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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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자네에게 매일 먹을 빵 한 조각만 주면서 왜 굶주리느냐고 묻는다면 자넨 뭐라고 할 텐가?"
이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잠시 생각해보다가 대답했다. "충분히 먹지 못해서 굶주리고 있다고 하지 않을까요?"
"교수님, 많이 배우셔야겠군." 베일리 부인이 말했다. "자, 다시 묻겠네. 만약 내가 자네에게 매일 빵 한 조각을 주면서 왜 굶주리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 텐가?"
한층 어리둥절해진 나는 이판사판의 심정이 되었다. "당신이 먹을 걸 안 주니까?"
"맞았어! 아주 좋아!"
나는 한숨을 놓았다. 더 이상 시험이 닥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베일리 부인은 계속했다. "내가 자네 집 열쇠를 가져가는 바람에 자네가 바깥에서 잠을 자야 한다고 해보세. 어떤 사람이 와서 자넬 '노숙자'로 취급해. 그럼 자네는 뭐라고 할 텐가?"
"음......" 이 질문은 훨씬 어려워 보였다. "부인이 잘못했다고 말하겠죠. 난 집이 있어요. 그러니까...... 아니죠! 난 노숙자가 아니라고요!" 나는 질문에 제대로 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일리 부인은 내 대답에 화가 난 듯했다. "세상에, 자네 자신을 위해 어떻게 해야 했냐고?"-203쪽

적어도 베일리 부인이 문자 그대로의 답을 바라고 이런 질문을 하는건 아니라는 걸 알 만큼은 나도 눈치가 있었다.
"내가 자네 집 열쇠를 가져갔다면!" 하고 베일리 부인이 고함을 쳤다. "자넨 어떻게 되는 거지?" 책상 건너편의 부인이 상체를 앞으로 구부렸다. 내 얼굴 가까이에서 부인의 거친 숨결을 느껴졌다.
"부인이 내게서 빼앗아간 거죠. 그러니까 난 노숙자가 아니라 희생자인 거죠."
"좋았어. 잘 돼가고 있어. 이제 내가 경찰에게 자네가 사는 동네엔 가지 말고 내가 사는 동네에만 오라고 말했다고 해보세. 그런 다음 나는, 자네가 범죄가 만연한 지역에 살고 있으며 그 동네는 내가 사는 동네보다 범죄가 더 많다고 글을 쓰는 거지. 그럼, 자넨 뭐라고 할 텐가?"
"글쎄요, 부인이 경찰을 모두 차지해버렸으니 부당한 처사라고 말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교수님, 이제야 좀 진전이 있군!" 베일리 부인은 두 손을 들어 축하하는 시늉을 했다. "좋아,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고. 자넨 흑인들이 이 주택단지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해. 왜 가난한가. 왜 이렇게 범죄가 많을까. 왜 가족을 부양하지 못할까.-204쪽

왜 아이들은 자라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을까. 그럼 이제는 백인을 연구하겠나?"
"예." 그제야 나는 베일리 부인이, 이곳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결정하고 있는 로버트 테일러 홈스 바깥쪽 사람들에게도 초점을 맞추길 바란다는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우릴 희생자로 만들진 마. 우린 우리가 어찌해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거니까. 모든 게 우리가 어찌해볼 수 있는 건 아니거든."-204쪽

한번은 이 주택단지의 고등학생들 가운데 60퍼센트가 중퇴하는 문제를 논의하러 간 적이 있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다면 빈곤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25퍼센트라고 해요. " 나는 강의하듯 읊조렸다. "어릴 때의 교육, 즉 아이들을 학교에 남아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또한....."
베일리 부인이 끼어들었다. "만약 자네 가족이 굶주리고 있고 내가 자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어쩌겠나?"
"당연히 돈을 벌겠죠 뭐. 내 가족을 도와야 하니까요."
"하지만 학교는 어쩌고?"
"미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까지?"
"가족들이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떄가지요."
"하지만 자넨 학교에 다녀야 하잖나, 안 그런가?" 베일리 부인이 언성을 높여 비꼬듯 말했다. "그게 자네를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테니 말이야."-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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