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동경일일 1~3 세트 - 전3권(완결)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이주향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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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를 찍자!>의 다크 버전

읽으면서 계속 <중쇄를 찍자!>가 생각났다. 이 만화는 <중쇄를 찍자!>의 다크 버전 같은 느낌이 든다. 한쪽은 주인공이 열정에 넘치는 만화부 신입 편집자고, 다른 한쪽은 본인이 기획해 창간한 만화잡지 폐간의 책임을 지고 사직한 편집자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흔한 말로 작가와 ‘이인삼각’으로 달리며 작가를 다독이고 격려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인 것은 비슷하다. 오랫동안 만화를 그려와 매너리즘에 빠진 만화가, 슬럼프에 빠진 만화가,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진 만화가,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일하면서 계속 자기만의 작품을 준비하지만 데뷔하지 못하는 만화가 등, 여러 인물이 <중쇄를 찍자!>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에서의 만화에 대한 시각과 자부심

학창시절에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화책을 탐독하며 자라왔고, 고등학교 때부터 주위에 만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많았고 이후에 실제로 만화가가 된 친구도 꽤 있는 나는 만화 시장이 잡지나 단행본에서 웹툰으로 변화하고, 한국 웹툰이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지금에 와서도 나의 부모님 세대는 여전히 만화를 낮게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만화가 한국보다 훨씬 일찍부터 유행하고 발전하기 시작해 사회적으로도 만화를 존중하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는 것을 종종 느끼곤 한다.(실제로 일본이 가진 강력한 소프트파워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특히 이 작품에서 한때 열정적으로 만화를 창작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만화를 그만두고 나이가 들어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 많고, 그런 인물들이 중년이 아니라 노년의 나이에 속하며 사망한 만화가도 있는 것을 보면서 일본의 만화 인프라는 우리보다 훨씬 더 두텁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의력의 고갈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창의력의 고갈이 아닐까. 자기의 내면에서 솟아나 밖으로 나가기를 갈구하는 이야기들에 형태를 주어 내보낼 때는 괴로우면서도 행복하겠지만, 언젠가 그런 이야기들이 바닥나 내면이 텅 비어 버리고 백지를 앞에 두어도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울 것인가? 그런 날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두려울 것인가? 만화를 그만두고 다른 생업을 찾은 만화가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새삼 이런 생각을 했다.


-시오자와가 한 일은 과연 잘한 일인가?

시오자와가 ‘다시 한 번 만화를 그려 주십시오’라며 전국에 흩어져 있는 만화가들을 한 명 한 명 직접 찾아가 부탁한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오자와라는 인물의 성실하고 진지한 성격을 잘 나타낸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화라는 세계를 떠나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꾸려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만화 얘기를 꺼내 그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건 어찌 보면 평온한 일상을 들쑤시고 다시 불안정한 상황 속으로 끌고 오는 일은 아닐까? 물론 제안을 받고 만화를 그리기로 결심한 만화가들은 다시 치열하게 고뇌하고 창작에 매진하며 인생에서 다시 한번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그게 정말로 좋은 일일까? ‘먹고사는 일’의 무서움을 알게 된 지금의 나는 그런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동틀녘> 잡지 성공의 이유

<코믹 밤>은 실패해서 폐간되었지만 <코믹 던>(동틀녘)의 창간호는 성공했다. 같은 편집자가 기획한 잡지이건만 그 운명은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자는 시오자와가 출판사에 몸담고 있을 때, 출판사의 의견과 어느 정도 타협하여 만든 잡지일 것이고, 후자는 그가 퇴직한 후에 훨씬 더 자신답게 만든 잡지일 것이라는 차이는 있겠지만, 어찌됐든 두 잡지 모두 시오자와라는 인물의 어떤 중요한 면을 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코믹 던>이 성공을 거둔 이유가, 킬링타임용으로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소비하는 이 시대이기 때문에 더더욱이 늘 존재하는 ‘좋은 작품’, ‘진짜’에 대한 독자들의 갈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서브컬처를 좋아해서 웹툰과 웹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그중에서 보석을 찾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쯤 정말로 빠져들 만한, 대단히 재미있으면서도 깊이 생각하게 하고 교훈을 주는 작품을 만났을 때의 희열은 뭐라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런 것을 직접 느껴 보았기 때문에 <코믹 던>의 성공도 그런 맥락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진짜 승부는 2호부터”라는 말처럼, 창간호의 성공은 시작일 뿐이고 걱정 없이 기뻐할 수 있는 성공은 아니다. 만화를 사랑하고, 늘 좋은 작품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한 사람으로서 <코믹 던>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유지가 가능한 잡지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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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이란 비정규직이라는 살로 굴러가는 커다랗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수레바퀴였다. - P27

영원한 건 없어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건 있었다. 어떤 미래가 있을지 몰라도 지금 주어진 일은 내가 하고 싶던 것이었다. 꿈을 이룬 사람은 불평해서는 안 되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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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번역 작업을 다 마쳤다가 두 번이나 원문 원고가 수정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그가 글을 어떻게 고쳤는지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불필요한 문장을 들어내고, 단락의 호흡을 조절하고, 직접적인 형용사나 부사를 쳐낸 흔적을 보며, 감정과 생각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고스란히 전달하는 그의 솜씨를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 P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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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단계는 중국의 체제가 가진 경직성과 카프카식 관료주의 경향을 교훈으로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강력한 증거와 제대로 된 조언을 무시하는 한 명의 개인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보여주었다. - P559

모든 세대는 자기 책임이 아닌 시스템을 물려받아 자신이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렇지만 1990년대의 젊은이가 맞닥뜨린 도전은 막막하기는 했어도 명확하고 달성 가능한 면이 있었다. 교육을 받고, 도시로 이주해서, 빈곤을 탈출하면 된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문제가 더 깊숙한 곳에 있다. 시스템의 뭔가 근본적인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믿음을 갖고 있지만 이들의 미래는 더 복잡할 거라고 생각한다. - P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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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구들은 음식과 관련된 것이 많다. 사람들은 농촌을 떠났을지 몰라도 언어는 그렇지 않았다. - P497

중국 정치계를 수놓은 모든 신 가운데 내게는 시진핑이 가장 멀게 느껴졌다. 학생들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너무 자주 언급해서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였던 1990년대와는 달랐다. - P514

시는 모든 권력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그의 얼굴과 그의 말은 도처에 존재했고 인민들은 제아무리 애매한 연설이나 지시에도 능숙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서적 유대는 없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랬다. - P516

어떤 소설가도 억압적인 국가에서 경쟁이 얼마나 유용할 수 있는지 예측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감시 카메라나 역사수정주의, 혹은 국가 통제와 흔히 결부되는 도구들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서로를 두려워했다. 성적과 일자리를 위해 똑같이 고군분투하는 다른 모든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걱정이었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는 경쟁이 신앙만큼 강력해지면 사람들 사이에서 아편처럼 작용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중국 젊은이는 성공을 위한 투쟁에 지나치게 마비되고 혼을 빼앗긴 나머지 큰 그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 P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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