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인이 있다! 세미콜론 코믹스
하기오 모토 지음, 서현아 옮김 / 세미콜론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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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만화의 새로운 출간 소식은 언제나 두근거림과 설렘을 안겨 준다. 특히 일반적으로 소설류의 책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 동안 판매가 이루어지고 절판이 빠른 만화책의 경우 그 기다림의 시간은 기약 없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기다림 끝에 고대하던 만화책을 손에 넣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준다.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나 『토마의 심장』으로 국내에도 꽤나 알려진 작가 하기오 모토의 『11인이 있다!』가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추억의 애니메이션 <11인의 우주용사>의 원작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솔직히 <11인의 용사>? ‘뭐지?’라는 생각이 앞서는 작품이다. 다소 촌스러운 표지와 함께, 36년만의 정식출간이라 함은 적어도 36년 이상 된 작품이라는 뜻일 텐데 과연 재미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이 작품의 표지를 넘기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비교적 더 최근 작품이지만 국내에선 오히려 먼저 소개된 작품인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나 『토마의 심장』을 먼저 볼까 생각도 했지만, 하기오 모토의 다른 작품을 보지 않아서 작가에 대한 깊이 있는 평가나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는 다소 떨어질 수도 있으나, 오히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읽게 된 『11인이 있다!』는 생각만큼 날 괴롭히지는 않았다. 직접 읽어보진 않았지만 주위의 평가라던가 인터넷 서평 등에서 하기오 모토의 작품은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지만, 읽기 시작한 후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술술 읽혀져서 오히려 의아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워프항법과 반중력의 발견으로 지구의 우주여행이 경이적으로 발전하게 된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지구는 지구연방과 51개의 식민행성이 연합한 통합정부 「테라」를 발족시킨다. 그 후 지구는 로사, 세구르, 사바의 3개 대국과 작은 다른 종들로 이루어진 성간 연맹에 「테라」라는 이름으로 가입하게 된다. 2년 반마다 한 번 씩 열리는 우주대학 시험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데, 종족이나 성별, 연령을 불문하는 우주대학의 응시자격은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개성을 일찌감치 짐작케 한다.

테라계 시베리스 출신의 주인공 타다를 비롯하여 전 우주의 여러 종족들이 응시한 우주대학 입학시험장. 최종시험은 10명이 한 팀을 이루어 외부와의 접촉이 일절 차단된 폐 우주선 화이트 호에서 53일간 살아남는 것. 그러나 우주선에 있는 사람은 11명!!! ‘진짜’ 응시자들 사이에 초대받지 않은 한 사람의 불청객이 섞여 있는 것이다. 위급한 상황일 경우 비상버튼을 누르면 되지만, 비상 버튼을 누르는 순간 모두가 탈락하므로 응시자들은 1명의 불청객과 함께 계속 시험에 응시하기로 한다. 불안감과 의심 속에서 일어나는 반목과 그 사이에서도 조금씩 싹트는 우정이 저도 모르게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온갖 다양한 종류의 SF 작품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눈높이가 높아진 독자들에게 과거의 SF 작품의 상상력의 한계를 드러낸 복장이나 촌스러운 장비 등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지만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이면서도 이 만화는 세련되고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깊은 고민과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여러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들추어내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커지는 불신과 연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이들이 시련을 극복하고 나아가 진정한 승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이 되어서야 신분이 밝혀지는 1인의 정체가 이 만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과연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은 누구일까? 그리고 11명의 수험생들은 우주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 것인가? 진부한 표현이지만 해답은 책속에서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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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라이온 2
우미노 치카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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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니와 클로버>라는 달달한 제목으로 달콤 쌉싸름한 청춘의 진통을 흡입력 있게 표현했던 작가 CHICA UMINO가 신작 <3월의 라이온>으로 돌아왔다. 일러스트레이터 출신 작가의 이력에 걸맞게 신선하고 아기자기했던 전작의 그림체와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좀 더 대담하고 담백한 그림체를 선보인다. <허니와 클로버>에 비해 판형이 훨씬 커진 탓도 있겠지만 컷의 분할이나 여백의 미 같은 부분에서 훨씬 시원시원하고 여유로워졌다. <허니와 클로버>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로서 그의 후속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혹시나 Sophomore jinx 따위의 몹쓸 재앙을 겪지는 않을까 내심 초조해했었는데 이 작품 <3월의 라이온>은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프로 장기기사라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소년을 주인공으로 말이다.

  도쿄 시타미치에 혼자 사는 17살의 프로 장기기사 키리야마 레이(레이는 숫자 ‘0’을 뜻하기도 함). 그는 집도, 가족도, 친구도 없이 학교도 다니지 않으며 ‘제로’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철저히 이 도시에서 이방인이다. 장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귀여운 여동생이 있는 따뜻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던 레이의 일상은 어느 날 갑자기 찢겨나가듯 끝나버렸다. 어린 시절, 소풍을 다녀온 사이 불의의 사고로 가족들을 한꺼번에 잃고 친척들이 남겨진 재산과 레이의 거취 문제로 온신각신 하는 틈에 레이에게 손길을 내민 것은 아버지의 친구였던 프로 장기기사 코다 씨였다. 장기를 좋아하냐는 코다 씨의 질문에 살아남기 위해, 이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애 최초의 거짓말을 하게 된 레이. 그는 그렇게 프로 장기기사 가정의 아이가 되었다. 이후 ‘장기’라는 인연으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장기에 재능이 있었던 레이와 그런 레이 때문에 아버지를 빼앗겼다는 열등감을 내보였던 친 자식들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레이는 독립을 하게 된다. 강가에 있는 조그만 마을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레이는 프로 장기기사가 되면서 그만두었던 학교에도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린 레이의 일상과 맞바꾼 장기의 신과의 계약. 그리고 그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레이의 일상의 톱니바퀴는 새로운 인연을 통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 무렵 레이는 한 가족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는데, 가업인 미카즈키당(전통과자가게)의 일을 돌보면서 저녁이면 화려한 밤의 여인으로 변모하는 아카리 씨 가족이었다. 아카리는 어느 날 가게 앞에 버려진 들 고양이 같은 레이를 주워 집으로 데려간다. 낯설지만 왠지 따뜻하고 정겨운 낡은 집에서 레이는 아카리, 히나, 모모 자매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어른스럽고 따뜻한 아카리 씨, 사랑스럽고 밝은 미소를 가진 여중생 히나, 귀엽고 솔직한 유치원생 막내 모모. 그들을 만나면서 식구들이 몰살된 후로 철저히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왔던, 그래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전혀 몰랐던 레이는 꾸밈없고 따뜻한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레이에게 가족의 따뜻함 외에 또 다른 세계를 안내하는 존재는 10년 전 어린이 장기대회에서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니카이도 하루노부다. 레이에게 하루노부의 존재는 그저 또래의 장기기사 정도이지만, 하루노부는 레이를 필생의 라이벌이자 ‘친구’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아직까지 레이에게 하루노부의 존재는 ‘친구’로는 다소 미약하게 생각되지만, 레이가 아카리와 히나, 모모 자매와의 소통으로 가족의 따뜻함을 서서히 알아가는 것처럼 하루노부와의 연결고리를 통해서 우정의 세계에도 한 발씩 내딛고 있는 느낌이다. 엉뚱하게도 아카리 언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레이의 라이벌 니카이도 하루노부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레이를 채찍질한다.

  <3월의 라이온>은 가족들의 사고 이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단절된 삶을 살아가던 레이가 조금씩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장통을 잔잔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다시 돌아간 학교에서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레이의 상태를 꼬집는 담임선생님, 어른의 자세로 레이에게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마츠모토와 스미스 선배, 레이를 프로 장기기사의 세계로 데려다준 의붓아버지 코다 씨, 레이와 장기에 대해 뾰족한 날을 세우며 달려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붓누나 쿄코, 그리고 장기의 세계에서 언젠간 레이와 대적하게 될 신의 아이 소야 명인 소야 토지까지……. 레이를 둘러싼 세계의 수많은 인연들을 통해 레이는 앞으로 한 발짝씩 더 나아가고 성장해 나갈 테다. 우리의 임무는 그런 레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며 응원의 메시지를 날려주면 그 뿐이다. 레이 지지마!! 힘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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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즈, 플리즈 미! 2 팝툰 컬렉션 7
기선 글 그림 / 팝툰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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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의 소위 말하는, 혼기가 꽉~ 찬 미혼 남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란 바로 이런 말들일 것이다.   


  “넌 결혼 안 하니? 대체 국수는 언제 먹여 줄 거야?”

 

  그것도 애인 없는 싱글이라면 이런 종류의 말은 언제나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말하는 사람들이야 그저 한 마디 씩 지나는 말로 할 수 있다지만, 비슷한 종류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마치 제 값에 팔리지 않은 유행 지난 물건이 되어가는 심정일 테다. 처치곤란의 재고품들이 세일에 세일을 거쳐 결국에는 떨이 상품으로 헐값에 팔려나거나 폐기처분 되는 것처럼 자신들도 언젠가는 필요 없는 폐품 취급을 받게 되는 건 아닌 가 불안해하면서 말이다.

  2005년 여름을 강타하며 국민드라마의 반열에 올랐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었던 이유는 주인공 김삼순이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 어쩌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단지 현실만을 반영했다면 그토록 많은 삼순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을 리 만무하다. 주인공 삼순이는 철저히 현실 속에 있는 인물이되 이야기는 그녀들이 꿈꾸는 판타지 로맨스를 절묘하게 버무려 놓았기 때문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삼순이가 사랑받는 사이 뉴요커 4인방의 적나라한 싱글 라이프를 그려낸 미드 <섹스 앤 더 시티>도 국내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수많은 골드 미스들은 삼순이의 로맨스를 지지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캐리나 미란다가 되고 싶어 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두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후 비슷한 아류의 영화, 드라마, 소설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기선의 신작 <플리즈, 플리즈미>는 삼순이와 캐리의 중간쯤 되는 어중간한 주인공 구애리와 그녀의 두 친구들이 주인공이다. 아니, 구애리 그녀는 어쩌면 삼순이나 캐리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뭐 하나 잘난 것 없이 집안의 애물단지가 되었던 주인공 최미자씨와 더욱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 기선이 자기 주변의 평범한 싱글녀들의 이야기들을 직접 수집하고 귀동냥으로 담아냈다는 <플리즈, 플리즈미>는 그래서 좀 더 현실적이고 솔직한 화법을 구사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똥차 취급을 받으며 노처녀란 이름으로 싸잡아서 매도되었던 이십대 후반 이상의 여자들에게 요즈음 서른은 더 이상 올드미스가 아니다. 오히려 결혼하지 않은 당당한 싱글녀들에게 골드미스란 신조어가 생겨났고, 그녀들은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는 거대 단체로 자리 잡았다. 이 작품에서도 그녀들은 결혼적령기의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결혼 자체에 대해선 그닥 고민의 흔적을 풀어놓지 않는다. 다만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싱글들의 삶은 예상보다 화려하지도, 멋있지도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그녀들은 일과 사랑, 재테크 때문에 고민하고 결코 녹록치 않은 인생을 한탄한다. 특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구애리와 친구들의 사랑이야기가 부각되고 있는데, 그녀의 이야기는 참으로 공감이 가면서도 안타깝다. 왜 남자는 여자가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도망가고 달아나면 잡고 싶어 할까? 설령 남자의 적극적인 구애로 시작된 관계일지라도 만남이 지속되다보면 관계의 역전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 남녀관계의 일반론이다. 구애리 이전에 서른을 살아냈던 삼순이와 미자씨가 결국에는 멋지구리한 연하남의 사랑을 쟁취한 것처럼 우리의 주인공 애리씨도 솔로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랑에 있어서 언제나 Loser가 되었던 애리씨가 이번엔 꼭 그녀와 꼭 맞는 상대와 사랑에 빠지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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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NANA 20
야자와 아이 지음, 박세라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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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온 몸으로 발산해대는 만화가 야자와 아이의 <NANA> 20권이 발매되었다. 도쿄로 향하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이름이 똑같은 스무 살 나나들의 이야기는 어느덧 20권 째로 이어지고 있다. 연재는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고 있지만 만화 속 시간은 아주 더디게 아마도 몇 년 쯤 흘렀으리라 본다. 중반 이후(어디가 중반이라는 거니?), 끝을 알아야 중반도 되지 않을까마는 암튼, 중반 이후 부터 이야기의 시점이 교묘하게 미래와 현재(혹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나나들의 비극을 예고하고 있으므로 살짝 흐트러진 긴장감이 조금씩 되살아나긴 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자꾸만 복잡해지는 이야기는 심히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다.    

  일명 하치(충견 하치코에서 유래^^)로 통하는 귀여운 나나와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대놓고 사랑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로커 나나의 대비는 이 만화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두 명의 나나를 중심으로 나나가 보컬로 참여하고 있는 블래스트와 하치와 애정관계로 얽힌 타쿠미와 나나의 그, 렌이 활동하는 인기 정상의 그룹 트라네스 멤버 간의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관계의 실타래는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게 한다. 게다가 블래스트와 트라네스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 간의 갈등과 대립, 점점 꼬여가는 미묘한 감정 선은 이제 따라가기가 버거울 지경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만화를 볼 때 '답답함'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된 걸까? 이전까지 야자와 아이의 만화는 독특하고 다소 과격할 만큼 난해한 패션 감각을 자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유쾌하고 캐 발랄한 만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만화 <NANA>는 문득 문득 유치찬란한 엉뚱 유머를 쏟아내긴 해도 근본적으로 칙칙하고 암울한 포스를 가득 뿜어내고 있다. 그나마 초반에는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우정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가슴을 열었었다. 인기에 편승해 더욱 복잡한 관계구도를 설정하고 다소 억지스러울 만큼 이중 삼중으로 이야기를 꼬아대는 통에 솔직히 독자 입장으로썬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NANA>의 뒷이야기에 관심을 끊을 수 없는 이유는 어쩔 수 없는 미련, 혹은 연민 같은 거다. 아직은 그들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을 때, 아프지 않은 아름다운 퇴장으로 물러나 주길 바라면서……. 도대체 언제 끝날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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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9-02-14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히 공감하는 글이군요..^^
 
환상게임 1 - 완전판
유우 와타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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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판타스틱 게임>이라는 해적판으로 발행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만화 <환상게임> 완전판은 과연 어떨까? 이상하게도 꽤 오래전 구매한 이 만화를 초반부만 조금 읽고 내버려두었다가 최근 작품인 <환상게임 현무개전>을 읽고 난 후에야 다시 볼 마음이 생겼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중 3 소녀 미주가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친구인 진아와 함께 우연히 도서관에서 보게 된 고서 <사신천지서>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책 속 세계인 홍남국에서 ‘주작의 무녀’가 된 미주가 무녀를 지키는 주작칠성사와 함께 주작을 불러오기 위해 벌이는 파란만장한 여정이 그려진다. 같이 책속으로 들어온 친구 진아는 상대국인 구동국의 ‘청룡의 무녀’가 되어 미주와 대립각을 세우고, 미주는 주작칠성사의 일원인 유귀와 서로 사랑하는 것도 모자라 그 밖의 여러 꽃미남들에게 사랑의 화살표를 마구 받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과도한 판타지 로맨스의 결정판으로 차원을 뛰어넘어 과거의 세계(아마도!)로 건너가 그 곳의 절대 훈남 캐릭터와 사랑을 하며, 스펙터클한 전쟁 또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며 활약하는 스토리는 동 시대에 발행된 또 다른 만화 <하늘은 붉은 강가>와 비교되어지며 판타지 만화의 재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또한 <환상게임>은 만화를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OVA, 소설, 게임에 이르기까지 one source multi-use 전략을 제대로 실행해 주신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환상게임> 연재 후 1년에 단 1회도 <환상게임> 일러스트를 그리지 않은 해가 없었다고 하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겠다. 덕분에 최근에는 <환상게임>의 속편이자 전신인 <환상게임 현무개전>까지 연재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만화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지만 똑같은 작품에 대한 생각이나 감상은 나이를 먹는 만큼, 세월이 흐른 만큼 달라지는  모양이다. 중학교 때, 해적판으로 발행된 <판타스틱 게임>을 보았던 그 시절에는 참 두근두근 설렘을 안고 보았었는데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는 ‘이 만화가 이런 내용이었나?’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실제 여주인공의 나이는 겨우 중 3이지만, 해적판 만화가 성행하던 그 당시만 하더라도 중 3 소녀의 판타스틱 로맨스는 우리나라 설정을 과도하게 앞서간 탓에 <판타스틱 게임>에선 주인공 나이가 고 3으로 설정되었었다. 완전판에선 주인공이 실제 나이로 돌아오긴 했지만, <판타스틱 게임>의 지나친 후광 탓인지, 해적판과 별 다를 바 없이 주인공의 이름은 한국명으로 고쳐졌고,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 일본과 한국을 혼용하여 번역한 프로필이나 설정은 보는 이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차라리 원서 그대로 번역하여 헷갈리지 않게  하거나 이왕 한국식 이름으로 표기했다면 설정도 완벽하게 바꿔 놓았어야지, 주인공의 이름은 한국식으로 ‘강미주’인데 출신지는 ‘도쿄’라는 식의 엉성한 번역은 수시로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었다. 특히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한 주인공들이 나름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맞았지만 인기에 편승하여 재개된 2부에서는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져버렸다. 본편에서 비장한 죽음을 맞았던 유유가 유령이 되어 활약(?)하는 장면에서는 반가움보다는 실소가 터졌다. 박수칠 때 떠나란 말을 이 작가는 너무 외면했던 거지.

  분명 이 만화에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책속이나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여주인공에 동화되어 낯설지만 환상적인 이(異) 세계에서 펼쳐지는 알흠다운 꽃미남들과의 모험 이야기에 절로 빠져들게 만든다. 단지 조금만 욕심을 덜 부려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면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만한 명작이 되지 않았을까. 절대 과욕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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