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혁이 중국 역사에서 일종의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인방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무리들이 나타났을 겁니다. 마오 주석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자오 주석이나 첸 주석, 쑨 주석 등이 문혁을 일으켰을 거예요. 진시황의 분서갱유에서 문혁에 이르기까지, 지식인들이 박해받았다는 사실을 당신도 알고 있을 겁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봉건 왕조시대의 필화 사건에서부터 문혁까지 중국 사람들은 줄곧 서로의 말과 글 등을 꼬투리 잡아 ‘반혁명 언사‘로 고발해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거예요. 문혁은 중국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입니다.
문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지요! - P92

소문과 비방, 뒷공론, 그리고 고발 내용에 근거해 죄를 조작해 내는 것이야말로 중국의 비애가 아닐까요? - P95

나는 강제로 노예가 되어 온갖 박해를 받았고 노동 개조를 당했으며, 농촌으로 하방되어 8년간 농사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첨하고 알랑거리며 비위를 맞추는 짓이나, 남을 밀고하고 팔아먹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나는 노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굴욕을 당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노비가 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거든요. - P99

인간성이 소멸된 시대에,
인간성을 표현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방식은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 P122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은 모든 중국 지식인의 소망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랬기에 박해를 당했습니다. 중국 지식인 모두가 겪었던 불행입니다.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다면, 그런 마음은 뭘까요? 어떤 사람은 그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귀중한 것이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비극적인 면이라고 합니다. 누구 말이 맞을까요? - P140

비옥한 토지의 비애는,
한편으로는 유린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정성을 다해
수확물을 바쳤다는 것이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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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내게 준 첫 번째 교훈은, 순진한 것은 우매한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입니다. - P51

홍위병 운동이 지나가고 난 뒤인 1970년에 국민경제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국가는 2천만 명이나 되는 지식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능력이 없었고, 그렇다고 도시에 있게 하자니 소란을 피울까 염려되었죠. 그래서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허울 좋은 구호를 생각해 내서 우리를 사방으로 내쫓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때 그들을 위해 용감하게 적진으로 돌격해 싸웠고 일편단심 충성했던, 천군만마 같았던 우리는 그들이 마련해 놓은 함정에 모조리 빠졌습니다. 국가마저도 감당하지 못하는 짐을 우리 10대 아이들의 삐쩍 마른 어깨가 지탱했던 거예요. 기울어져 있는 기둥을 바로 우리가 지탱했기에 국가라는 건물이 붕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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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혁이 끝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때 일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한때 모든 사람의 얼굴에 내려앉았던 어두운 그림자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수천 년간 봉건 지배를 받으면서, 힘없는 백성들은 기억을 지우는 방식으로 고난에 대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낙관적 태도가 반드시 좋다고만 할 수는 없으며, 그저 일종의 ‘귀여운 무지‘라고 할 수는 있겠다. 역사의 잘못은 얻기 힘든 재산이다. 그 재산을 잃어버린다면 새로운 맹목에 빠지게 될 것이다. - P11

문혁 당시 서로가 서로를 해치고 상처 줌으로써 타인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믿음을 다시 확인한 것에 깊은 위안을 받았다. - P11

인간의 약점과 질투, 겁약, 자아, 허영, 나아가 인간 본성의 장점, 용기, 성실함, 진실 등이 모두 동원된 것이 바로 문혁이다. 그것은 내게 정치가 일단 휴머니즘을 벗어나면 사회적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 P12

내가 느낀 바로는, 큰 인물들이 아무리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할지라도 일반 인민들이 겪는 비극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큰 인물의 누명은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일반 인민은 사람을 잘못 만나거나 기회를 얻지 못하면, 마치 량산의 이 선생이 마침 그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있는 나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운명이 트이는 날을 맞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누명을 벗지 못하고 있을까요?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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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식회사는 1990년대부터 노골적으로 ‘비용의 외주화‘를 시작했습니다. 원래라면 자신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계속해서 ‘외주화‘해 왔습니다. 인재 육성은 그때까지 사내교육으로 각 기업에서 맡았는데, 거기에 드는 비용을 삭감하기 위해서 대학에 외주화했습니다. 똑같은 일을 모든 사회 활동에 대해서도 했습니다. 공해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것은 환경보호 비용을 외주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고속도로와 철도의 건설을 요구하는 것은 운송 비용을 외주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최저임금제의 철폐와 잔업제로 합법화를 요구하는 것은 인건비를 외주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래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나라와 지자체와 학교와 주변 주민과 종업원에게 떠넘긴 것입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외주화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잘 보여 주는 예입니다. 도쿄전력이라는 일개 민간기업에서 안전 확보를 위한 비용을 계속 삭감하는 바람에 심각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사고로 원자력 발전소 주변의 주민들은 살 곳을 잃어버리고, 일을 잃고, 의지해야 할 공동체를 잃어버렸습니다. - P411

지금 일본 기업에서는 비용의 외주화를 잘하는 경영자, 즉 본래 회사가 부담할 경비를 타인에게 떠넘기는 기술이 뛰어난 경영자가 ‘훌륭한 경영자‘ 소리를 듣습니다. 이기적일수록 칭찬받는 구조가 만들어진 거죠. - P413

지금 ‘글로벌 인재‘로서 기업과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없어져도 누구도 곤란하지 않은 인간‘입니다. 기업의 형편에 따라 이쪽으로 가거나 저쪽으로 갈 수 있는, 정년까지 세계를 빙빙 돌 수 있는 그런 기동성이 높은 인간을 기업은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어디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친족이나 지역, 어느 누구로부터도 의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의지할 수도 없는 그런 인간상이니까요.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없고 유지해서도 안 되는 그런 사람이 지금 학생들에게 이상적인 롤 모델로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고 선언하지 않으면 취직 시험에서 붙지 못하니까요. - P415

『쇼와잔협전』은 깊이가 있는 영화입니다. 전9편에 일관된 메시지는 하나,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인간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익이라든지 공공의 질서 같은 것을 말하고 짐짓 잘난 체하는 인간들을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중파戰中派 영화가들이 몸소 체험한 실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라를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타인의 생활을 짓밟는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또는 대의명분을 등에 업고 타인을 협박하거나 명령할 수 있는 입장에 섰을 때의 전능감을 맛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 P424

올리버 스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 영화는 훌륭하다. 일본의 식문화도 훌륭하다. 문물은 어느 것 하나 훌륭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이 나라에는 정치가 없다. 이 나라에는 일찍이 국제사회를 향해서 ‘우리는 이러한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이상을 말한 정치가가 한 명도 없다. 일본은 아무것도 대표하고 있지 않다." - P427

일본이 미국의 ‘위성국‘, ‘종속국‘이라는 올리버 스톤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먼저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패전 후의 일본인은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 인식 위에 서서 ‘주권 회복, 국토 회복‘이라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는 정치 과제 해결에 매달려 왔습니다. 그 작업의 전제에 있었던 것은 ‘일본은 미국의 종속국이다‘ 라는 현실 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일본인은 이 현실 인식 자체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주권국가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 기지가 국내에 있는 것은 마치 일본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 P428

미국에 종속하다 보면 이것저것 좋은 일이 생긴다는 성공 체험을 3대에 걸쳐 쌓아 온 결과, 정계 · 관계 · 재계와 언론, 학계 어디를 돌아봐도 ‘그런 사람‘들만 다들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국익을 희생해 자기 이익을 늘리고 있는 셈인데, 그 사실에 관해 본인들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국의 자원을 외국의 지배자에게 팔아넘겨서 그 대가로 얼마간의 이익을 손에 넣는 행위를 역사 용어로는 ‘매판‘이라고 합니다. 청조 말기에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이 중국을 식민지화하려고 했을 때 그것에 영합해서 그 보상으로 이권을 손에 넣으려고 한 중국인이 저지른 짓입니다. 지금 일본의 지도층은 그들과 매우 비슷합니다. - P434

미국 정부는 이러한 ‘매판 정권이 통치하는 종속국 일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물론 이용 가치는 있습니다. 미국의 국익 증대를 위해 알아서 국민 자원을 내놓는 셈이니까요. 이런 고마운 동맹국은 없습니다. 그런데 신용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 달라붙을 때의 동기가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전후 정치가들의 ‘대미종속‘ 전략은 국익을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대미종속‘ 전략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 증대를 위한 방편입니다. - P438

오사카의 하시모토 토오루 시장도 아베 수상도 "나의 정책에 불만이 있으면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리면 되지 않는가?"라고 자주 말합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주식회사 CEO의 말투입니다. 정치에는 시장이 없습니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당해 연도 또는 분기 내에 판정할 수 있을 것 같은 편리한 구조는 정치의 세계에는 없습니다. 정책 결정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그 결과물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국가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는 것은 자신이 채택한 정책이 정말로 좋은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도 모르고, 죽은 후에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정치가들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머리를 쓸 줄 모릅니다. 주식회사적 원리와 그 발상법에 너무 익숙해 있다 보니 자신이 뭔가 정책을 세운 경우에 그 옳고 그름이 주가나 매상, 시장점유율처럼 곧바로 수치적으로 표시되기를 바라지요. 5년 후, 10년 후의 결과물을 보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지금 곧바로 성공과 실패 여부를알고 싶은 것이지요. 그렇게 볼 때 정치에서 시장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선거 밖에 없습니다. - P443

‘다음 선거에서 심판이 내려진다‘는 정치가들이 아주좋아하는 문구는 정치 과정이 주식회사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재직 중 부정을 저지른 의원이 당선되면 ‘과오는 없던 것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마인드입니다. 그들에게는 ‘다음 선거‘가 시장이고, 그것이 모든 가치 판단의 최고 준거 기준입니다. 당선되었다는 것은 ‘제시한 정책이 지지를 받았다‘가 아니라 ‘제시한 정책이 옳았다‘고 그들은 해석합니다. 그래서 당선되면 다음에는 어떤 비민주적인 절차를 취해서라도 정책 실현에 매진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445

일본은 성숙사회, 정상사회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과정을 거스르고 무리하게 강제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공공적으로 소유하고 다음 세대에 무상으로 전해야 하는 국민자원에 손을 대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래의 일본 국민들이 우리가 지금 무상으로 향유하고 있는 것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통해서만 경제 성장은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상태를 ‘조삼모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미래의 일본 국민들을 우리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자신에게 "도토리 네 개를 내놔라", 미래의 자신에게는 "세 개도 괜찮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정치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원숭이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인 것입니다.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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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 대한 지원이 가장 필요한 것은 집단이 위기에 빠졌을 때입니다. 사회 질서의 해체가 멀지 않아 보일때, 배가 난파할 것 같아 보일 때, 전선이 완전히 무너져서 조직적인 저항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약자에 대한 지원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정작 고비 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장치를 마련해 두어야 할까요? 그것은
‘집단이 자아의 확대이고 다른 집단 성원이 자신의 일부라고 느낄 수 있는 집단‘입니다. 자신 옆에 있는 사람이 단지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형태를 띤 자기 자신이다. 예를 들면, 젊은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면 노인은 ‘언젠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이다. 유아는 ‘과거에 그랬을 자신‘이다. 노인도 유아도 타자의 지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스스로 영양도 취할 수 없고,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주위의 지원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지요. - P375

역설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개인을 향해 ‘예외적으로 선량하고 자비심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요구할수록, 또 그 요구에 맞추어서 스스로를 만들어 갈수록 그 사람의 자아의 껍질은 강력해집니다. 반면에 그 사람이 타자와 공감하고 동기화同期化하는 능력은 저하합니다. ‘베푸는 자신‘과 ‘베풂을 받는 타자‘ 간의 강자와 약자 사이의 비대칭성의 벽이 점점 높아지고 두터워질 따름입니다. - P376

이것이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도달한 길입니다. 자신들의 세금을 자신들을 위한 서비스에만 충당하고 다른 시민에게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 카운티 내의 빈곤층을 위한 행정 서비스가 중단되고 시민 생활이 곤궁한 상태가 된 것에 대해 그들은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것을 ‘행정 개혁의 성공 예‘로서 평가했습니다. - P378

미국 사회에서 이상적인 인격은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로부터 지원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지위도 재산도 위신도 모두 구축하는 인간을 존경하는 전통이 이 나라에는 있습니다. ‘개척자의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 P379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업적을 자랑하지만 그 사람이 그 집단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바람에 집단의 수행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개인적 업적은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지만 그 사람이 한 명 있는 덕분에 교사들의 연대가 밀접해지고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져 직장에 미소가 넘치고 교육연구가 활성화되는 등의 일이 생기면 이 사람은 교사단의 일원으로서 훌륭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셈입니다. 교육의 성과는 교사 개개인에 대해 계측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의 집합체, 교사단을 단위로 보아야 합니다. - P401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회적 활동은 파고 들어가 보면 개인의 것은 없습니다. 집단이 주체가 되어 수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집단은 지금 여기서 동시대에 같은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구성원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도, 아직 가담하지 않은 사람도 구성원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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