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 digilog - 선언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한때는, 그리고 지금도 가끔 난 한알만 삼키면 포만감을 느끼고, 한끼 식사로 충분한 영양소를 완벽하게 갖춘 알약을 갖기를 소망하곤 한다. 유난히 야근, 철야가 많고, 순식간에 해치워야 할 일들이 많은 날은 그 소망이 더욱 더 간절하기만 하다.

먹는 행위의 하찮음. 그건 나도 모르게 체득되어 구현되는 인식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금만 더 관심있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오만잡다한 행동에 "먹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이를 먹는다. 마음을 먹는다. 돈도 먹고, 욕도 먹고, 챔피언도 먹고, 겁도 먹고, 애도 먹는다.> 또 식사를 함께 함으로써 타인과 더욱더 친근해지기도 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때도 먹는 음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먹는 행위를 하찮게 여겼던, 마음의 이면에는 많은 행동에 "먹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만큼 먹는것에 대한 강한 의지와 집착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인지 컴퓨터나 인터넷에도 먹는것과 관계된 말이 많다. 최신 정보는 "따끈따끈한 자료"라고 표현되고, 유명한 애플사는 "한입 베어문 사과"를 브랜드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 중에서도 "자바"라는 커피 브랜드 네임을 차용한 "자바 언어"가 있다.

여기까지 보면 디지털과 먹는행위가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래서 작가도 모든것에 "먹는다"는 말을 붙여도 의미가 통하는 우리의 의식이 디지털 시대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그 "먹는다"는 1차원적인 의미가 아니라, "먹는다"라는 행위 속에 내재된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면모들 -선善을 사랑하고,내 이웃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그런-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고 여겼던 인간적인 감정들, 의식들, 제례들이 불연속적이고 차갑다고 상징되는 디지털 시대의 부정적인 면을 개선하고 더욱 더 발전된 세계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디지로그정신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책을 읽는 내내, 이동통신 광고의 카피문구가 자꾸만 생각났다.

  "사람을 향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