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사람 가랑이 밑에서 오랫동안 달렸다고 그 말을 자기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말이 보기에 사람은 그저 등에 실린 물건일 뿐이다. 어쩌면 말은 진즉부터 사람을 자기 몸의 한 부위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 P25

세월이 흘러 마침내 무언가가 등 뒤에서 슬금슬금 나를 따라잡았다. 모두 엄청난 것이지만 젊을 때는 대수롭게 여기지도, 마음 졸이지도 않았다. 어느 날 돌아보니 어느새 그것들이 지척에 와 있다.
그제야 나는 지난 세월 쉬지 않고 달린 말과 말 탄 사람을 이해한다. 말은 사람에게 채찍질당해 달리는 것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말은 스스로 달아나는 거다. 말은 태어나자마자 달아나기 시작한다. 사람은 그저 말의 속도를 빌려 자기 운명의 액운에서 벗어나려는 거다. - P25

거창한 일들을 마무리하는 사람은 따로 있구나 싶다. 그는 사람들 뒤에 멀찍이 떨어져 그들이 다 했다고 여기는 일을 마저 한다. 수많은 일이 이런 식이다. 시작한 사람은 잔뜩 있지만 막판에 이르면 어느 한 사람 몫이 되고 만다. - P33

내가 풀과 나무의 몸에서 얻은 것은 사람의 몇몇 이치일 뿐 초목의 이치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초목을 이해한 줄 알지만 실은 나 자신을 이해했을 뿐이다. 초목에 대해서는 통 모른다. - P51

둔덕 하나를 택한 쥐는 둔덕 꼭대기에 올라 멀리 내다보며 스스로 높은 곳에 있다고 며기지난, 이 조그만 둔덕이 커다란 구덩이 속에 있는 줄은 모른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근시안적 행태는 쥐는커녕 사람도 피할 길이 없다. - P55

바삐 움직이는 이들 수확자를 보면 풍작의 기쁨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만물의 것임이 느껴진다.
우리에게 경사스러운 날에 쥐가 흐느끼고 새가 슬피 운다면, 우리의 기쁨은 얼마나 쓸쓸하고 거북할까.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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