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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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비교적 좋아했던, "나의 미카엘"이라는 소설에서 그녀는 항상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미카엘, 나는 모든것을 기억하고 있어요."

  가끔 궁금해지곤 했다. 기억이라는것의 존재 의의는 무얼까? 하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수십가지 일들이 기억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날의 기억이 어느 한순간은 너무 선명하게 기억나곤 해서 경이롭던 순간의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도 1초, 2초가 지나면, 과거가 되고, 기억으로만 남겨져 버린다고 생각하면, 갑작스레 팔뚝에 소름이 돋곤 한다. 

  이 책 초반에도 등장하지만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란 책엔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올리버 색스는 기억은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현재 지금의 나를 만드는 역사는 모두 기억이라고. 기억이 없다면 그 사람은 정체성을 잃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체성을 잃은 사람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도 말한다. 우연히도 나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읽기 바로 전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었다. 

  "얌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보도니 씨는 알 수 없는 사고로 기억을 전부 잃는다. 어떤 기억 한 조각도 보도니씨의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어느 누구도 정확히 밝힐 수 없는 머릿속 어딘가에는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부분에 손상을 입게 되면, 기억은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실체가 없는 영혼같은 이 기억들이 어떤 유형의 물질 손상으로 인해 사라진다니 실로 내게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다. 

  보도니씨는 그리하여 기억을 찾아 세상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분명 보도니씨 마음속 깊은곳에 있는 기억의 어느 맥락과 맞닿는 사실 또는 사물들을 만나게 되면, 마음 한구석에 이는 일렁임을 겪게 된다. "신비한 불꽃"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소중하다든지, 너무 두려워서 타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보도니씨에게도 분명 그런 기억이 있지만, 기억을 해 낼 수가 없다. 그리하여 보도니씨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솔라라로 향하게 되고, 그 곳에서 보도니씨가 어린시절 접했던 수 많은 만화책, 책, 잡지등을 탐독함으로써 자신의 어린시절을 하나하나 이성적으로 구축해 나간다. 
 이 많은 만화책과 소설, 잡지등을 언급한 부분에선 움베르트 에코의 폭넓은 독서량과 잡학다식한 지식들에 놀라면서도 사실 지루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건너 뛰고 싶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여하튼, 보도니씨의 기억이 되살아 나는 부분은 좀 애매모호하게 결말을 맺는다. 기억을 잃었던 보도니씨는 기억을 되찾고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듯도 싶기도 하고, 최종적인 기억의 정수 (릴라에 대한 기억)는 결국 사라져 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다. 이런 불분명한 끝맺음이 상상력을 자극시키긴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인간이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식상한 질문이 내내 떠올랐다. 생물학적인 요구사항 말고도, 두뇌가 지배하는 또 다른 필요부분이 있는게 아닌가 싶은. 어쩌면 그런 부분이 우리가 다른 타 종족의 생물로부터 자부심을 갖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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