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으로서의 법‘ 사회에서는 공권력과 사회의 관계도 서양 사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서양 사회에서는 사회 안에 있는 규칙성을 시민들이 스스로 뽑아내 명문화하고, 권력이 이를 시민이 따라야 할 규범으로 재정립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서 법질서를 어디까지나 ‘각자의 개별적 안건‘으로 처리하고 공평성의 근거도 ‘공평하고 덕을 지닌 성인‘이라는 개별적이고 속인적인 존재에 두고 있는 중국 사회에서는, 서양 사회와 같은 ‘치자와 피치자의 일체성‘은 성립할 수가 없다. - P154

단적으로 말하면, 중국 사회에서는 때때로 후자인 ‘정치적 권리의 평등‘을 요구하는 입장(자유주의자)이 전자인 ‘경제적 평등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묻혀버리거나 혹은 정권의 명백한 탄압을 받는 상황이 발생해 왔다.
경제면의 평등화‘ 즉, 재분배를 위해서는 큰 국가권력의 개입이 필요하다. 때문에 경제적 평등화에 대한 요구는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온정주의를 용인하고 강화하는 쪽으로 향하기 쉽다. 앞에서 말했듯이 군체성 사건이라고 불리는 직접적인 집회나 진정이 종종 정치적 지위가 높은 ‘자비로운 지도자를 향한 호소‘ 형태를 띠는 점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상징하는 현상이다. - P1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거 정말... 공자 시대의 불성문법 얘기와 너무 비슷하다. 주례에 기반을 둔 당시의 법의 형태가 중국 고대에 쭉 지속되고 있었으며 현대에도 영향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는 거지...
<인간 공자, 난세를 살다> 제10장의 내용을 참고하면 좋다.

‘공론으로서의 법‘ 이란 서양에서 기원한 ‘규칙으로서의 법‘에 대비되는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규칙으로서의 법‘은 보편적인 규칙이 추상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그 규칙이 개별 안건에 강제로 적용되는 식의 구조로 짜여 있다. 법질서가 보편적 규칙에 따라 형성되는 과정이 ‘규칙으로서의 법‘의 특징이다.
그에 비해 ‘공론으로서의 법‘은 어디까지나 개별 안건에서 ‘공평한 재판‘을 실현해 가는 것을 중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평한 재판‘이란 안건마다 다른 개별적인 사정이나 사회 정세를 고려한 후에 비로소 실현하는 재판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정과 정세를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규칙 = 법을 적용하는 일은 오히려 부정해야 할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론으로서의 법‘에서 ‘공평한 재판‘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는 교양 있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소수뿐이라는 식이다. - P1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국(정권당과 국가가 일체화한 사회주의 특유의 체제)은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의 성장에 강한 경계심을 품고, 그 세력의 확대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당국을 절대 거스르지 않고, 말을 잘 알아듣고 협력적이며 이용 가치가 높은 사회조직만을 육성하려고 한다." - P143

정리하자면 중국공산당은 NGO 등의 시민사회(단체)‘를 공산당이 이끄는 대로 힘써 따라가는 존재로 간주하거나 혹은 그럴 것으로 보이는 시민사회 (단체) 만 존재하도록 허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 P143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는 개체의 긍정적 이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개체는 공동체에 자기를 합치거나(멸사봉공),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사적 이익의 추구에 급급한 인간(이기주의)이거나, 둘 중의 한쪽이다. - P149

가령 사람들의 사익의 기반 위에서 공공성을 세우는 일이 근대 서양에서 이어져 온 시민사회, 혹은 더 적절한 용어로 ‘시민적 공공성의 근본 과제라고 한다면,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사회에서는 그 과제를 실현하기가 (서양 사회보다) 대단히 어렵다는 점에 지금까지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집약되지 않았나 싶다. - P151

중국과 같은 아시아 사회와는 확실히 대조되는 서양 사회의 특징은 사익을 부정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그 기반 위에 공공적인 것을 세우는 데에 있다. - P1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어째서 웨이보란 인터넷 여론의 압력에 중국 정부가 양보했을까?
그 이유에는 독재정권이 가지는 역설이 있다. 독재국가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민의를 무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선거를 통해서 그 정당성을 담보받지 못한 만큼, 민주주의 국가 이상으로 여론에 민감한 측면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폭력적인 탄압을 행사하는 힘을 선택지로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민중이 독재정권을 지지한다는 점을 표면적으로는 가능한 한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P123

글을 올린 본인조차 검열을 당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검열이 바로 ‘보이지 않는 삭제다. 글을 쓴 본인에게는 게시글이 평소와 똑같아 보이지만, 글을 열람하는 사람에게는 표시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그 밖에도 리트윗 할 수 없다‘, ‘검색으로 표시되지 않는다‘, ‘추천글에 오르지 않는다‘는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게시글 자체를 삭제하지는 않고, 글이 확산되어 인터넷상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고안한 것이다. - P1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키텍처‘를 통한 행동 규제란, 공원 벤치에 팔걸이를 설치해 노숙자들이 눕기 어렵게 만드는 등, 인프라나 건조물 등을 물리적으로 설계해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규제를 말한다. 레시그는 대기업이 제공하는 아키텍처를 통한 규제로 사이버 공간에서 자유롭고 창조적인 행동이 제한되는 정도가 강해졌다고 경종을 울렸다. - P102

따지고 보면 자유주의적 온정주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건드리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비판은 지금까지도 나오고 있다. ‘민의를 반영한 것이라면 설령 어리석은 선택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이라고 한다면, 자유주의적 온정주의는 그 정신과 양립할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든 민간이든 정말로 바람직한 넛지나 아키텍처를 설계할 수 있는 인력을 조달할 구조를 갖출 수 있을까? 만약 그 일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행동을 좌우할 넛지나 아키텍처 설계에서 배제되고 그것들을 따르기만 할 사람들과의 ‘격차‘가 점점 커지지는 않을까? - P105

결국, 행복이나 안전을 어느 정도 기술을 통해 추구하게 된 사회에서 근대적 가치관, 즉 특정 가치관을 가진 개인을 차별하고 배제하지 않는 데 가치를 두는 자유주의 가치관에만 충실한다면, ‘모든 사회 구성원이 평등하게 감시당해서 평등한 사회의 상징으로서 ‘하이퍼 판옵티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오야가 제기한 문제다. - P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