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누구나 자신 또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교육을 받고,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어 가지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지는 않는다. 각자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다 다르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가 가진 호불호의 차이는 우리가 타인에게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음악 또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천양지차일지도 모른다. 가령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두명의 장신 가드를 뚫고 덩크슛을 한 것처럼 신난다!"라고 신나는 기분을 표현할지도 모르고, 어떤이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세상이 포효하면서 날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운명안에 가둬놓는 기분이었어."라고 절망감을 표현할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이런식으로 자신을 표현한 사람을 만난본 적은 없다. 만나봤다면, 훨씬 재밌었을텐데.)

  책읽는것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정혜윤PD는 자신이 겪는 대부분의 상황속에서 책에서 읽은 구절들을 들춰낸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구절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밖에 기억하고 있지 못할 텐데, 그녀는 구절만을 기억하는 연습을 한 듯, 다른사람이라면 쉽게 지나쳤을 문장들을 읊어댄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생각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우울한 다음 날 술 한잔 딱 걸치고 돌아오는 길엔 수잔 손택의 <우울한 열정>을 읽는게 제격이다. 내 옆의 남자들이 매력 없고 한심해 보이면 <개선문>이라든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나 <빅피쉬>를 읽는다. 사랑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닥터지바고>나 <브로큰백마운틴>을 읽는다. 이렇게 내 감정상태에 맞는 책을 찾아 읽을 수 있다면, 책이 얼마나 삶에 위안이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나는 <비블리오테라피>란 책의 리뷰에, 지금 내 마음이 읽고 싶어하는 책이 지금 나의 감정상태에 가장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책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하겠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 그런 책의 목록을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상황에 맞는 책들을 딱딱 골라낼 수야 없지 않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놀이를 해 보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이럴땐, 이런책.

  그러고보니, 침대에 대한 이야기가 빠졌다. 하루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과를 마치는 시간은 항상 잠들기 직전의 시간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다 보니 책읽기를 취미로 가진 사람들은 침대에서 책 읽기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침대와 책의 관계가 성립하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이럴땐 이런책'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들도 일견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다른책을 더 꼽고 싶은 사람도 많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글귀들은 아름답고, 그 글에서 파생된 그녀의 생각들엔 고개가 끄덕여 질때도 많지만, 또한 나는 원치 않았는데, 너무 사적인 그녀의 영역에 침범해 들어간 듯한 불편함.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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