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 - 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
개리 마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갤리온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머리를 쥐어박고 싶을 만큼 자신이 한심한 적이 참 많다. 가령, 몇 일전 또는 몇 달전 혹은 몇 년전 어딘가에 놓아 둔 사진, 도장, 자격증 등등, 도무지 찾을 수가 없을때, 분명 그 당시엔 "여기잘 둬야지."하고 뒀는데, 어디다 자~알 뒀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다. 여기저기 뒤져보다 망연자실. 또, 내일 당장이 시험 또는 과제 제출일인데도, 소설속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한 없이 잠이 와서 그냥 내처 자 버리는거다. 그때마다 드는 "난 왜 이런 인간인 거냐??"하는 생각.

 

 그런데, 이게 나만의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뉴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개리 마커스는 "클루지"란 책에서 이런 현상은 결코 개인의 특수한 상황이 아닌,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많은 일들을 필요한때 적절히 기억해 내지 못하고, 미루기가 일상다반사인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클루지(kluge)란, 임시방편의 해결책을 얘기하는 단어라고 한다. 문제가 생겼을때, 완벽한 해결책은 근본적인 부분부터의 수정이겠지만, 시간상의 제약등의 이유로 그게 여의치 않을때, 되는대로 임시방편적으로 낸 해결책 같은것들, 그런게 그 해결책이 나름 효과적일때, 그걸 클루지라고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의 가장 큰 명제는 인간의 심리는, 의식은, 두뇌가 돌아가는 체계는 클루지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난 참 당혹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진화의 가장 정점에 서 있는 인간의 모든 기관은 (심지어 두뇌와 심리까지)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고 가장 완벽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아무런 비판없이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보니, 지식이 짧은 탓이다. 그 전에도 이런 얘기는 무수히 많았던 모양이다.)그런데 이 사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인간의 모든 기관과 심리적 장치들은 기존장치를 가지고 급속하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덧붙이고, 꼬고 방향을 선회한 클루지들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완벽한 최고 정점을 향하지 못하고, 적당히 별 탈 없는 어느 선에서 타협하여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뱀과 거미를 소름끼치도록 싫어하는 우리의 심리상태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가? 인류가 처음으로 생겨나 살았던 신생대 제 4기 홍적세때,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적은 맹수들과 뱀과 같은 파충류, 독을 가진 거미류들이었을 것이다. 목숨을 위협하는 생물을 싫어하는 우리의 심리상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 것이라는게 "개리 마커스"와 같은 진화 심리학자들의 의견이다. 그런데 이런 심리는 요즘같은 현대 시대에는 시대착오적이다. 오히려, 현재의 인류는 자동차를 더 싫어하고 두려워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심리는 현대를 겪은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그런 심리기제가 적합하게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 자동차가 사라질때쯤 되면 인류도 적응하여 자동차를 뱀과 거미를 보듯 싫어하게 될까? 이것은 알 수 없는 문제이긴 하다.

 

 "개리 마커스"는 우리에겐 두가지 심리체계가 있다고 본다. "반사체계"와 "숙고체계"다. "반사체계"는 말 그대로, 반사작용처럼, 우리 유전자 깊숙히 각인되어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체계이고, "숙고체계"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나타나는 체계이다. 우리의 심리는 이 두 체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론을 내린다. 이 결론은 "숙고체계"의 승리로 합리적이고 개개인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될 수도 있겠지만, 과제나 시험공부를 미루거나 과식을 하는 것처럼, "반사체계"가 승리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실수와 잘못들은 대부분 이 두 체계의 경쟁에서, "숙고체계"가 승리를 거두지 못한 탓이 클것이다.

 

 물론, "클루지"인 우리의 심리가 단점만을 가진것을 아니라고 말한다. 정말 완벽한 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이 만들어졌다면, 세상은 완벽했을 것이다. 단, 지루하리만치. 범죄도, 사고도 어떤 문제점도 세상엔 없었을 테고, 그만큼 어떤 변화도 발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흥미진진한데는, 완벽하지 못한 우리의 심리체계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클루지인 우리의 심리체계를 극복하고 보다 더 나은 우리 자신을 만들 방법은 없을까?

 

 개리 마커스는 13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1. 대안이 되는 가설들을 되도록 함께 고려하라.

2. 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라.

3.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가 아님을 명심하라.

4. 여러분이 가진 표본의 크기를 결코 잊지 말라.

5. 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

6. 막연히 목표만 정하지 말고 조건 계획을 세워라.

7. 피로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는 되도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8. 언제나 이익과 비용을 평가하라.

9. 누군가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10. 자신에게 거리를 두어라.

11. 생생한 것, 개인적인 것, 일회적인 것을 경계하라.

12.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13. 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

 

 무언가 결정을 해야 할 온갖 소소한 일상에 부딪힐때, 내가 위의 열세가지 항목을 기억해 낼 수 있을지는 참 자신없는 일이다. 사실 나는 모든 결정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게 최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동안 갖고 있던 내 신념이 잘못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든다. 그런데, 문득 드는 의문 중 하나는 내가 합리적으로 생각할 만한 정보를 내 손 안에 모두 갖고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순간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것. 아마 아주 작은 일들에 난 합리적이려 애쓸 수 있겠지만, 역시 난 "클루지"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인 "개리 마커스", 그는 저글링과 외발 자전거 타기가 취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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