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식탁 -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진화론을 배운 기억은 까마득하다. 간혹 기억나는 것은 목이 긴 기린과 목이 짧은 기린 그림이 나란히 그려진 책의 한 귀퉁이이다. 높은 나뭇가지의 나뭇잎을 따 먹을 수 있었던 목이 긴 기린. 그렇게 자연은 선택을 했고, 현재 우리는 목이 긴 기린만을 볼 수 있다.

 진화론은 그럴법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세밀한 부분까지 증명해 내거나 예를 들어 보일 수는 없지만, 삶에 적합한 방법으로 모든게 변해간다는 내용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더구나 무언가가 그 쓰임새에 적합한 형태로 변한다는 그 법칙은 우리 실생활에서도 너무 많이 보아온 모습들이다.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 진화론에도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한다. 가령 진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다가 거대한 자극에 의해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가? 100미터 달리기와 넓이뛰기로 비유한 이런 견해는 둘 다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또는, 남자들은 모두 강간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같은것. 오래전 순위경쟁에 밀린 수컷들은 자신들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강간에 적응했다는 얘기는 끔찍하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런 행위가 정당해 될 수는 없다.

 익히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지만, 또 이런 것도 있다. 이타심은 유전자 차원의 생존을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라는. 이 이야기를 100퍼센트 믿었을땐, 인간 개개인이라는게 보잘것 없게 느껴지기 시작하지만 완전히 부정할 수 만은 없는 설득력이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어디선가 이 세상은 카오스가 점점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 간다는 얘기를 읽었다. 난 그 이야기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변해 간다고 이해했다. 진화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한 세포에서 복잡한 개체로. 진화는 진보일까?

 

 의문들은 많다. 이들 이야기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앎은 아직 그 끝에 닿지 못했다. 언제 닿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어쩌면 영원히 닿지 못 할 수도 있다. 현재 지금의 우리는 그저 새로운 견해에 부딪히게 되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근거로 자신만의 입장을 갖게 될 뿐이다.

 

 그들의 토론은 정교하다. 마지막에 가서 글쓴이의 해명이 없었다면, 나는 언젠가 정말 이들이 이렇게 토론을 했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한 가운데서 한국인이 서기를 했다는 것에 대해 신기해 하면서.

 

 언제나 보아온 식상한 토론을 '식탁하다'로 재 명명한 발상은 참신하고, 도킨스와 굴드를 대결시킨 토론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진화론의 다양한 견해들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진화론에 있어서 어느 정도에 지식 수준에 도달했다고는 말하기 힘들겠지만, 진화론의 다양한 면면들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흥미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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