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범죄소설을 읽기 적합하지 않은 때는 언제일까요?" 두 작가 중 한 사람이 던진 질문에 무대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틀린 대답을 내놓자, 작가 본인이 그제야 정답을 알려주었다. "북한에 여행 갈 때죠. 최소 십 년은 노동교화소에서 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에요."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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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아이는 자신이 카프카의 펜 끝에서 탄생한 황당한 이야기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잠에서 깬 주인공이 벌레가 되었음을 깨달은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사이위의 쓰우 가문에 발을 한 발 들여놓기만 하면, 그 순간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현대사회에서 벗어나 봉건적이고 보수적인 고대의 전제국으로 돌아갔다. - P183

시민들은 안심하겠지. 악은 선을 이길 수 없다고, 결국은 정의가 실현된다고 믿으면서 말이야. 진실이란 건 매립지에 묻어버린 쓰레기 같은 거야. 나 말고 누가 그 쓰레기를 뒤져보고 싶어하겠나?" - P199

홍콩에서는 비싼 임대료 탓에 서점이 대부분 1층이 아닌 2층에 문을 열다보니 ‘2층 서점‘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나중에는 2층의 임대료도 감당하기가 버거워져서 점점 높은 곳으로 옮겼고, 심지어 10층 이상으로 올라가는 서점도 생겼다. 결국 ‘2층 서점‘이란 용어는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 표현이 되면서, 대기업에 속하지 않고 소자본으로 운영된다는 특징을 반영하여 ‘독립서점‘이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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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좁은데 땅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부유한 도시 홍콩, 그런데 홍콩에 사는 시민들에게는 퇴직금이 없다. 길거리에서 나이든 노인이 허리를 굽히고 등을 구부린 채 쓰레기통과 분리수거함에서 폐품 줍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찾아다가 현금으로 바꾸어 생활하는 것이다.
나이들어 하층민이 되지 않기 위해, 인생의 목표를 아주 현실적으로 잡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집안이 부유해서 뒷일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형편이라면 모를까, 이상을 쫓아가며 살 수 있는사람은 없다.
이런 제도하에서, 남자의 매력이란 인품도 성격도 관심사도 아닌 그의 재산과 수입이다. - P147

이 가족 안에서 ‘남녀에 대한 대우가 다르다‘는 말은 예의상 순화한 표현이었고, 제대로 된 표현은 ‘여성을 차별한다‘였다. 여성들은 속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느꼈지만, 그 누구도 권익을 쟁취하기 위해 뭔가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돈을 타기 위해 입을 닫았고, 이 불공평한 제도의 방조자가 되었다. - P153

결혼하기 전에는 남녀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가 결혼 후에 가면을 하나하나 벗어던져 서로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된다고, 학교 친구가 말했었다. - P154

원후는 시험관아기 같은 방법은 너무 허무맹랑하다며 거부했다. 셰우이는 그제야 남편이 본인보다 겨우 열 살 더 많은 사십대이지만, 사고방식은 자신보다 두 배는 나이든 노인과 다를 바 없는 수준임을 깊이 실감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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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신분이 어떠했든 인간은 죽고 나면 두 종류로 나뉜다. 누군가 제사를 지내러 오는 사람과 잊힌 사람으로. - P20

가족들은 사회복지와 사회학의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즈아이가 사회복지를 전공한다고 생각했다. 즈아이도 바로잡기 귀찮았다. 어차피 그들은 21세기를 살면서도 여전히 여자는 재능이 없는 게 복이고 공부는 해봤자 소용이 없으며,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아무리 일을 해도 가족이 임대료로 벌어들이는 수입만큼 풍족하지도, 삶이 수월해지지도 않는다고 여겼다. - P51

쓰우 가문은 거대한 철제 우리와도 같았다. ‘쓰우‘라는 성을 달고 태어난 그날부터 즈아이는 그 철제 우리에 갇혀 있었다.
즈신처럼 철제 우리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에게는 없는 능력과 용기가 필요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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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선험성이 그러하듯 우리가 ‘마을‘을 쓰기 전에 ‘마을‘에 대한 상상은 이미 우리의 머릿속에 있었다. 수용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문학사에서 체득한마을 서사는 숙명적으로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첫째는 유토피아적인 패턴으로 전원시적인 묘사, 지나치게 아름다운 환상이다. 둘째는 계몽적 패턴으로 연민과 자연스러운 겸손이다. 셋째는 원형적 패턴으로 문화적 화석과 같은 가족 국가 모델이다. 이후의 저자들은 언제나 이들 중 하나에 속했다. - P429

문학(비단 문학만이 아니라)의 경우, 가장 피할 수 없는 것은 작가가 무언가를 ‘보기‘ 전에 이미 완전한 개념과 핵심 단어를 갖고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개념을 사용하여 이를 이해하고 분석한다는 것이다. 루쉰의 소설에 등장하는 ‘마을‘은 원형과 계몽으로 가득 차 있으며, 무지하고 낙후하며 혼란스러운 국민성과 생활방식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중국 농촌의 평범한 생활과 생명의 내면적 개방성을 무시하거나 박탈하고 있다. 그것들은 역사적 공간, 고형화된 공간, 생명력을 상실한 공간에 갇혀 있다. - P432

나는 량좡의 역사와 현실을 모두 썼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사실 어떤 작가도 자신이 모든 진실을 썼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량좡과 나의 량좡은 확실히 다르고, 칭리의 량좡도 아버지의 량좡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량좡으로 돌아가고, 함께 량좡을 떠나고, 함께얘기를 들어도, 당신과 내가 보는 것과 쓰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중략) 우리의 진실은 모두 선택을 거친 진실이다. ‘논픽션‘이라는 제목이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해도 내가 쓴 글이 모두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P440

당신이 소설에서 허구, 상징, 과장을 사용하든, 논픽션에서 정확성, 세부 사항, 재현을 사용하든 우리가 궁극적으로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은 우리 자신이 세상을 인식하는 하나의 도식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글의 사전 논리를 경계하고 검토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문학 작품에 있어서의 ‘진실‘은 ‘이렇다‘가 아니라 ‘내가 보는 바로 이것이다‘를 지향한다. - P441

‘나‘도 ‘량좡 마을을 떠난 사람‘이다. 내가 ‘량좡‘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량좡‘에 대한 판단은커녕 도덕적 판단도 할 자격이 없었다. 오히려 ‘내‘
가 피질문자가 되어야 했다. -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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