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책자는 언제나 따분하고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여대학』은 꼼꼼한 주해가 달린 우아한 문체의 한문으로 이렇게 말했다. "여자에게 맞는 유일한 자질은 온화한 순종과 정조, 자애, 침묵이다." - P41

쓰네노는 고대 중국에 가서 현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이나 이런 일들과 마주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잘 자라서 자기 집안과 비슷한 집에 시집을 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여대학보고』의 첫 줄은 독자에게 어떤 희망도 품지 말라고 가르쳤다. "모름지기 여자는 자라서 다른 집으로 떠나는", 즉 시집가는 존재였다. 다른 어떤 가능성도 없었다. - P43

에도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도시의 번화한 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방으로 몇 킬로미터씩 뻗은 상점가, 본 적도 없어서 사고 싶은지도 알 수 없는 물건들을 갖춘 바글바글한 노점상, 거대한 굴 같은 상인 저택, 그리고 사방에 자리를 잡고서 일을 해주고 수고비를 요구하는 수많은 미용사와 거리 청소부, 똥거름 수거인, 세탁부 등에 관해. 에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많은 살 것들이 있었지만 돈을 버는 방법은 훨씬 더 많았고, 때로는 노동과 여흥, 강탈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 P57

수도는 여자들에게도 의미심장한 곳이었다. 시골 마을에서 생을 보낸 여자들에게 "에도"는 다른 종류의 삶을 부르는 주문이었다. 에도 여자들의 옷차림과는 판이하게 다른 옷을 입었을지라도 "에도 스타일" 머리를 하는 시골 처녀들 사이에 에도는 유행과 세련미의 상징이었다. 겨울밤에 화로 앞에 둘러앉아서 여행 경험이 풍부한 손님들에게 에도에서는 새해를 어떻게 축하하는지를 물어보는 어머니와 딸들에게 도시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였다.
에도는 젊은 여자들에게 기회이면서도 불가능한 기준이었다. - P58

마을 남자들을 싫어하는 젊은 여자들, 아버지한테 매를 맞는 딸들, 보리밭이나 소, 논만 멍하니 바라보는 또 다른 날을 마주하기 힘든 지루한 여자들, 그림에서 본 옷을 입고 싶은 꿈 많은 십대들, 남편이 지겹거나 학대를 당하거나 그냥 남편 나이가 너무 많은 부인들, 첫날밤에 실망한 신부들에게 에도는 봉홧불처럼 밝게 빛나는 도시였다. 에도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모두가 농부가 아니고, 아무도 자기 가족을 알지 못하며, 사라졌다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나타나도 되는, 붐비는 익명의 도시에 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혼잣말을 되뇌어 보는 하나의 이야기였다. 시장 경제가 발흥하면서 농촌의 여자들은 상상 속에서 가로지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는 곳이라면 어디로나 길을 나섰다. 뭔가 다른 일-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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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아이들은 결코 아버지를 버리는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시는 아버지 주위를 맴돌지 않으리라. 아이들은 인생 경험을 ‘게걸스레‘ 집어삼키며 새로운 우주, 자신이 중심인 우주를 만들어간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자기만의 우주를 갖기 마련이다. ‘속물‘이 허물을 벗고 ‘독립 개체‘가 되려 한다. 새로운 태양계가 탄생한다. 아버지는 이 ‘탄생‘을 위해 대가를 치른다. 자신의 위성을 잃고 만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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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귀엽다...

웨이웨이는 어릴 때 달을 사람으로 여겼다. 달은 바깥에서 우리 집 뜰을 굽어보는 낯선 사람, ‘둥근 얼굴 아저씨‘였다. 복도에 나갔다가 달을 보면 웨이웨이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문을 꼭 닫고 부엌이나 서재로 달려와 거인이라도 나타났다는 듯 엄마나 아빠에게 경보를 울렸다. "‘그 아저씨‘ 왔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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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교육의 목적은 ‘맞는 경험을 해봄으로써 육체의 고통과 자기 비하 간의 연결을 끊고, 교육받는 자에게 폭력으로 굴복시킬 수 없는 굳건함과 모욕으로 더럽힐 수 없는 존엄함을 심어주는‘ 것이다. - P241

어린아이가 ‘굳세게 일어서기‘ 전부터,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전부터 ‘양보 교육‘을받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이런 교육이 아이의 성격에 점점 스며들면서 ‘환경을 정복하는‘ 능력을 잃게 만들 수 있다. - P243

노력해서 발전하지 않고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겸손하든 겸손하지 않든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남들이 인정할 만한 뛰어난 사람이 겸손을 모른다면 그의 뛰어남도 딱히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인류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란 사실상 겸손하면서도 뛰어난 인물이다. 오직 이런 사람에게 우리는 우리가 지닌 ‘희귀한 진심‘을 기꺼이 바친다 - 존경과 사랑을.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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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갇힌 엄마
이린 지음, 박희선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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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한참을 웃다가 울다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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