시시콜콜한 연애이야기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면 파릇하고 신선한 샐러드같은 상큼함과 살랑이는 봄바람같은 따스함이 느껴지는 아카리의 서점 숲으로 가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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