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풀며 - 리처드 도킨스가 선사하는 세상 모든 과학의 경이로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최재천.김산하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것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독특한 병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 중 하나인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하늘의 평상시답지 않은 움직임은 세상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예언을 행하고, 빛의 굴절로 나타나는 무지개에서 황금단지를 가진 요정을 보며, 달의 분화구 얼룩에서 방아 찧는 토끼를 발견해 내곤 해왔다. 하지만 지난 세기 과학의 발명은 너무나 눈부신 속도로 진보했고, 이제 우리는 세상엔 그런 환상이 없다는것을 이성으로 알고 있다. 혹자는 낭만이 사라진 시대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얘기하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야기다.

 

 이제 우리는 무지개가 왜 생겨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원리를 이용해서 손 쉽게 무지개를 만들어 낼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별들이 현재의 별들이 아닌 머나먼 과거의 별들임을 안다. 지금 그 별들의 모습은 우리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그 자신의 모습들이다. 달에서 절구에 방아를 찧는 토끼는 분화구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임도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우리가 얼마나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인지도 알고 있다. 우리의 인식너무 세상이 얼마만큼 큰지 정확하게 대답하지는 못하지만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세상은 더이상 날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 아니면 무언가의 중심을 돌고 있을 뿐이다.

 

 '과학'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면서, 우리 자신은 보잘것 없어졌고, 우리가 모르는 세상은 점점 더 커져 가기 시작했으며, 더이상 요정이나 환상같은 낭만은 사라져 버린듯하다. 자신이 최고의 피조물인양 당당했던 인간에게 이것을 얼마나 치욕적이면 충격적이었을까? 더구나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인간적 자부심은 노력만으로 다시 얻기엔 세상의 크기는 너무나 거대하고 인간은 너무나 작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윤리학자와 신학자들은 수정의 순간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이때부터 비로소 영혼이 존재한다고 여긴다. 나처럼 이런 말이 잘 와 닿지 않는 사람이라도 태어나기 9개월 전의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길 만하다. 이 순간은 바로 일초전보다 당신의 의식이 갑자기 수억 배 더 분명해진 순간이다. – 19쪽
 

 우리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 수백, 수천개의 존재중 우리 자신이 의식을 갖게 된 것. 다른 존재가 아닌 나 자신이 의식을 갖게 된 것. 과학으로 밝혀진 진실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순간, 난 의식을 갖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랬다면 세상은 이렇게 존재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나레이션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 또한 얼마나 경이로운지. 모든 개인은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죽는 순간에도 우리의 세계는 다음세대에게 DNA를 통계 인계된다. 우리의 일부를 가진 나의 후손에게도 그만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별빛은 이제 더 이상 낭만적인 빛의 점들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 빛을 통해 우주의 존재를 확인한다. 검은 밤 하늘 너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보다 수억, 수조 배 큰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록 별빛속에 스며든 죽은 사람의 영혼을 느끼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더 큰 진실이 덜 낭만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사실 힘겨운 책이었다. 쉽게 씌여진 책이라는 출판사의 광고문구가 무색하게 읽는 내내 자꾸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맴돌아 제대로 읽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경이로움을 느끼는 한편, 혼란스러웠고, 어지러웠으며 구토감과 욕지기가 드는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새삼스레 '과학'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그저 학습과목 중 하나였던 '과학'. 하지만 그 속에는 내가 모르던, 무한한 우주가 존재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논리적이고 딱딱하고 건조한 냄새를 풍기지만 그 안에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은 아는만큼만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알지 못하는 것들은 봐도 자신의 세계안에 들어차지 못하고 흘러서 사라져 버린다. 더 많이 알고, 알고자 애쓰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알고자 전혀 애쓰지 않는 사람에 비해 얼마나 풍부한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종종 잊거나 전혀 인식하지도 못하곤 한다. 사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풍부하고 다양하고 즐거운 세계에 살 것인지, 빈약하고 그저그런 무미건조한 세계에 살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여기, 과학이 결코 세상을 건조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오히려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고 깨닫게 해 주는 사람이 쓴 책 한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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