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라이온 2
우미노 치카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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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니와 클로버>라는 달달한 제목으로 달콤 쌉싸름한 청춘의 진통을 흡입력 있게 표현했던 작가 CHICA UMINO가 신작 <3월의 라이온>으로 돌아왔다. 일러스트레이터 출신 작가의 이력에 걸맞게 신선하고 아기자기했던 전작의 그림체와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좀 더 대담하고 담백한 그림체를 선보인다. <허니와 클로버>에 비해 판형이 훨씬 커진 탓도 있겠지만 컷의 분할이나 여백의 미 같은 부분에서 훨씬 시원시원하고 여유로워졌다. <허니와 클로버>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로서 그의 후속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혹시나 Sophomore jinx 따위의 몹쓸 재앙을 겪지는 않을까 내심 초조해했었는데 이 작품 <3월의 라이온>은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프로 장기기사라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소년을 주인공으로 말이다.

  도쿄 시타미치에 혼자 사는 17살의 프로 장기기사 키리야마 레이(레이는 숫자 ‘0’을 뜻하기도 함). 그는 집도, 가족도, 친구도 없이 학교도 다니지 않으며 ‘제로’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철저히 이 도시에서 이방인이다. 장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귀여운 여동생이 있는 따뜻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던 레이의 일상은 어느 날 갑자기 찢겨나가듯 끝나버렸다. 어린 시절, 소풍을 다녀온 사이 불의의 사고로 가족들을 한꺼번에 잃고 친척들이 남겨진 재산과 레이의 거취 문제로 온신각신 하는 틈에 레이에게 손길을 내민 것은 아버지의 친구였던 프로 장기기사 코다 씨였다. 장기를 좋아하냐는 코다 씨의 질문에 살아남기 위해, 이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애 최초의 거짓말을 하게 된 레이. 그는 그렇게 프로 장기기사 가정의 아이가 되었다. 이후 ‘장기’라는 인연으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장기에 재능이 있었던 레이와 그런 레이 때문에 아버지를 빼앗겼다는 열등감을 내보였던 친 자식들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레이는 독립을 하게 된다. 강가에 있는 조그만 마을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레이는 프로 장기기사가 되면서 그만두었던 학교에도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린 레이의 일상과 맞바꾼 장기의 신과의 계약. 그리고 그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레이의 일상의 톱니바퀴는 새로운 인연을 통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 무렵 레이는 한 가족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는데, 가업인 미카즈키당(전통과자가게)의 일을 돌보면서 저녁이면 화려한 밤의 여인으로 변모하는 아카리 씨 가족이었다. 아카리는 어느 날 가게 앞에 버려진 들 고양이 같은 레이를 주워 집으로 데려간다. 낯설지만 왠지 따뜻하고 정겨운 낡은 집에서 레이는 아카리, 히나, 모모 자매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어른스럽고 따뜻한 아카리 씨, 사랑스럽고 밝은 미소를 가진 여중생 히나, 귀엽고 솔직한 유치원생 막내 모모. 그들을 만나면서 식구들이 몰살된 후로 철저히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왔던, 그래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전혀 몰랐던 레이는 꾸밈없고 따뜻한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레이에게 가족의 따뜻함 외에 또 다른 세계를 안내하는 존재는 10년 전 어린이 장기대회에서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니카이도 하루노부다. 레이에게 하루노부의 존재는 그저 또래의 장기기사 정도이지만, 하루노부는 레이를 필생의 라이벌이자 ‘친구’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아직까지 레이에게 하루노부의 존재는 ‘친구’로는 다소 미약하게 생각되지만, 레이가 아카리와 히나, 모모 자매와의 소통으로 가족의 따뜻함을 서서히 알아가는 것처럼 하루노부와의 연결고리를 통해서 우정의 세계에도 한 발씩 내딛고 있는 느낌이다. 엉뚱하게도 아카리 언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레이의 라이벌 니카이도 하루노부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레이를 채찍질한다.

  <3월의 라이온>은 가족들의 사고 이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단절된 삶을 살아가던 레이가 조금씩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장통을 잔잔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다시 돌아간 학교에서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레이의 상태를 꼬집는 담임선생님, 어른의 자세로 레이에게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마츠모토와 스미스 선배, 레이를 프로 장기기사의 세계로 데려다준 의붓아버지 코다 씨, 레이와 장기에 대해 뾰족한 날을 세우며 달려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붓누나 쿄코, 그리고 장기의 세계에서 언젠간 레이와 대적하게 될 신의 아이 소야 명인 소야 토지까지……. 레이를 둘러싼 세계의 수많은 인연들을 통해 레이는 앞으로 한 발짝씩 더 나아가고 성장해 나갈 테다. 우리의 임무는 그런 레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며 응원의 메시지를 날려주면 그 뿐이다. 레이 지지마!! 힘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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