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생 1 신일숙 환상전집
신일숙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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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순정만화의 르네상스기를 이끌었던 걸출한 순정만화가 신일숙의 작품이 ‘환상전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요란하게 재등장했다. 이미 출판만화계의 어려운 현실은 각종 매체의 보도를 통해서나 만화 출판사의 행보, 그리고 독자들이 느끼는 체감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추억으로 산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과거의 인기작들을 새롭게 단장해서 재출간하는 건 독자들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물론, 인기가 보장되지 않은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선별해 출판하기보다는 이름난 작가들의 인기작들을 ‘애장판’이나 ‘복간판’이란 타이틀로 재 발간하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인 일일 테지만, 그런 작품들이 오랜만에 선보일 때면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신일숙 환상전집의 네 번째 이야기는 8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 최초의 순정만화지 『르네상스』에 연재되었던 중편 SF만화 <1999년생>이다. 만화의 배경은 2018년의 근 미래다. 노스트라다무스를 비롯한 많은 예언가들이 지구의 종말로 예언했던 1999년의 세기말, 그러한 혼돈의 시대에 태어난 1999년생들, 특히 그 중에서 특별한 능력(초능력)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초능력을 이용해서 외계인의 침략에 맞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2010년의 현재에서 보는 2018년과 이 만화가 그려졌던 1988년에 작가가 상상했던 2018년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가는 만화 곳곳에 드러난다. 얼마 전 복간되었던 하기오 모토의 <11인이 있다>에서도 드러난 과거의 SF 작품의 상상력의 한계는 역시 이 작품에서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1999년생 아이들이 이미 열 두 살의 제법 큰 아이가 된 현재에 이르러서는 몇 년 후 2018년이 된다고 해서 만화에서 상상하는 것처럼 우주전쟁 시대가 도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만, 30년 후 21세기가 되면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우주 시대가 되리라고 믿었던 80년대의 상상력은 이미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시각에선 오히려 참신하고 기발하게 느껴질 정도.

  많은 사람들이 세기말을 무사히 넘긴 후 21세기가 되면 세상이 완전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과학적인 발전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화상통화와 개인용 비행정의 상용화가 동격의 미래라고 상상했던 과거의 상상력에 비해 디지털 기기는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서 이미 몇 년 전에 화상통화의 실현을 이룬 반면 교통수단, 예를 들면 개인용 비행정이나 우주선과 같은 규모가 큰 기계의 발전은 생각보다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 수많은 SF 작품에서 단골소재가 되었던 외계인이라던가, 외계인의 지구 침략 등이 이 만화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으며, 외계인에 대항하는 존재로 초능력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초능력의 실재에 관해선 그 의견이 분분하지만, 뭐 어떠랴? 실재하지 않는 일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 또한 만화를 보는 커다란 즐거움이 아니던가. 물론 지금 다시 이런 소재로 만화를 그린다면 좀 더 세련된 미래의 모습과 최첨단 소품 등이 등장할 수 있겠지만, 이미 세기말의 혼돈을 지나왔고 2018년은 아주 가까운 근 미래이므로 오히려 상상력의 제약이 따르고 그만큼의 한계가 드러나지 않을까.

  작품의 결말에 드러나는 반전도 이제는 식상할 정도로 흔한 장치가 되었지만 20 여 년 전의 작품임을 감안할 때 배경의 촌스러움 따위는 잠재우고도 남을 정도의 기발함과 열정이 느껴지는 결말이다. 작가의 프로필에서도 그가 90년대 초중반 얼마나 맹렬하고 왕성하게 활동했었던가를 알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선 특히 신일숙 작가의 초기작 특유에서 느껴지는 풋풋함과 열정이 살아 있어 좋았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추억으로 산다는 거겠지. 애장판이나 복간판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누구보다 더 열렬히 다음 작품(에시리쟈르, 일련의 ‘화이트’ 연재작 들)을 기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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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할 수 있어 1
모리시타 에미코 지음, 손정임 옮김 / 신영미디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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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 전 안방극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대 성공 이후 30대 싱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은 날로 변모하고 있다. 그것은 비단 드라마나 영화, 소설, 만화 속에서 그려내는 가상의 이야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이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결혼에 대한 가치가 변화하는 동시에 싱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모리시타 에미코 작가의 <혼자서도 할 수 있어>는 30대 싱글 여성의 삶을 너무나도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표지에서 말해 주듯이 이 작품은 30대의 독신에, 게다가 남친이 없는 레알 솔로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여자의 일상을 가감 없이 담아내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평소에는 판매 업무를 하고 원룸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으며, 지금은 우연히 남친이 없을 뿐인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니, 더욱 귀가 솔깃해 진다. 그림 자체가 뛰어나지도 않고, 이야기의 매력이 극대화되지도 않은 작품이지만 작화체와 4컷 만화의 중간쯤인 그림체로 담담히 풀어내는 사실적인 이야기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30대가 되었지만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고, 결혼에 대한 압박은 어느 정도 받고 있지만 아직 결혼이나 싱글에 대한 명확한 확신을 가진 바 없이 그저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뿐인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으로서의 삶을 제시하는 판타지를 보여주기보다는 현실 그대로의 리얼한 삶의 이야기로 우리를 매료시키고 있다. 자발적인 독신은 아니나 아직까지는 많은 부분 결혼제도에 있어서 남자에 비해 불합리한 점을 가진 여자로서의 삶에 어느 정도 회의를 가진 독신 여자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심히 공감하면서, 또 그 처절하고도 유쾌한 삶을 응원하면서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지금 내 자신의 삶에도 용기를 불어넣게 되는 것이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이십대를 지나 지나간 청춘을 추억하며 때로는 나이 어린 여자아이들의 젊음을 부러워하고 시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못한 게 아니라 그저 인생을 즐기며 살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위안과 용기를 보내는 작가의 나름 희망적인 메시지까지 읽어낼 수 있다. 때론 현실의 팍팍함에 우울함에 빠지기도 하지만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모자란 인생에 즐겁게 사는 거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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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 & 에이 Q 앤드 A 1
아다치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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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의 전근으로 6년간 고향을 떠났던 아츠시네 가족은 아츠시의 고교 입학 무렵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츠시의 가족은 원래 부모님과 형 히사시, 동생 아츠시까지 4인 가족이었는데 형인 히사시는 6년 전 11살 때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다. 히사시(통칭 ‘큐짱’)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과 우수한 실력으로 모두에게 우상처럼 여겨지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아츠시는 아다치 미츠루의 다른 만화 주인공이 그러하듯 아직까지 ‘각성’을 하지 못한 상태로 뭐든 대충대충 해치우는 적당주의의 표본으로 그려진다. 작품의 제목인 『Q 앤드 A』는 큐짱의 ‘Q'와 아츠시의 ‘A’인 것이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얼마 후, 아츠시 주위에서는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바로 6년 전에 죽은 형 큐짱이 유령이 되어 옛날 집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 헌데 이상하게도 큐짱은 동생인 아츠시와 애완견 데로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고 낮에는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저녁이 된 이후에야 외출이 가능하고, 그마저도 행동반경에 어느 정도 제약을 받는다. 게다가 이 이상한 유령은 먹기도 하고 물건을 움직이는 능력도 있으며 만화책도 보는데 하는 짓은 6년 전 그때의 초등학생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게다가 수시로 아츠시의 몸에 들어가 쓸 데 없는(?) 능력을 발휘하여 아츠시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츠시는 또 큐짱으로 인해 여러 인물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연은 여자주인공인 아츠시의 초등학교 동창 마에자와 유호다. 큐짱의 영향을 받아 육상을 시작한 유호는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에 나오는 다른 여자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미인에 실력까지 두루 갖춘 모두의 공주님이다. 거기다 초등학교 시절, 매번 큐짱에게 밀려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동네 형 진노는 큐짱에 대한 복수를 동생인 아츠시에게 하리라 마음먹고 자신이 부장으로 있는 육상부에 아츠시를 끌어들여 복수를 계획한다. 육상부에는 이미 소꿉친구 마에자와 유호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소년으로 아츠시에게 라이벌 선언을 한 오가사와 이치로가 있었는데, 이치로가 아츠시에게 라이벌 선언을 한 이유는 다름 아닌 큐짱이 아츠시의 몸을 빌어 제멋대로 실력발휘를 해 버린 탓이다. 게다가 유령을 볼 수 있는 영 능력 소녀 오쿄의 존재는 유령인 큐짱과 동생 아츠시의 파란만장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

  최고 인기 스타의 자리도 언젠가는 내리막길이 있기 마련이듯이 어떤 만화가든 그 작가를 대표하는 화제작 다음에는 좀처럼 그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을 보기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다. 타케이코 이노우에를 일본 최고의 벼락부자로 만들었던 <슬램덩크>는 야구 이외의 스포츠 만화에 별 관심이 없던 일본 스포츠 만화의 불문율을 깨고 대 성공! 이웃나라인 우리나라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당시 대학농구의 인기와 맞물려 슬램덩크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작가는 무사의 이야기를 그린 <배가본드>와 또 다른 농구만화 <리얼>등 여러 작품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슬램덩크>는 아마 앞으로도 내내 그의 이름 앞에 따라다닐 것이다. 여전히 수많은 독자들이 <슬램덩크> 그 이후의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한은 말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은 거의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그림체와 스포츠를 소재로 하며 첫사랑(소꿉친구)과 라이벌로 인해 소년이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자기복제 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욕을 먹지 않는 희한한 작가가 바로 아다치 미츠루. 최근작 『Q 앤드 A』 역시 피를 나눈 형제와 소꿉친구가 등장하는데, 이는 거의 30년 전 작품인 <터치>를 떠올리기에 손색없는 조건이다. 게다가 재능 있는 형의 죽음과 동생의 성장, 소꿉친구와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더욱 더 말이다. 물론 아직까지 시작에 불과한 이 이야기는 얼마든지 <터치>와는 달라질 수도 있으나, 그를 알고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터치>를 떠올리는 데는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의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H2』 이후 그려진 만화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새로운 스포츠 종목인 권투에 도전했으나 흐지부지한 완결이 되어 아쉬웠던 <카츠>, 이후 다시 야구와 소꿉친구와 첫사랑을 적당하게 버무린 스토리로 돌아온 <크로스 게임>도 왠지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간간히 발표하는 단편들에서 독특한 소재와 새로운 이야기가 간혹 눈에 띄기는 하지만, 대부분 ‘야구만화 → 다른 스포츠 만화 → 간간히 일탈 → 다시 야구 만화 → 다른 스포츠 만화’의 사이클로 이어지는 그의 만화에서는 이미 새로운 이야기는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독자들도 전혀 새로운 작품 보다는 차라리 H2의 결말을 변경(히까리가 완전히 바람나는 이야기라던가…….)해서 스페셜 편으로 다시 출간해 주는 것을 더 바랄지도 모른다.

  * 요약 : 아다치 미츠루의 신작. 야구만화는 아님. 죽은 형이 유령이 되어 나타남. 뛰어난 능력자였던 형이 동생의 몸을 빌어 능력을 발휘하고자 함. 적당주의자인 동생은 유령인 형 때문에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지 모름. 소꿉친구인 여자주인공은 완벽한 소녀. 아마도 주인공과 러브라인이 있을 듯함. 라이벌 등장. 그러나 히데오 이후 어떤 라이벌도 주인공급의 매력적인 남자는 없었음. 혹시나……? 하고 기대했으나, 역시 『H2』나 『터치』, 『러프』 같은 작품을 뛰어넘을 것 같지는 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다치 미츠루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미 중독되어 있으므로 보긴 볼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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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k 윙크 2010.09.15 - No.18
윙크 편집부 엮음 / 서울문화사(잡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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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 창간 17년.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순정만화 잡지이다.

창간 당시 『윙크』의 빅 3는 누가 뭐래도 이은혜, 신일숙, 강경옥이었다. 그 중 단연 최고의 열광적 반응을 끌어낸 작품은 90년대 소녀적 감성을 자극했던, 이십대의 로망을 환상적으로 그린 로맨틱 판타지(이건 정말 실사보다는 절대로 ‘판타지’에 가깝다!!!) 이은혜의 <블루>가 아닐까? 거기에다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하여 딱 그만큼의 열정과 재미를 선물한 신일숙의 <리니지>나 <별빛 속에>를 잇는 강경옥의 또 하나의 SF 대작 <노말 시티>에 이르기까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작가들의 주옥과도 같은 작품을 윙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노말 시티>에 대한 불만은 단지 성실하지 못했던 들쑥날쑥한 연재였으나 그래도 완결이라는 대업을 이룬(?) <노말 시티>는 <블루>에 비하면 완전 양반이다. <블루>는 윙크에서 연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가 인터넷 연재를 시작하노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더니만 몇 년 동안 ‘올해’는 완결된다는 소문만 무성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끝끝내 완성되지 못한 미 완성작이기 때문이다.

<블루>를 위시한 초기 인기작의 뒤를 이었던 작품은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그림과 아련한 이야기로 향수를 자극했던 박희정(박희정은 윙크의 창간 즈음에 신인 작가로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윙크에 살아남아있는 나름 역사적인 인물이기도^^)의 <호텔 아프리카>, 한국적인 색체를 판타지로 녹여낸 유시진 작가의 <마니>와 꽤 난이도 강한 학원물이었던 <쿨 핫>, <리니지> 이후 중편 <에시리쟈르>를 거쳐 이집트 파라오의 비밀과 세계 각국의 고대문명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었던 판타지 멜로 신일숙의 <파라오의 연인>, 그리고 “그대가 죽으면 나도 죽으리.” 라는 불멸의 명대사와 함께 SF 만화의 새 지평을 열었던 순정만화계의 대모 황미나 작가의 <레드문>도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기성작가의 아성을 위협한 걸출한 신인으로 윙크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천계영’ 역시 『윙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대상 수상작인 <탈랜트>로 이름을 알린 뒤, 후속작 <언플러그드 보이>와 <오디션>등을 연달아 터뜨린 윙크의 히트상품 ‘천계영’. <DVD> 이후 최근작인 <하이힐을 신은 소녀>까지 최근 그의 작품은 다소 마니아틱하게 변모되어 도저히 따라 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윙크』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임에는 틀림없다. 천계영 이후에도 <하백의 신부>의 윤미경, <탐나는도다>의 정혜나 등의 작가들이 공모전으로 데뷔하여 현재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2002년 연재를 시작하여 온갖 만화 상을 휩쓸더니, 드라마에 이어 뮤지컬까지 접수하며 승승장구 인기를 누리는 박소희 작가의 <궁> 또한 근 10년 가까이 윙크에서 절대지존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작품인데,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이건 이제 제발 좀 ‘끝’을 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는…….

최근 몇 년 사이 『윙크』의 변화 중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동성애’ 코드 만화에 대한 다소 개방적인 시선이다. 비주류 만화에서 어느새 무시못할 정도의 영향력 있는 장르로 성장한 동성애 만화는 윙크에서도 몇 몇 작품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대한 전혀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던 한승희/전진석의 <천일야화>, 『나인』 폐간 후 오랫동안 묻혀 있다 『윙크』에서 다시 연재를 재개했던 박희정의 <마틴 앤 존>, 그리고 심의의 잣대를 넘지 못하고 끝내 연재가 중단되었던 문제작 이영희의 <절정>이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중, 단편 작품에서 은근한 동성애 코드가 인기를 끌었다.

현재에도 『윙크』에서는 여러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천일야화>를 잇는 한승희/전진석의 합작으로 관심을 모았던 천재 기인 임춘앵의 이야기 <춘앵전>, 로맨틱 판타지 김태연의 <절대마녀>와 동양적 판타지 멜로 윤미경의 <하백의 신부>, 드라마 제작 이후에도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는 정혜나의 <탐나는도다>, 여전히 식을 줄 모르는 인기작 박소희의 <궁>과 최근 구미호 신드롬과 맞물려 주목받고 있는 김명미의 <오! 마이 로맨틱 구미호>까지……. 분명, 지금의 『윙크』도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순정만화 잡지인 동시에 가장 사랑받는 잡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요즈음의 『윙크』는 예전과 같은 감동은 안겨주지 못하고 있다. 세월이 흘렀고, 독자는 나이가 들었으며(물론 새로운 독자층도 많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오래된 독자의 아주 주관적인 의견임), 잡지도 시대에 맞게 변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치 입맛대로 골라볼 수 있는 뷔페 같은 느낌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음식이 깊이 있는 맛이라기보다는 자극적이고 짠 음식이어서 욕심껏 가득 담아서 먹으려고 해 봐도 정작 끌리는 음식은 찾기 힘든 그런 뷔페 말이다. 『윙크』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랑받기를 바라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끊임없는 변화와 노력 가운데서도 초심을 잃지 않는 만화 잡지가 되기를 바란다. 문득, 한 달에 두 번 두근거리는 설렘을 안고 잡지를 보던 그런 시절의 향수가 그리워진 탓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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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스위트 홈 3
코나미 카나타 글.그림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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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나는 애완동물 기르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개인적인 성향도 그러하거니와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의 영향이었던 모양이다. 아주 어릴 때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을 때 딱 두 번 애완동물을 기른 적이 있었는데, 한 번은 친척집 개가 낳은 강아지를 동생이 분양받아 기른 적이 있었고, 두 번째는 십자매 새 한 쌍을 길렀었다. 유별나게 온갖 동물들에 관심이 많았던 막내 동생을 제외하고는 식구들이 대부분 애완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서 우리 집의 1호 애완동물이었던 강아지 재롱이는 기관지염이 심했던 엄마 때문에 기른 지 몇 달 만에 다른 집으로 입양을 보내야 했고, 두 번째로 길렀던 십자매 부부는 몇 달 가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람 이상으로 많은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하는 애완동물 기르기를 다소 꺼리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동물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어서 동물원에서 보는 동물이나 TV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생태는 나름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는 편이다. 이제까지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에서 애완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은 다양하게 선보여졌는데, 특히 만화에서는 유독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여럿 있었다. 이는 만화가의 직업적 특성상 실제로 고양이를 기르는 만화가들이 적지 않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른 애완동물에 비해 유난히 도도하고 자의식이 강하다는 고양이가 이 작품 <치즈 스위트 홈>에서는 어떻게 그려질까?

  <치즈 스위트 홈>의 주인공은 새끼 고양이다. 동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진 동생의 소견으로는 품종은 아메리칸 숏 헤어란다. 애완동물 계의 양대 산맥인 개와는 달리 귀소본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고양이. 그래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새끼 고양이도 길을 잃고 스스로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면서 시작한다. 길 잃은 아기고양이가 요헤이 네 가족들과 만나게 되고 함께 살면서 겪는 알콩달콩한 에피소드가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진 무려 올 컬러 만화다. 애완동물을 기르지 못하게 되어있는 아파트 규정상 길 잃은 아기고양이를 데려오긴 했지만, 처음엔 잠시 맡아두는 거라고 생각했던 요헤이 네 식구들은 우연한 기회에 아기 고양이의 이름(치)도 지어주고, 또 점점 정이 쌓이면서 결국엔 가족으로 받아들여 몰래 키우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고양이를 길러보지는 않았지만 이 만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고양이의 생태나 고양이를 기르는 주인의 기분을 조금쯤은 알 것 같았다. 현실적인 소소한 에피소드를 깔끔한 그림체로 그려내서 애완동물을 기르다보면 있을 법한 이야기에 쉽게 공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실제로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는 독자 뿐 아니라 나처럼 애완동물 기르기에 관심도, 재능도 없는 일반인에게조차 호응을 이끌어낼 정도로 고양이 목욕시키기, 대소변 가리기 훈련, 동물병원에 데려가기 등의 에피소드가 솔직하고 담백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애완동물 기르기가 금지되어 있는 아파트에서 치를 기르기 위한 가족들의 몸부림(?)으로 치를 피크닉바구니에 담아서 이웃 주민들 몰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물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는 가족들의 모습이라던가, 자꾸만 창가에 올라가서 바깥 풍경을 보려고 하는 치 때문에 창문틀에 가득 고양이 인형을 사서 눈속임을 하는 요헤이 가족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슬며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

  이미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기 고양이 치의 귀여운 소동이 따뜻하게 펼쳐지는 <치즈 스위트 홈>. 실제로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독자라면 더 없이 좋은 공감의 지침서가 될 것이고 직접 고양이를 기를 수는 없지만 고양이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시뮬레이션으로 고양이를 기르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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