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전범재판은 ‘승자의 정의‘를 자의적으로 행사했던 일로 여겨져 그 정당성을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일본인은 누가 전범으로 기소되고, 누가 기소되지 않았는가는 상당 부분 운의 좋고 나쁨의 문제였고, 실제로 얼마나 책임 있느냐보다는 누가 더 관료사회 내부의 정치에 능했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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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일본이 왜 1930년대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 독일처럼 반성하지 못하는가 의아해한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에게 있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정신적인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1930년대의 전쟁과 그로 인한 여파를 겪고도 독일에서와는 달리 일본인들의 조국과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그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뿐이다. - P484

고이즈미와 아베 신조를 포함해 수많은 일본의 우익 정치인은 현대 일본의 병이 사회경제적 문제의 껍데기를 썼을 뿐 사실은 정신적 위기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리더십만이 국민이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이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 P484

중국의 통제권 아래로 들어가느니, 변덕스러운 미국의 비위를 계속 맞추고 짜증을 달래는 편이 나았다. 중국은 미국처럼 감언이설로 손쉽게 조종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일본은 이미 60년간 미국을 상대로 비위를 맞춰왔던 경험이 있고, 우익들은 그것을 통해 일본이라는 국가의 본질이라고 여겼던 것을 보존할 수 있었다. 우익들이 보기에 중국과는 그런 관계가 불가능해 보였다. - 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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