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책
박민영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9월
구판절판


만약 외적인 생활만 본다면 마르크스는 배불뚝이 알코올 중독자요(그는 평소에 맥주를 폭음했다.) 발자크는 위선으로 얼룩진 낭비벽 심한 속물이었다. 반 고흐 역시 괴팍하고 우울한 인간일 뿐이다. 지금 그들이 우리 곁에 살아 있다면 우리는 결코 그들을 쉽게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가 그들의 본질을 구성한다. 그것을 모르고서 '그를 안다'고 할 수 없다.-29쪽

사랑에 빠져서 연애편지를 읽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읽는다. 그들은 단어 하나하나를 세 가지 방식으로 읽는다. 그들은 행간을 읽고 여백을 읽는다. 부분적인 관점에서 전체를 읽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부분을 읽는다. 문맥과 애매함에 민감해지고 암시와 함축에 예민해진다. 말의 색채와 문장의 냄새의 절의 무게를 곧 알아차린다. 심지어 구두점까지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해 내려 한다.
-모티머 애들러 [독서의 기술]-32쪽

지금은 젋은 사람 중에 문맹자가 거의 없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문맹자들이 군에 입대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김화영은 당시 군복무를 하면서 공미교육대라는 군사학교에서 문맹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임시 교사 노릇을 했다.
글을 깨치는 것이 느린 피교육자들은 종종 고향에 있는 아내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편지 속에는 부부 사이의 가장 내밀한 마음의 표현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 부탁하는 피교육자나 부탁을 들어 주는 교육자는 피차 쑥스러운 때가 많았다.
그날도 피교육자 하나가 몹시 부끄러워하며 편지를 읽어 달라고 통사정하는 사람에 김화영은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냈다. 편지에는 커다란 그림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그의 아내가 백지 위에 손바닥을 댄 채 손가락의 윤곽을 따라 연필로 서투르게 줄을 그은 그림이었다. 그 아래에는 판독하기 어려운 서투른 글씨로 딱 한줄의 글이 쓰여 있었다.
"저의 손이어요. 만져 주어요."
-33~34쪽

"독서하는 사람에게 독서가 가지는 특징은 그것이 노년에 가서도 즐길 수 있는 좋은 정신적 취미라는 점이다. 인생은 어느 고비를 지나면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필요할 때가 온다." - 서머싯 몸-43쪽

새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물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는 책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52쪽

버리기 위해서는 우선 모아야 합니다. 버리는 것, 포기하는 것, 체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버릴 게 있어야 합니다. 체념할 것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명상이나 요가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오직 버릴 것이 있는 사람들, 포기하고 체념할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 요가와 명상이 의미를 지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이던 사람도 돈이 많아지면 갑자기 이상해지곤 합니다. 몸의 욕구에 탐직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한편, 먹고사는 문제가 발목을 잡으면, 고도의 정신 세계를 추구할 가능성이 약해집니다. 다시 말해서, 물질의 풍요는 정신적인 풍요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57쪽

여기에서 하나의 결론이 도출된다. 그것은 독서가 다른 사람의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텍스트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힘을 총동원하여 책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나아가 자신의 생각을 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한 권의 책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읽어 온 다른 책들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된다. 그 관계 속에서 다양한 의미가 형성되고, 그 의미가 확장된다. 텍스트의 의미가 독자의 지적 재부를 바탕으로 해석되므로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독자는 그렇지 못한 독자보다 훨씬 풍부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개인의 지적 능력이 독서량에 비례해 발전하지 않고,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그 풍부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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