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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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별반 다를게 없어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제 밤 뉴스를 보지 못하고, 아침에 신문을 읽지 못해, 어제 이 나라에 일어난 큰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나랑 그 일이 큰 상관이 없는 한은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일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알지 못한다 한들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크게 불편할 일도 없다. 이런데도 사회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고자 애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내 자신에게 항상 하고자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냥 모르는 척 해버리는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누구나 알듯이 그런 모든 일들은 지금 당장은 상관 없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은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내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걔중 대다수는 나중에서야 알고 보면 내가 이렇게 된 데에 일조한 일인 경우가 많다. 이런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이 책 때문이다. 

 시카고에 있는'로버트 테일러 홈스'라는 곳.
 정부 보조금을 받는 가난한, 그것도 대다수가 흑인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백인 중산층 지역과는 넓은 공터로 떨어져 있어 도심속의 섬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 보조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공식적인 직업을 갖지 않는다. 10대의 남자 아이들은 갱단에 소속되어 거리에서 마약을 판매하는 일을 할 확률이 높다. 그들 중 몇은 나름대로 성공하여 갱단의 고위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감방에 들어가거나 총탄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자 아이들 대부분은 자라서 몸을 팔게 되거나, 싱글맘이 되어 애인에게는 주기적으로 두들겨 맞고, 평생을 가난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들의 대다수는 코카인 중독자이고, 갱단은 그들에게 코카인을 팔아 돈을 벌어들인다. 

  어쩌면 어수룩한 시카고 대학의 학생 중 하나였을 수디르 벤카테시는 우스꽝스러운 설문조사지를 들고 그들을 찾아간다. 가령, 이런 질문이 적혀 있는. " 당신은 가난하다는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주좋다/조금좋다/그러그렇다/조금나쁘다/아주나쁘다'  이런 그에게'로버트 테일러 홈스'에 세력을 떨치고 있는 '블랙킹스'라는 갱단의 최고 책임자인 제이티와의 만남이 이 책의 탄생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우정'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것인지는 나도 저자도 확신할 수 없다.) 

  '로버트 테일러 홈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경찰에게 기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병원 역시. 심각한 범죄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갱단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스스로 민병대를 조직하여 해결한다. 그들은 결코 경찰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역시 누군가가 다치면, 그들은 환자를 직접 데리고 병원으로 향한다. 구급차는 그들의 다급함에 화답하여 달려와 주지 않는다. 분하지만 가난은 그런것이다. 갱단은 그들에게 코카인을 팔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벌어들인 부정수익들중에서 세금을 떼어간다. 그 댓가는 경찰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전화해도 오지 않는 경찰보다는 갱단들이 '로버트 테일러 홈스'사람들에겐 더 필요한 조직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주민들이 선출한 주민대표가 있다. 주민들의 70~80퍼센트가 싱글맘들인 만큼 주민대표는 아줌마들이 대부분이다. 여기 등장하는 베일리 아줌마 역시 갱단처럼 주민들에게 세금을 받거나, 돈이 없을때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 받고서 주택공사에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주장하거나 갱단과의 권력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면서 한 편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교묘하게 챙긴다. 이들은 서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로버트 테일러 홈스'의 사회를 유지해 나간다. 수디르 벤카테시는 제이티와의 만남을 계기로 이들의 삶속으로 들어선다.

  어느 진보적인 경제학자는 현재의 대한민국처럼 사회양극화가 가속화 된다면, 시장도 두개로 나뉠거라는 얘기를 했다. 현재 우리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같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수 있다.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떤 층을 자주 들를지는 별개로 두고라도.) 하지만 양극화가 심화된다면, 부유한 자들이 이용하는 시장과 가난한 자들의 시장은 행태뿐만 아니라 장소적으로 서로 동떨어지게 될 것이다. '로버트 테일러 홈스'의 지하경제는 시장의 분리로 인한 하층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 될 것인지에 대한 생생한 예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먼나라 일인것만 같은 이 이야기에 무심해 질 수 없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끝은 '로버트 테일러 홈스' 공용주택단지의 철거와 시카고를 떠나는 수디르 벤카테시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더 열악한 거주지로 떠나고, '로버트 테일러 홈스'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제이티 역시 위기를 맞는다. 수디르 벤카테시는 논문을 완성하고 하버드로 떠나게 된다. 그동안 가진자들에 의해 왜곡된 시선으로만 비춰졌던 흑인 빈곤계층의 삶의 진실은 수디르 벤카테시의 연구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로 인해 주민들이 어떤 수혜를 입을 수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무데도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가진것도 없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결국 이렇게 변하여 언제 깨질지 모를 균형을 잡아간다는것을 알게 될 뿐이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냈지만, 그들을 가시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음에, 수디르 벤카테시 역시 어느 정도의 절망감을 느꼈을 거란 생각을 해 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 이야기를 내가 몰랐다 해서 내 삶이 변화될 일은 하나도 없다고 단정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결정적인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다고 본다. (문득,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생각나는 이유는??) 언젠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가장 비극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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