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손모빌은 화석 연료 사용으로 지구 온난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1970년대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엑손모빌은 그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고 경고하는 대신 기후 변화 회의론을 퍼뜨리는 단체에 수천만 달러를 기부해 왔다. 사람들에게 과학적 결론이 모호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 P403

천연자원보호협회, 환경보호기금, 시에라클럽 같은 모든 주요 환경 단체들은 미국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추방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 동시에 그들은 천연가스 회사나 신재생 에너지 회사로부터 돈을 받거나 그런 기업들에 투자해 왔다. 원자력 발전소가 문을 닫고 대신 천연가스 발전소가 세워지면 이익을 볼 수밖에 없는 이들과 돈으로 얽힌 사이인 것이다. - P410

시에라클럽, 천연자원보호협회, 환경보호기금은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고 화석 연료 발전소를 세우면서 그 위에 신재생 에너지의 꽃단장을 하는 일에 1970년대부터 열중해 왔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신재생 에너지를 더 육성하면 원자력뿐 아니라 화석 연료도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세부 보고서를 만들어 정책 결정자와 언론인, 대중을 상대로 유포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원자력 발전소가 문을 닫거나 건설되지 않을 때마다 그 자리는 화석 연료를 태우는 발전소의 몫으로 돌아갔다. - P411

기후 변화에 반대한다면서 천연가스 업계의 돈을 받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블룸버그는 오브리 매클렌던, 톰 스타이어, 엑손모빌과 다를 바 없는 이해관계자다. 시에라클럽이나 350.org는엑손모빌의 돈을 받는 단체를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블룸버그의 돈을 받고 있다. 이런 행태를 한마디로 위선이라고 한다.
이런 위선적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탈원전운동을 벌이는 환경 단체들은 대체 언제부터 석유와 가스 업계의 돈을 받아 온 것일까? - P419

에너지부는 녹색투자라는 명목으로 5억 7300만 달러를 솔린드라Solyndra라는 태양광 기업에 제공했는데, 솔린드라의 소유주는 오바마 선거 운동 자금 모집원 중 한 사람이었던 억만장자 조지 카이저George Kaiser였다.
솔린드라는 누구도 투자하려 들지 않는 회사였다. 솔린드라의 태양광 패널은 너무나 비쌌기 때문이다. 에너지부 직원 중 제정신을 가지고 있던 누군가가 그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무시당했고 대출 승인이 떨어졌다. - P436

이타적으로 보이는 환경 자선 사업가가 지지하는 일에는 이익에 대한 추구가 종종 숨어 있다.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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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석유 가스 기업들은 배터리로 전력망을 완전히 뒷받침할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태양광 또는 풍력 시설이 대대적으로 들어선다면 그 불안정성을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가스 발전소가 세워져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가스 발전소는 상대적으로 쉽게 켜고 끌 수 있어 날씨변화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66

여러 국가에서 풍력 발전기는 박쥐의 생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을 리노스는 일찌감치 알게 되었다. 풍력 발전기는 박쥐의 서식지를 망가뜨릴 뿐 아니라 박쥐에게 흰 코 증후군이라는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 P368

또한 풍력 발전기는 철새가 서식하고 이동하는 넓은 영역을 점령했고, 그에 따라 멸종 위기에 몰려 보존 가치가 높은 대형 조류들에게 가장 큰 위협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리노스는 말했다. "미국흰두루미만 해도 그렇습니다. 풍력 발전 업계는 이 두루미들의 서식지까지 발전기를 더 설치하고 싶어 해요." - P369

실제로 풍력 발전기는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새롭게 출현해 여러 중요한 새들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다. 대형 조류는 풍력 발전기에서 돌아가는 거대한 날개에 대응할 만한 진화상 여유를 갖지 못했다. 리노스는 이 현실을 이렇게 설명한다. "새들은 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특정한 경로를 오가며 살아가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갑자기 그 길목에 풍력 발전기를 세워 놓고 새들이 알아서 적응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 P370

풍력 발전 업자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에너지 업계의 상투적 대응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비참한 운명에 놓인 동물들을 대변한다고 간판을 내걸고 있는 단체들과 접촉해 보상금을 지불하는 식이다. 문제 자체를 회피하고 있는 셈이다. - P371

태양광의 에너지 밀도는 낮다. 그래서 태양광 발전소는 넓은 면적이 필요하고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햇살이 찬란하게 비추는 그곳 캘리포니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캘리포니아의 가장 유명한 태양광 단지인 아이밴파는 캘리포니아에 지어진 마지막 원자력 발전소인 디아블로캐니언에 비해 450배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다. - P379

도시는 응축된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늘날 인류는 건물, 공장, 도시에 공급하는 전력보다 에너지 밀도가 1000배 높은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에너지 밀도가 낮은 신재생 에너지의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 보호에만 해로운 일이 아니다. 인류 문명을 지키고 유지하는 데도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 P383

만약 우리가 전기 외의 다른 에너지까지 모두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하려 든다면 필요한 공간의 면적은 상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가령지금 미국에서 소비되는 모든 에너지를 신재생 에너지원에서 생산한다면 미국 전체 국토의 25~50퍼센트를 에너지 생산에만 써야 할 것이다. 반면 오늘날의 에너지 시스템은 미국 전체 국토의 고작 0.5퍼센트만을사용하면서 미국 전역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단순한 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은 그것을 건설하고, 생산된 에너지를 저장하는 데 투자한 만큼의 에너지를 생산해 내지 못한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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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위정자가 상서를 장려한 측면이 강하다. 18세기 후반부터 각 번 정부들은 재정 위기와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번사(士)들뿐 아니라 민중에게까지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일반 사무라이와 상층 영민(民)들이 봇물같이 의견을 내놓았다. 애초에 상서 요구는 번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기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것이었지만, 한번 인정받은 이들의 발언권은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되었다. 정책과 인사에 대한 비판이 행해지더니 급기야 로주 등 번 정부 수뇌에 대한 비판과 때로는 번주에 대한 비판도 행해졌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기 시작한 상서 붐은 유학적 정치사상에서 강한 정당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이를 노골적으로 억누를 수없었다. - P196

이제 개혁파 사무라이들은 스스로를 주어진 임무만 수행하는 일개 역인이 아니라 국가 대사(여기서 국가는 번)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존재로 규정한 것이다. 일개 사무라이를 넘어 천하 대사를 책임지는 사대부, 나아가 ‘지사(志士)‘ 탄생의 출발점이었다. - P199

사무라이들도 점점 군인이 아니라 행정 관료, 서리가 되어 갔고, 이에 따라 쇼군도, 다이묘도 전쟁 지휘관으로서의 존재 의의가 희미해졌다. 그렇다면 이들은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18세기 초 유학자 아라이 하쿠세키는 쇼군을 유교적 국왕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 P210

메이지 초기 정당론도 정당 무용론과 ‘올바른 유일 정당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판자들은 정당이 공익과는 관계없이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결국 공적 이익을 해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정당 간의 투쟁은 사회적 낭비이며, 나아가 사회를 동요시키는 불안 요소로 파악했다. 이런 관점은 현재 한국이나 일본의 시민이 정당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동아시아의 정당들은 100여 년 동안 이런 자신들에 대한 혐의를 불식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 P220

정당 도입의 초창기에 정당을 부정하거나 유일 정당을 지향하는 관념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는 점은 정당에 대한 이후 일본인의 태도를 크게 규정했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까지의 다이쇼(大正) 정당정치가 그토록 맥없이 무너지고 독일 나치당을 모방한 대정익찬회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탄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전후 완벽한 민주적 선거가 보장된 상태에서도 유권자들이 자민당의 일당 지배를 약 50년 동안 용인한 점, 그리고 현재의 정당정치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점 등도 이런 맥락에서 보고자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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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메이지 유신은 하급 사무라이 계층의 대두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이 정치 현상은 달리 보면 리(吏)에 불과했던 사무라이들이 대거 사화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무시 못할 수의 사무라이들이 더 이상 리(吏)이기를 그만두고 그중 많은 수가 사(士)로 자임하는 현상, 이를 통해 이미 막말기의 ‘정치 열풍‘은 준비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179

이 사화된 사무라이들은 사대부적 정치 문화를 수용하여 병영국가적 요소를 갖고 있는 막번 체제를 흔들었다. 막번 체제의 근간은 월소(越訴: 직속상관을 뛰어넘어 그 윗선에 곧바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와 도당(徒黨)의 금지이다. 상서는 월소의 금지를, 당파는 도당의 금지를 무력화했다. 리(史)의 사화는 가신단 내의 엄격한 서열을 뒤흔들었다. 상, 하급 사무라이의 구분은 이를 대신한 사대부라는 인식의 확산 앞에 과거와 같은 엄격한 준별 기능이 약화되어 갔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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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유학의 전성기에 서구화가 이루어졌다. 유학의 확산이 먼저 도쿠가와 체제를 동요시키고 이어서 서구화가 일본 사회를 강타한 것이다.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유학은 서구화를 안내하기도 하고 그것에 저항하기도 하면서 결국 ‘자살‘했고, 그 영향력은 러일전쟁 무렵부터 급속히 쇠퇴해 갔지만, 메이지 시대에도 그 후에도 일본 사회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 P133

그러나 근대를 ‘근세‘ 동아시아가 도달해야 할 역사 단계(목표)로 미리 상정해 놓고, 마치 출구를 앞에 두고 미로를 헤매는 대상을 다루듯 하는 연구 태도는 타당한가? 17세기와 18세기, 심지어는 19세기 동아시아 사회가 근대로 수렴되어야 할 필연성은 과연 존재했을까? 유럽 근대의 도래 이전의 역사를, 근세에서 근대로, 또는 ‘근대로의 도정(道程)‘ 등으로 설정하는 것은 역사 연구자들의 프레임일 뿐, 과연 역사적 실태를 반영한 것일까? 유럽 근대가 도래하지 않았다면 동아시아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 되었을는지는 추측하기 어렵다. - P137

유학적 정치사상은 현존 질서를 옹호하는 면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막부나 다이묘들이 유학을 장려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유학적 정치사상은 일반 사무라이들이 군인이나 서리가 아니라 사(士)가 되어 정치에 참여할 것, 민중에 대한 군정(軍政)을 그만두고 인정(仁)과 덕정(政)을 펼쳐야 한다는 것 등을 자각케 하는 급진적인 요소도 갖고 있었다.
(중략)
유학적 정치사상은 도쿠가와 사회에서는 양날의 칼이었다. 이 칼을 어떠 세력이 어떻게 들이미는가에 따라 그것은 ‘매력적인 위험 사상‘이 될 수도 있었다. - P147

19세기 초엽은 이 ‘독서하는 사무라이‘ 또는 ‘칼 찬 사대부‘들이 대량으로 출현한 시기였다. 때마침 막부나 각 번은 재정난에 허덕였고, 도시에서는 우치코와시(폭동)가, 농촌에서는 잇키가 전에 없이 자주 발생하였다. 결정타는 외세의 등장이었다. 이 내우외환의 시대에 사대부 의식으로 새롭게 무장한 이들은 급속히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때 이들이 정치 현장에서 의존했던 수단은 어느덧 그들도 익숙해져 있던 사대부적 정치 문화였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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