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품절


"달 보니까 생각나는게 있어. 언젠가 벳푸로 여행을 갔을 때 일이야. 호텔이 무료로 제공하는 반딧불이 투어에 갔는데 말이야. 깊은 숲 속에 맑은 냇물이 흐르는 곳이었어. 그 투어의 가이드는 그 말을에서만 평생을 산 아저씨였지. 그 아저씬 그 온천 마을의 깊숙한 곳까지 알고 있다고 자랑을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의 보름달을 향해 플래쉬를 비췄어. 그때 뭐가 보였는지 알아? 보름달 위로 날아가는 부엉이 한 마리였어. 보름달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는 크고 검은 부엉이의 그림자를 난 본 거지. 그 순간 내게는 그게 내 영혼 같아 보였어. 미래를 향해 날아가는 내 영혼의 그림자. 과거와 미래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말이 뭔지 알아? 과거는 출발점이고 미래는 목표라 생각하지만 그건 틀렸어. 과거와 미래는 공통점이 있어. 과거와 미래의 공통점은 둘 다 가능성이란 것이야! 아까부터 이 말을 너에게 속삭여주고 싶었어. 우리의 우울은 의지박약 탓이 아니고 기질이니까 너무 기를 쓰고 애쓰지 말자. 잘 자."-26~27쪽

그의 머릿속을 따라다니다 보면 진정으로 매력 있는 사람은 매일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게 하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32쪽

하지만 <파브르 평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은 <꿈>이란 제목이 달린 부분이다. '나는 꿈에 잠길 때마다 단 몇 분만이라도 우리 집 개의 뇌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모기의 눈으로 세상을 바람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세상의 사물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것인가?'-78쪽

내게는 수많은 나쁜 일과 몇 개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모든 것, 특히 나쁜 일이 장기적으로 글로 변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행복은 다른 것으로 변환될 필요가 없으니까요.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니까요.

이 문장은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장기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행복보다 불행일 수 있다는 말일까? 보르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 작가, 아니 모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이 유용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 심지어 수치와 장애와 불행을 포함한 모든 것을, 예술의 재료로서... 그런 것들은 우리가 변형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실명은 하늘의 선물입니다.-162쪽

그래서 시간이 덧없는 날, 쓸쓸한 날 진정으로 적합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왜 살아왔는가?'도 아니다. 진정으로 적합한 질문은 이것 하나다. 보르헤스가 ,목격자.란 글에서 던졌던 그 질문.
'만일 내가 죽으면 나와 함께 무엇이 죽고 세계는 서글프로 부서지기 쉬운 어떤 형상을 잃게 될 것인가?' 보르헤스에겐 그것이 목소리, 거리, 책상 속의 물건들이었다.-166쪽

매일의 작은 모욕감은 간이 맡는다. 췌장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충격을 관장한다. 췌장이 얼마나 많이 받아들이 수 있는지 당신이 안다면 놀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은 오른쪽 신장이 맡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느끼는 실망은 왼쪽 신장이 맡는다. 개인적인 실패는 창자의 몫이다.

이 문장은 뉴욕의 떠오르는 별 니콜 크라우스가 <사랑의 역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차례차례 몽땅 다 잃고 혼자 살아남은 폴란드계 유대 노인이 고통을 처리하는 방식을 설명한 글이다.-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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