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17일 ~18일 

 여자 셋이 모였다. 급조된 모임. 금요일 오후 잠깐 한가한 시간에 메신저에서의 수다가 계기를 마련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와중에 우리 회사의 펜션을 빌려서 놀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가 차 문제로 여자끼리만 가긴 힘들겠다는 아쉬움 섞인 푸념을 하다가 내일 영화를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 S가 들어오면서 모임은 밤으로 정해졌다. 영화를 보고 술을 한 잔 하고, 노래방을 가지는 계획이 암암리에 짜졌다. 

  

 12시쯤 이태원 살인사건을 봤다. 불편한 CGV 영화관의 의자. 초반부터 피가 튄다. 결국은 누가 범인인지 알 수가 없다. 내심 마지막에 한번쯤 누군가 마지막 힌트를 주고 끝나기를 바랬다. 등장인물들은 모르더라도 나는 알고 싶었다. 누가 범인이었는지를. 하지만 검사와 변호사 둘 다 혹여나 자신들이 잘 못 짚은건 아닌지 의심의 고갯짓을 하면서 끝이 날 뿐이다. 용의자 둘이 햇살 환한 거리를 친근하게 얘기하며 걷는 모습에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아마도 '둘이 공모한 짓일거야'란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 

  

 맥주를 마셨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의 관심사는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다. 서로가 잘 아는 주제들이니까. 신랑에 대한 불만. 시댁에 대한 불만. 아기 키우기의 어려움. 결혼한 기혼 여성들이 더구나 결혼함으로써 알게 된 우리들이 나눌 얘기가 더 있겠는가? 언제나 그렇듯이 술이 약한 나는 맥주 두 세잔에 하품만 나온다. 눈에 눈물이 고이고, 춥다. 날씨는 이제 한낮을 빼곤 가을이다. 이야기들은 언제나 그렇듯 그 자리에서 열띠게 진행되다가도 이야기가 끝나면 잊혀진다. 우린 아마도 그저 배설구가 필요했는지도.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도 다른 세상을 부유한다. 그들과 달리 별달리 불만이 없는 나. 기복없는 인생에 안도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노래방을 간다. 일년이상이 지난것 같다. 가본지. 음주가무를 즐기지 않는, 타인의 눈에는 심심해 보이는 나는 아는 노래나 있을지 고민이다. 그나마 이들과는 4년 이상을 알고 지냈지만, 노래방은 처음이라서 매번 부르던 노래들을 불러도 되겠다 싶다. 몇 손가락안에 꼽히는 노래들.  

 아침빛을 보고 돌아선다. 우리들의 기행에 신랑들은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들도 예전엔 그렇게들 피씨방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빛에 집에 들어서곤 했다. 

 사실 그녀들과의 만남에 행복하고 즐거웠다. 이런 기분은 아니다. 뭐랄까 우리 각자에겐 모두 벗어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난 사실 그렇게 강하진 않은 본능이지만, 결혼후 일을 그만두고 얘들까지 키우고 있는 그녀들은 아마 더 강할것이다. 나에게는..? 변화없는 삶은 가끔 지루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 지루함이 길어지면, 우리는 지긋지긋하다고 느낀다. 아니면 그대로도 좋다고 느낀다.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나는..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그 모임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설명하기 힘든 어떤 즐거움을 준 게 사실이다. 그게 무언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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