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주식회사는 1990년대부터 노골적으로 ‘비용의 외주화‘를 시작했습니다. 원래라면 자신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계속해서 ‘외주화‘해 왔습니다. 인재 육성은 그때까지 사내교육으로 각 기업에서 맡았는데, 거기에 드는 비용을 삭감하기 위해서 대학에 외주화했습니다. 똑같은 일을 모든 사회 활동에 대해서도 했습니다. 공해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것은 환경보호 비용을 외주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고속도로와 철도의 건설을 요구하는 것은 운송 비용을 외주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최저임금제의 철폐와 잔업제로 합법화를 요구하는 것은 인건비를 외주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래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나라와 지자체와 학교와 주변 주민과 종업원에게 떠넘긴 것입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외주화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잘 보여 주는 예입니다. 도쿄전력이라는 일개 민간기업에서 안전 확보를 위한 비용을 계속 삭감하는 바람에 심각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사고로 원자력 발전소 주변의 주민들은 살 곳을 잃어버리고, 일을 잃고, 의지해야 할 공동체를 잃어버렸습니다. - P411

지금 일본 기업에서는 비용의 외주화를 잘하는 경영자, 즉 본래 회사가 부담할 경비를 타인에게 떠넘기는 기술이 뛰어난 경영자가 ‘훌륭한 경영자‘ 소리를 듣습니다. 이기적일수록 칭찬받는 구조가 만들어진 거죠. - P413

지금 ‘글로벌 인재‘로서 기업과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없어져도 누구도 곤란하지 않은 인간‘입니다. 기업의 형편에 따라 이쪽으로 가거나 저쪽으로 갈 수 있는, 정년까지 세계를 빙빙 돌 수 있는 그런 기동성이 높은 인간을 기업은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어디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친족이나 지역, 어느 누구로부터도 의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의지할 수도 없는 그런 인간상이니까요.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없고 유지해서도 안 되는 그런 사람이 지금 학생들에게 이상적인 롤 모델로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고 선언하지 않으면 취직 시험에서 붙지 못하니까요. - P415

『쇼와잔협전』은 깊이가 있는 영화입니다. 전9편에 일관된 메시지는 하나,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인간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익이라든지 공공의 질서 같은 것을 말하고 짐짓 잘난 체하는 인간들을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중파戰中派 영화가들이 몸소 체험한 실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라를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타인의 생활을 짓밟는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또는 대의명분을 등에 업고 타인을 협박하거나 명령할 수 있는 입장에 섰을 때의 전능감을 맛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 P424

올리버 스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 영화는 훌륭하다. 일본의 식문화도 훌륭하다. 문물은 어느 것 하나 훌륭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이 나라에는 정치가 없다. 이 나라에는 일찍이 국제사회를 향해서 ‘우리는 이러한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이상을 말한 정치가가 한 명도 없다. 일본은 아무것도 대표하고 있지 않다." - P427

일본이 미국의 ‘위성국‘, ‘종속국‘이라는 올리버 스톤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먼저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패전 후의 일본인은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 인식 위에 서서 ‘주권 회복, 국토 회복‘이라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는 정치 과제 해결에 매달려 왔습니다. 그 작업의 전제에 있었던 것은 ‘일본은 미국의 종속국이다‘ 라는 현실 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일본인은 이 현실 인식 자체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주권국가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 기지가 국내에 있는 것은 마치 일본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 P428

미국에 종속하다 보면 이것저것 좋은 일이 생긴다는 성공 체험을 3대에 걸쳐 쌓아 온 결과, 정계 · 관계 · 재계와 언론, 학계 어디를 돌아봐도 ‘그런 사람‘들만 다들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국익을 희생해 자기 이익을 늘리고 있는 셈인데, 그 사실에 관해 본인들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국의 자원을 외국의 지배자에게 팔아넘겨서 그 대가로 얼마간의 이익을 손에 넣는 행위를 역사 용어로는 ‘매판‘이라고 합니다. 청조 말기에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이 중국을 식민지화하려고 했을 때 그것에 영합해서 그 보상으로 이권을 손에 넣으려고 한 중국인이 저지른 짓입니다. 지금 일본의 지도층은 그들과 매우 비슷합니다. - P434

미국 정부는 이러한 ‘매판 정권이 통치하는 종속국 일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물론 이용 가치는 있습니다. 미국의 국익 증대를 위해 알아서 국민 자원을 내놓는 셈이니까요. 이런 고마운 동맹국은 없습니다. 그런데 신용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 달라붙을 때의 동기가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전후 정치가들의 ‘대미종속‘ 전략은 국익을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대미종속‘ 전략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 증대를 위한 방편입니다. - P438

오사카의 하시모토 토오루 시장도 아베 수상도 "나의 정책에 불만이 있으면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리면 되지 않는가?"라고 자주 말합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주식회사 CEO의 말투입니다. 정치에는 시장이 없습니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당해 연도 또는 분기 내에 판정할 수 있을 것 같은 편리한 구조는 정치의 세계에는 없습니다. 정책 결정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그 결과물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국가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는 것은 자신이 채택한 정책이 정말로 좋은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도 모르고, 죽은 후에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정치가들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머리를 쓸 줄 모릅니다. 주식회사적 원리와 그 발상법에 너무 익숙해 있다 보니 자신이 뭔가 정책을 세운 경우에 그 옳고 그름이 주가나 매상, 시장점유율처럼 곧바로 수치적으로 표시되기를 바라지요. 5년 후, 10년 후의 결과물을 보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지금 곧바로 성공과 실패 여부를알고 싶은 것이지요. 그렇게 볼 때 정치에서 시장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선거 밖에 없습니다. - P443

‘다음 선거에서 심판이 내려진다‘는 정치가들이 아주좋아하는 문구는 정치 과정이 주식회사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재직 중 부정을 저지른 의원이 당선되면 ‘과오는 없던 것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마인드입니다. 그들에게는 ‘다음 선거‘가 시장이고, 그것이 모든 가치 판단의 최고 준거 기준입니다. 당선되었다는 것은 ‘제시한 정책이 지지를 받았다‘가 아니라 ‘제시한 정책이 옳았다‘고 그들은 해석합니다. 그래서 당선되면 다음에는 어떤 비민주적인 절차를 취해서라도 정책 실현에 매진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445

일본은 성숙사회, 정상사회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과정을 거스르고 무리하게 강제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공공적으로 소유하고 다음 세대에 무상으로 전해야 하는 국민자원에 손을 대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래의 일본 국민들이 우리가 지금 무상으로 향유하고 있는 것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통해서만 경제 성장은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상태를 ‘조삼모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미래의 일본 국민들을 우리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자신에게 "도토리 네 개를 내놔라", 미래의 자신에게는 "세 개도 괜찮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정치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원숭이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인 것입니다.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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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 대한 지원이 가장 필요한 것은 집단이 위기에 빠졌을 때입니다. 사회 질서의 해체가 멀지 않아 보일때, 배가 난파할 것 같아 보일 때, 전선이 완전히 무너져서 조직적인 저항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약자에 대한 지원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정작 고비 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장치를 마련해 두어야 할까요? 그것은
‘집단이 자아의 확대이고 다른 집단 성원이 자신의 일부라고 느낄 수 있는 집단‘입니다. 자신 옆에 있는 사람이 단지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형태를 띤 자기 자신이다. 예를 들면, 젊은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면 노인은 ‘언젠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이다. 유아는 ‘과거에 그랬을 자신‘이다. 노인도 유아도 타자의 지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스스로 영양도 취할 수 없고,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주위의 지원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지요. - P375

역설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개인을 향해 ‘예외적으로 선량하고 자비심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요구할수록, 또 그 요구에 맞추어서 스스로를 만들어 갈수록 그 사람의 자아의 껍질은 강력해집니다. 반면에 그 사람이 타자와 공감하고 동기화同期化하는 능력은 저하합니다. ‘베푸는 자신‘과 ‘베풂을 받는 타자‘ 간의 강자와 약자 사이의 비대칭성의 벽이 점점 높아지고 두터워질 따름입니다. - P376

이것이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도달한 길입니다. 자신들의 세금을 자신들을 위한 서비스에만 충당하고 다른 시민에게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 카운티 내의 빈곤층을 위한 행정 서비스가 중단되고 시민 생활이 곤궁한 상태가 된 것에 대해 그들은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것을 ‘행정 개혁의 성공 예‘로서 평가했습니다. - P378

미국 사회에서 이상적인 인격은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로부터 지원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지위도 재산도 위신도 모두 구축하는 인간을 존경하는 전통이 이 나라에는 있습니다. ‘개척자의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 P379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업적을 자랑하지만 그 사람이 그 집단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바람에 집단의 수행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개인적 업적은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지만 그 사람이 한 명 있는 덕분에 교사들의 연대가 밀접해지고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져 직장에 미소가 넘치고 교육연구가 활성화되는 등의 일이 생기면 이 사람은 교사단의 일원으로서 훌륭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셈입니다. 교육의 성과는 교사 개개인에 대해 계측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의 집합체, 교사단을 단위로 보아야 합니다. - P401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회적 활동은 파고 들어가 보면 개인의 것은 없습니다. 집단이 주체가 되어 수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집단은 지금 여기서 동시대에 같은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구성원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도, 아직 가담하지 않은 사람도 구성원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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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애당초 ‘배움이란 무엇인가?‘, ‘학교라는 제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사제 관계는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가?‘와 같은 교육의 근간에 있는 일련의 물음에 관해서 우리 사회에서는 원칙적인 합의가 없고, 더군다나 사회적인 합의가 해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P253

사이버대학이 학점을 부여하면서 본인 확인을 게을리한 것은 이 교육기관이 관심이 있는 것은 ‘소비자‘ 이지 고유명을 가진 개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발상은 우리와 같은 기존의 대학인들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데요, 시장원리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를 오히려 이해할 수 없겠지요. - P260

과거에 존재한 적이 없던 ‘무늬만 대학‘을 만들 수 있도록 법적 조건을 완화해 놓고, 그 상태에서 그러한 대학을 배제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 것을 명했던 것입니다.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까지 일본에는 그런 ‘실체가 없는 대학‘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체가 없는 대학을 만들 수 있도록 법률을 바꿔 놓더니 그런 대학을 골라내서 배제하기 위한 새로운 평가제도를 만들고, 거기에 막대한 인적 자원을 쏟아부을 것을 명한 것입니다. - P267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교육관을 다 부정하고 ‘교육은 비즈니스다‘라는 원리에 기초해서 교육 활동의 전 과정을 재편하는 과격한 흐름 속에 지금 우리는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일본인의 80~90 퍼센트는 교육이라는것은 비즈니스의 일부이고, 교육을 말할 때는 비즈니스 용어인 ‘시장‘ 이라든지 ‘비용 대비 효과‘라든지 ‘고객‘, ‘타깃‘과 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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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었을 때 "왜 다자이 오사무는 내 이야기를 쓰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자주 만났습니다. 그런 종류의 망상‘을 갖는 사람이 정말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닙니다. ‘왜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고 있을까‘와 같은 경험은 수준 높은 문학 작품에서는 반드시 발생하는 것이니까요. - P203

인류가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후 쭉 계승되고 있는 이야기 중에 ‘사춘기 청소년이 겪는 상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사는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제공하는 이야기‘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태고부터 계속 이어서 말해져 오는 이야기의 ‘광맥‘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탁월한 작가만이 그 광맥에 닿을 수 있습니다. - P214

인간의 지성은 뭔가를 했을 때 자신에게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지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발동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공부하면 이런 대가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움직이는 지성은 ‘지성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성이 활성화되는 것은 ‘이것을 공부하고 싶은데‘ 왜 공부하고 싶은지 잘 모를 때입니다. ‘공부하는 것 이외에 이 찝찝함을 해소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공부한다‘, 그것이 배움의 왕도입니다. - P227

수요에 대응해 계속 새로운 학부와 새로운 학과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자금력이 있는 대학뿐이기 때문에 시장을 추종하다 보면 언젠가 소수의 거대한 대학만이 살아남아서 중간 규모와 소규모의 대학은 도태됩니다. 그리고 남은 거대 대학은 그 어느 곳도 서로 구별이 잘 안 되는 비슷한 곳이 되고 맙니다. 시장의 수요에 맞추어 자기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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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것도... 한국 얘기인 줄...

이 정도의 의료 수준이 지금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현장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죽을 각오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무너지면 이제 끝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힘내서 버티고 있기 때문에 나름 유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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