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때 학기초에 교과서를 받으면 국어와 문학 교과서에 실린 소설만 골라 먼저 읽었던 내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소설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놀이지, ‘공부‘처럼 지긋지긋한 자학 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부‘는 수학이니 암기 과목이니 하는 시덥잖은 것들을 지칭하는 말일 뿐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교과서 따위에는 아무 재미도 없는 서사들만 가득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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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들은 육체가 어디에 거주하든 항상 자신의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 번역가에게 언어란 항상 돌아갈 수 있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느 고장과도 같다. - P49

누가 뭐라고 해도 번역은 무의식에서 이루어지는 듯하다. 특정 문구를 이러저러한 말로 번역한 이유는 문법이나 어학, 수사학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건 단순한 설명에 그칠 뿐 번역 자체는 오롯이 무의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 P55

모든 번역가는 뇌가 끊기는 현상을 경험해 보았다고 증언한다. 아무리 일을 더 하려고 애써도 뇌가, 몸이 따라주지 않는 현상이다. - P57

가끔 작가들이 묻는다. 어떤 식으로 써야 차후 그 작품을 영역할 때 수월한지를. 진정한 작가라면 절대 번역을 인식하는 글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비전을 가장 잘 현실화한 작품을 써내는 것이다. 독자는 잘 읽으면 되고 번역가는 제대로 번역하면 된다. 독서가 독자의 일이듯 번역은 번역가의 일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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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번역가 지망생에게 고하노라. 그런 말을 믿지 말 것. 당신 같은 번역가는 오로지 당신만이 유일하다. 당신은 대체 가능하지도 않고, 대체된다 한들 그런 악조건에서 좋은 번역이 나올 리 만무하니 그 자리를 아쉬워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아니, 오히려 클라이언트는 얼마든 대체 가능하며 번역 일은 도처에 널려 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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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번역가에 대해서는 사회생활 부적응자, 회사나 학계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무리에서 낙오된 사람이라는 인식 또한 만연하다. 번역은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정도의 노동이고, 사회생활의 ‘진짜 노동‘이란 회사에 출퇴근하는 노동으로 보는 것이다. - P33

하긴, 대한민국에서는 번역과 번역가에 대한 인식이 바닥을 치는 것도 모자라 지옥으로 떨어질 지경이니 번역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교포, 유학생, 대학원생조차 문학번역을 해보겠다고 덤비며 한국일보 문학번역상이나 한국문학번역원 샘플 번역에 지원한다. 그러고는 감나무 밑에서 떨어지는 감을 기다리듯 번역 일이 들어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다 차차 이 길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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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연소되지 못하고 남아 있던 위화감의 정체는 나 자신도 미처 몰랐던 사회적 약자의 부당한 호칭에 대한 것이었다. 여배우, 여검사, 여류작가……처럼 여성에게는 굳이 접두사 ‘여‘를 붙여 식별해야할 정도로 수많은 직업이 당연히 남성으로 상징되는 사회에 살면서 나도 모르게 몸에 배어버린, 그러나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바로그 부당한 현실에서 우리는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 P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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