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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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제법 유명한 그녀의 책을 이제서야 처음으로 읽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가 읽은 그녀의 첫번째 책이다. 그녀는 원래 이런저런 활동으로 유명하기도 했지만, 이름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다. 처음에 난 그녀가 중국사람인줄로만 알았다.  여하튼 내가 읽은 그녀의 첫번째 책 안에는 안락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모르고 있는 일들이 가득하다.

 

 긴급구호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생경하다. 우리가 태어난 시절만 해도 '보릿고개'란 단어가 실생활과 밀접했다고는 하지만, 나에겐 밥을 굶었거나, 밥이 모자라 허기가 져서 살았던 기억은 없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기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얘기해 주는 것을 듣고서도 '그런가 보다'하는 생각만 들었다. 몇날, 몇달을 제대로 된 한끼 식사를 하지 못한 아이들의 신체기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정상적인 사람으로 자라지 못한 모습을 보며, '정말 기아가 무서운 거네.'라는 잠시잠깐의 생각밖에 해 본 적이 없다. 먹을거에 있어서만은 항상 풍족하게 살아왔던 습관이 빈곤한 사람들이 겪는 기아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우리에겐 남의 일이지만, 지구상의 모든 자원을 불균등하게 사용하고 있다는걸 생각해 본다면, 잘 먹고 잘 입는 사람들이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것은 의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겠지만, 굶주리고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이 그렇게 된 건, 결코 그 나라들이 자원이 부족하거나 게으른 탓은 전혀 아니다. 대부분의 기아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휩쓸려, 걔중에서도 소수는 잘먹고 잘 살고 있지만, 거의 대다수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탈출할 수 없는 빈곤 상태에 놓이게 된다. 가까운 예로 북한을 봐도 알 수 있다. 6.25 전쟁 전만 해도 남한보다 더 자원도 많고 산업기반시설도 발전했던 북한이지만, 잘못된 정치적 선택과 억압으로 인해, 이젠 빈곤국이 되었다. 결코 국민들이 게으르거나 그 곳의 자원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대다수 남반구 나라의 기아는 또한 선진국들의 탓도 크다. 국민총생산에 맞먹는 또는 그보다 더 큰 빚을 선진국들에게 가지고 있는 그들 남반구 나라들은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아, 그들 자원을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고, 삶은 더욱더 빈곤해 지기만 한다. 존 퍼킨스의 '경제저격수의 고백'이라는 책을 보면, 그 빚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이해 관계로 교묘하게 옭아맨 덫에 걸려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세상의 지식인들이 빈곤국들의 부채탕감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한 선진국들은 그런 얘기를 귓등으로 듣고 있다.  UN 식량 담당관이었던 '장 지글러'가 쓴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는 책을 보면, 지구상의 식량의 총합은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충분히 남는다고 한다. 결국은 분배의 문제이고, 운 좋고 힘 있는 사람들이 식량을 다 차지하고 있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빈곤국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긴급구호는 빈곤한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것이기도 하고, 잘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한들,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서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녀가 긴급구호팀장으로 세계 빈민들을 돌보는 모습은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한다. 비록 나는 안락하고 편안한 삶에 만족해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는 어렴풋한 소망을 갖기도 한다. (낯선 사람이라면 덮어놓고 두렵고, 타인과의 소통이 어렵기만한 해서 혼자 있기를 유달리 좋아하는 내가 그럴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지는 미지수이긴 하다.) 어쩌면 나도 무언가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 사실 그녀의 문장들은 내가 좋아하는 아름답고 단아한 느낌들을 내고 있진 않다. 오히려, 그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듯, 솔직하고 명랑하고 명쾌한 듯 하다. 예쁘게 다듬어지지 않은 석기시대 악세사리들을 보는 느낌. 처음에는 그래서 그녀의 문장들에서 우락부락함에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읽어가는 내내, 그 내용과 어우러져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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