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생각하면 과연 아베와 구로다가 시행한 통화정책/재정 부양 콤보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이 내렸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들은 일종의 경제적 환각 상태‘를 만들어 그 에너지로 2013년 7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할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선거를 이기기만 하면 자민당은 헌법을 뜯어고치고 전체주의 정권을 세우는 데 필요한 과반을 상하 양원에서 모두 차지하게 된다. 그 전체주의 정권은 일본을 일류 국가로 재정립하는 데 필요한 일(필요하다면 경제 개혁도 포함해서)에 반대하는 세력을 잠재울 합법적이고도 강제적인 권력을 갖게 된다. - P563

정권이 선동과 가장을 통해 진짜 목표를 잠시 숨겨둘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정권도 원하는 것을 다 이루지는 못한다. 어느 순간에는 우선순위를 정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한정된 정치적 자산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 P566

일본의 입장에서 이런 바람은 한여름의 맑은 날에 예고 없이 왔다 가는 폭풍우와도 같다. 모두들 늘 원래 하던 대로 일을 하는 와중에 미국으로부터 뭔가를 요구받는 강풍이 갑자기 불기 시작한다. 워싱턴에서 날아온 사절단이 특별한 요구 사항을 흔들어대며 폭우를 내리고, 미국의 기업가, 정치인, 통상 관료들이 쏟아내는 엄포의 천둥으로 도쿄 중심가의 창문이 흔들린다. 일본의 정책 담당자들은 먼 옛날의 제사장들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무엇을 제물로 바쳐야 신의 노여움을 달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중략) 제물이 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해가 바뀌고 연대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지만, 일이 전개되는 패턴은 거의 똑같다. 폭풍우가 거세어지면, 미국의 타깃이 된 특정 상품이나 협약으로부터 이익을 취하던 업계, 정치인, 관료, 노동자, 농부, 하청업체의 네트워크가 소환당해 미국이 만족해서 물러갈 만큼의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고는 미국 대통령이 TV에 나와 국민에게 흔들어 보일 수 있는 협정 같은 것이 맺어진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바람은 잦아들며, 천둥 소리는 일본이 정말 자유무역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를 의심하는 태평양 너머의 울림으로 멀어져간다. 일본의 통상 교섭진과 외교관들은 이번 폭풍우를 잠재우는 데 필요한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정치인과 관료들은 희생의 부담을 뒤집어써야 했던 대상에게 조용히 보상해줄 것이다. - P568

아베의 정치적 자산은 2013년 말 비밀정보취급에 관한 법안을 의회에서 강행 통과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특정비밀보호법‘이라 불린 이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원하는 모든 것에 보안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고, 고의성이 없을지라도 보안 사항의 내용을 파악하려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기소할 수 있게 된다. - P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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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은 집권 정당성의 근거로서 ‘당의 지도적 역할‘을 주장하는 레닌주의 신조를 버렸다. 그 대신 점점 더 일종의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국가주의에 호소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커져만 가는 빈부 격차와 고위 간부층에 구조적으로 만연한 부정부패에 분노하고 있던 중국 국민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 P548

예전의 서사가 중국인이 중국인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서사에서는 애국심 넘치는 중국인들이(공산당이건 국민당이건) 외국인을 상대로 싸운다. - P549

중국은 과거 왕조 시절에 누리던 주변국들과의 조공관계를 부활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주변국들은 중국에 의존하는 나라나 속국으로 전락하거나, 티베트나 신장위구르자치구처럼 독립을 아예 박탈당할 수도있다. 중국 공산당은 일본에 대한 증오를 냉소적으로 조장하여, 공산당의 문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굴절시키는 데 이용한다. - P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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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선거에서 압승해 정권을 차지할 것처럼 보이자, 검찰과 주류 언론들은 야심찬 정치인들이 체제 질서를 위협할 때마다 항상 사용하던 주특기를 꺼내들었다. 모호한 선거법 위반으로 문제의 정치인을 걸고 넘어져서, 그 조사과정을 뉴스로 만들어 언론에 대서특필하는 방법 말이다. - P513

관료와 자민당과 기성 재계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층의 상당수는 주권의 핵심 부분을 미국에 맡기는 것이 자신들이 국내 상황을 지속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치러야만 하는 타당한 대가라고 줄곧 자기합리화를 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품에서 안정을 누리는 일은 미국의 자비심에 달려 있다. 그리고 미국처럼 변덕스러운 나라로부터는 늘 자비심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의 여론을 감시하고 주도할 수 있는 재단, 언론인, 정부 관리, 학자들로 이루어진 막강한 네트워크를 수십년에 걸쳐 구축해왔다. 미국 내에 있는 대규모의 일본 기업 커뮤니티도 ‘일본 주식회사‘의 현지 지사 역할을 맡아 이 네트워크를 측면 지원한다. 일본이 미국의 대일 정책에 영향을 행사해야 할 때 미국 내에 있는 자생적인 우호 세력만 믿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520

전문가들이나 해당영역의 풍부한 지식을 갖춘 관료들 없이 나라를 다스리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도로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관료들이 점차 오만함을 갖게 되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간섭하는 모든 유의 시도를 경멸하게 되면서 결국 사회 전체의 발목을 잡는다. - P527

일본 관료 조직의 고위 정책 담당자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여전히 전쟁 전 관료들과 같은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당시에는 ‘천황의 신하였고, 요즘에는 ‘일본의‘ 신하이지, 스스로를 유권자들의 공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선거로 뽑은 더럽고 욕심 많은 정치인들은 더더욱 그들이 섬길 대상이 아니다. - P528

노다의 승리는 많은 사람에게 민주당이 과거의 정치로 회귀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애초에 사람들은 바로 그런 유의 정치를 타파하라고 민주당에 투표했었다. 노다가 당선된 이유는 단지 다른 후보들보다 적이 더 많지 않아서였을 뿐이다. 유권자들의 입맞에는 어떤지 몰라도, 그의 무색무취함이 역설적으로 당내 다양한 파벌과 관료의 입맛에 맞았던 것이다. - 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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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를 거쳐 20세기로 접어들며 일본 민족의 순수성‘과 ‘독자성을 점점 강조하게 되면서 오키나와는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외국인이 아니었지만 순수 일본 혈통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로 인해 오키나와 사람들은 두 가지 의미에서 차별을 견더야 했다. 하나는 완전한 일본인이 아닌 것에 대한 차별이었고 또 하나는 이들을 완전한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행해진 강압적 조치들이었다. 이 조치들 중에는 그동안 오키나와를 오키나와이게 했던 종교, 언어, 예술과 같은 그들만의 독특한 제도 및 관행들에 대한 탄압도 포함되어 있었다. - P505

이들은 자국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총알받이로 지정되었고, 대규모 집단 자살을 강요받았으며, 마침내는 사실상의 영원한 군사 점령지가 되었다. 그것도 점령국인 일본 본토가 아닌 제3국인 미국 군대에 의한 점령이었다. - P506

자발적이건 아니건 자국의 운명을 남에게 맡긴 나라들은 보통 그 대가를 치른다. 타국의 통제하에 있는 대규모 군사기지가 눈에 거슬리는 형태로 자국 영토위에 자리 잡고, 가꾸지 않는 땅에 어쩔 수 없이 잡초가 자라듯 그 반경에는 매춘굴과 수상쩍은 술집들이 줄지어 들어선다. 자국의 소유가 아닌 군사기지가 들어서 있을 때 가장 눈엣가시와 같은 일은 현지 여성들이 몸을 파는 대상이 자국의 젊은 남성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외국 군대의 제복을 입은 외국인 군인들이 자기 나라인 양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아 넘겨야 하고, 그 군인들이 저지르는 크고 작은 범죄도 감수해야 한다. 다른 나라 부대의 마크를 단 차량이 도로를 질주하고, 요즘에는 외국 전투기들이 요란하게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 - P508

후텐마와 헤노코를 둘러싼 사건들은 워싱턴과 도쿄의 정치 지도자들간의 미일 동맹을 내세운 화기애애함과, 소위 ‘동맹‘이라는 것은 더 이상 순종할 의사가 없는 피점령국 사람들의 순종에 달려 있다는 현실 사이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 P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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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전범재판은 ‘승자의 정의‘를 자의적으로 행사했던 일로 여겨져 그 정당성을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일본인은 누가 전범으로 기소되고, 누가 기소되지 않았는가는 상당 부분 운의 좋고 나쁨의 문제였고, 실제로 얼마나 책임 있느냐보다는 누가 더 관료사회 내부의 정치에 능했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 P483

세계는 일본이 왜 1930년대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 독일처럼 반성하지 못하는가 의아해한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에게 있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정신적인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1930년대의 전쟁과 그로 인한 여파를 겪고도 독일에서와는 달리 일본인들의 조국과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그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뿐이다. - P484

고이즈미와 아베 신조를 포함해 수많은 일본의 우익 정치인은 현대 일본의 병이 사회경제적 문제의 껍데기를 썼을 뿐 사실은 정신적 위기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리더십만이 국민이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이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 P484

중국의 통제권 아래로 들어가느니, 변덕스러운 미국의 비위를 계속 맞추고 짜증을 달래는 편이 나았다. 중국은 미국처럼 감언이설로 손쉽게 조종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일본은 이미 60년간 미국을 상대로 비위를 맞춰왔던 경험이 있고, 우익들은 그것을 통해 일본이라는 국가의 본질이라고 여겼던 것을 보존할 수 있었다. 우익들이 보기에 중국과는 그런 관계가 불가능해 보였다. - 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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