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 다닐때 문창과 아이 하나와 룸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은 술도 많이 마시고, 방에도 잘 안 들어오고, 무언가 고민이 많은 듯 찌푸리고 다니고, 무엇보다도 올빼미족이었다. 햇볕을 눈부셔하며 어색해 하던 아이들. 그러고 보니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이었긴 하지만, 여하튼 그들은 일반인들과는 좀 달랐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것 같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든 늦은 밤에 원고지를 구기고, 머리를 쥐어뜯고 흡사 미친 사람처럼 신든린듯 글을 써 나가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런면에서 얼마나 독특한 소설가인지, 하는 생각이 든다. 밤에는 일찍 잠이 들고, (심지어 일찍 잠이 들기 위해서 저녁에는 사람들과 약속도 잡지 않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시간 동안 꾸준히 글을 쓴다. 그리고 꾸준히 달리기를 한다. 그리고 심지어 마라톤 풀코스를 그 동안 25회 완주했다.

 

  서머셋 몸Somerset Maugham은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라고 쓰고 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 7쪽

 

 무라카미 하루키는 제법 끈질긴 인간인 모양이다. 좋게 얘기하면 인내심이 강한 인간이랄까? 어쩌면 시작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망가지기 시작한 몸매를 추스르기 위한 단순한 목적이었을 테지만, 어느 순간 달리기는 그에게 하나의 삶의 방식, 가치관으로 격상한 것 같다. 달리기 빼고는 그의 존재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문득 그의 달리기에 관한 글들을 읽다가 그의 소설들이 여타의 일본소설들과 달리 몽상적이었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엔 별 다를 것 없는 그의 인생은 소설 속 주인공들의 별 다를 것 없는 실질적인 삶들과 닮았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것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소설속 인물들의 삶은 더 이상 단조롭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도 겉으로 보기에는 규칙적이고 변화 없는 단조로운 삶인것 같지만, 그런 그의 머릿속 세상은 어느 누구보다 폭발적인 환타지들로 가득차 있는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 그게 내가 퍼뜩 떠올린 생각이었다. 글쓰기와 달리기. 반복적인 패턴과 리듬 속에 무작위적으로 태어나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들.

 

 새로운 하루키를 알게 되었다는 기분과 이제까지 알던 하루키를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는 기분이 공존하게 했던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