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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반양장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은지 만 하루가 지난후에, 다시한번 서문을 읽는다. 그는 산호(珊瑚)와 진주(眞珠)를 소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산호와 진주는 너무나 깊은 바닷속에 있다. 파도는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그는 고작 조가비와 조약돌을 줍는다. 그가 직접 찾은 것들이기에 가엾기도 하고 가끔은 고운것 같기도 하다. 그는 산호와 진주를 소원하고 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단지 그는 그가 모은 조가비와 조약돌에게 '산호와 진주'란 이름을 지어준다.
난 무엇보다도 이 서문이 참 좋다.(그냥, 좋다가 아니고 '참 좋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의 수필들을 읽는 내내 '참 좋다'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어린아이 같은 철 없는 마음. 때론 성인군자같은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 때론 삶의 무게에 괴로워하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 그 모든게 여기 한권에 다 들어 있었던 듯하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는 마음속의 모진 마음들이 눈 녹듯이 다 녹는게 느껴졌다. 내가 느끼던 일상에서의 번뇌들이 한없이 보잘것 없게만 느껴졌다. 이런 마음만 가지고 산다면, 세상에 악독한 일이 일어날 틈이나 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못된 마음을 오히려 우대하려 애썼던 위악적이고자 한 내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산호와 진주를 꿈꾸던 그는, 산호와 진주를 얻는거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주워 모은 조가비와 조약돌에게 산호와 진주란 이름을 지어준다 했다.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난 내가 주워 모은 조가비와 조약돌을 얼마나 무시하고, 부끄러워 했던가? 없으면, 아쉬워 하면서도 산호와 진주처럼 대해줄 생각은 못했다. 어차피 산호와 진주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인데도.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분명 잘생기진 않았을지라도, 아름다운 얼굴일 거라 상상이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들을 썼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만 하루가 지나면, 힘들기만 한 세상살이를 또 하루 겪고 나면, 혼탁한 마음을 비우기 위해, 난 이 책의 서문을 읽고 또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