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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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영화로도 개봉한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갑자기 발생한 백색 실명사태는 들불 번지듯 온 세상을 휩쓸고, 사회시설은 마비되며 사상초유의 사태를 맞게 되는 사람들은 그들의 잔인한 본성을 드러낸다. 절망의구 역시 그렇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지름 2미터 정도의 매끈한 표면을 가진 구의 등장은 온 세상을 혼란속으로 빠뜨린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에서 이타심이나 자애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 검은구가 생겨난 연유는 무엇이며, 왜 사라졌을까? 그리고 그 남자가 검은구에 빨려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검은구를 만들어 낸 사람은 남자일거라는 생각을 잠시잠깐 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수준으로는 그 이유를 해명해 줄 수 없기에 작가는 신비주의 방향을 고수한것은 아닐런지.

 

 여하튼 소설안에서 추후에 '절망의 구'라 명명된 검은구의 등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현실에서야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심지어 검은구에 맞서 세상을 구해낼 것으로 보였던 남자조차도 검은구의 접근 앞에선 사람들과의 협력을 거부하며 달아나고, 대중의 분노 앞에서는 잠시나마라도 동거동락하던 청년을 자기 대신으로 던져준다.

 

 "...을 조심하게 젊은이."

 검은구가 나타나기 전 남자에게 충고를 해 주던 할아버지의 말 중 앞마디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검은구의 등장으로 인한 전 지구적 종말은 거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는 심사평이 있었다. 무엇에 대한 은유일까? 이토록 극적인 위기사항이 지구위에 벌어질거라는 생각은 하기 힘들지만, 어쩌면 우리는 검은구의 등장을 목전에 두고 있거나 또는 이미 검은구는 우리를 집어삼키기 위해 느린 속도로 세상을 전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검은구가 어떤 형태를 띄고 있건간에, 절망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그것의 전진은 차츰차츰 우리의 삶을 망가뜨릴지도 모르겠다. 그 상황안에서의 희망의 위치는 "도망치다"와 "도망치다"의 어느 사이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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