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잡아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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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젊은 시절, 그때의 무수히 많은 선택들이 만들어낸 결과들과 처절하게 대면하기 시작할 때가 40대 일것이다. 지나간 청춘! 그 때에 쏘아올린 수 많은 희망의 화살들. 그 시절에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고, 다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결과가 뻔한 일들에서 조차도 짚을 지고 불에 뛰어들 만큼 무모하다. <오늘을 잡아라>의 주인공도 그런 청춘의 시간들을 보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40대 중반의 남자, 토미 윌헬름. 그는 지금 수십 년의 시간과도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버지에게 위로를 받고 싶지만, 아버지는 윌헬름의 과거의 선택들을 질책하고, 그의 수치스러운 현실을 들춰낸다. 아버지와의 만남은 늘 고스란히 그런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고, 템킨박사가 그의 유일한 희망이다.


윌헬름의 현실은 과녁에 도달하지 못하고 땅에 곤두박질쳐진 화살들 같다. '꿈을 위해 포기한 대학, 이루지 못한 배우의 꿈, 자신의 결심과 달리 선택한 결혼, 승진이 약속되었지만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직장,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 아내, 자신의 것일 수 없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부양해야만 하는 현실, 놓치고 싶지 않은 새로운 사랑, 믿고 의지한 템킨박사와 주식투자' 그는 스스로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도 자신의 선택을 고수했고, 그 선택들의 결과는 한데 엉켜서 토미의 숨막히는 현실이 되었다.


마지막 희망, 주식에 투자한 전재산 700달러가 날아가는 순간.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템킨박사의 존재 역시 윌헬름 자신의 또 하나의 수치스러운 과거로 전락해버린다. 그중에 200달러만이라도 찾기위해 템킨박사를 찾아 나서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일에 다시 희망을 갖는 그런 그의 행동은 어리석어 보일 뿐이다.

 

템킨박사를 쫒던 토미는 인파에 떠밀려 생각지도 않은 장소에 들어와 있다. 누군가의 장례식장이다. 낯설지만 그곳에 분위기에 그는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관속에 누워있는 망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일까? 모든 것을 잃어버린, 희망없는 자신... 그곳에서 그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가두고 있던 설움이 터져나온다. 울고 싶은데 누군가가 뺨을 친 것처럼, 그 곳에서 그의 울음은 이상할 것이 없다.


윌헬름의 모습은 인생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어떤 이들이 겪고 있는 고민이고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돌이키기엔 늦어 버렸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남은 인생을 써버린다면 더 큰 후회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꿈을 쫓아서 살았고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현재 자신의 모습은 죽은 자와 다를 것이 없이 소생의 기미가 없다. 그래서 낯선이의 장례식장에서 흘리는 윌헬름의 눈물에 공감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희망없는 '토미 윌헬름의 하루'를 그리고 있는 <오늘을 잡아라>는 그런 시간들에 놓인 인간의 복잡한 심정을 잘 그리고 있다.


<오늘을 잡아라>는 '돌이키기에 늦어버린 인생들을 위한 현실적인 위로'처럼 들린다.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니 한바탕 울고나서 털어내고 다시 살아갈 수 밖에.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불안을 미리 끌어안을 필요도 없다. 그저 실재하는 오늘만 살면되는 것이다. 그는 눈물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가져다주는 위대하고 행복한 망각으로 인해(#199)' 그리고 그 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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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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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여러 번 무너져 내린 마음을 쓸어올린 후에 나온 얘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안타까우면서도 따뜻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다가도 눈물은 뚝 멈춰서고 웃음이 난다.

 

이 책에는 아버지의 지나간 슬픈 날들이, 엄마의 여리고 어여뻣던 시간들이 담겨 있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알게 되면, 엄마 아빠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라는 힘겨운 짐을 짊어지기 전까지 그들도 한 남자, 한 여자였었는데... 아버지가 생전에 써놓은 단가의 시구들에서 유이치는 젊은 날의 아버지를 만난다.

 

 #146. 공장의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껏 험악한 얼굴을 해보았네(1954년)

정면으로 마주 보고 험담하는 면상을 조용히 바라보면 마음 털썩 내려 앉아(1954년)

불현듯 창문이 얼어 붙어도 먹고살기 위해 버티는 몇몇 시간(1958년)

 #147. 몇 수 안 되는 직장에 대한 시구를 이렇게 뽑아보니, 살아가는 것에 크게 겁을 내며 비쩍 마른 몸으로 둘레둘레 주위를 살피는 삼십대 남자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치매를 앓는 엄마는 현실과 과거를 오고 간다. 과거로 돌아간 엄마는 허리가 아프도록 남편과 아들의 옷을 짓고,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퇴근길을 마중나가고, 젊은 시절 친구 치에코를 만나 얘기나누고, 어릴적 죽은 동생 히로코를 안고 있다. 그리고 너무 빨리 미래로 지나쳐 가버린 것인지 아주 먼 과거로 가버린 것인지, 엄마는 가끔 아이가 되어버린다. 그런 엄마의 인생은 시작과 끝이 쫌매어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인생에서 엄마는 슬프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란 말일세, 살아 있을 때 아무리 고생을 많이 해도 죽을 때가 되면 자기를 위로할 방법을 찾는 법이라네.' <인생>이란 책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치매라는 상황에는 적용되지 않겠지만, 그 시간들을 오가면서 엄마는 지나간 자신의 멍든 시간들을 스스로 치유해가는지 모르겠다.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는 한장 한장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넘어간다. 아버지의 단가를 통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과거를 살아가는 엄마를 보면서 지난 날  엄마를 두고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온 죄스러움을 사죄받고, 유이치 자신의 숨겨진 상처들 역시 치료받고 있는 것 아닐까?


아이러니지만 인간은 슬픔을 통해서도 위로를 받는다. 앞으로 이런 진한 감동은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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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5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읽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오래오래 가슴에 담으면서
사랑스러운 기운 얻으시기를 빌어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모던 클래식 4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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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말고도 새털같이 많은 날이 있을 줄 알았지`(p.438) 살면서 하게 되는 후회들 중에 많은 부분들은 내일이 있다고 믿는데서 오는 것 같다. 한 번뿐인 삶에서 오늘,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책에 삽입된 시각자료들이 주인공의 아픔을 더 깊게 공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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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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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고난을 두고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환경을 원망한다. 조금이라도 고통이 덜어지고,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탓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은 일어나야만 했던 것이다'(심리학자 잭 그레고리).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도 다 자신의 삶을 산 것 뿐이고 다만 그들과 우리가 인연의 그물로 연결되어있어 그 자리에 그 시간에 겹쳐져 있었을 뿐이다.

 

인생은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운명이고, 자신만이 겪어내야 할, 그리고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몫이다. 운명을 극복했다고 말하는 그 누군가도 그것을 극복할 운명이었던 것이고... 누군가 나 자신을 대신해서 죽임을 당할 수도 없고, 나에게 일어날 재앙에 발이 달려 다른 누군가에게 옮겨갈 수 도 없는 일이다. 만약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슬픔도 고통도 없을까?

 

푸구이 노인의 삶에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고난이 다 들어있다. 어이가 없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삶이고, 위로할 말을 찾을 수 도 없다. 하지만 이 노인은 그 자신의 삶을 그렇게 원망하는 것 같지도 피하려 하는 것 같지도 않다. 푸구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운명에 순응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도, 미련한 것도, 그렇다고 비겁한 것도 아닌 듯하다.

 

화가 복이되고 절망이 기쁨이 되는 순간을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만들어 낼 수 가 있을까? '굽이져 있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 자신의 운명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인생들을 위로하는 것은 어쩌면 소박한 바램만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노인의 말처럼, 지레 겁먹고 살 필요도 없고 '다만 조금씩 나아지겠지'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갈 뿐...

 

#111. 후에 나는 생각을 달리하게 됐지. 내가 나 자신을 겁줄 필요는 없다고 말일세. 그게 다 운명인 거지. 옛날에 큰 재난을 당하고도 죽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있을거라 했네. 그래서 난 나머지 반 평생을 점점 더 나이질 거라 믿기로 했지. 자전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녀는 이로 실을 끊으며 이렇게 말하더군. "저는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으면 그걸로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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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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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집사'는 주인공 스티븐스의 삶의 의미이고, '품위'는 그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기준이다. '품위'라는 틀로 찍어내어 틀밖에 있는 것들은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죽음도 사랑도 예외가 아니다.

 

집사라는 자신의 삶에서 그는 주인공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 의해서 부여된 삶을 산다. 그런 스티븐스는 동료 켄턴양의 말처럼, '시치미를 떼고' 살아간다. 그의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도, 켄턴 양이 다른 사람의 청혼을 받아들여 달링턴 홀을 떠난다고 했을 때도, "스티븐스 괜찮은가?" 주변 사람들도 다 알고 묻는 그의 얼굴에 가득한 아픔을 자신만 모른체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 물음은 나를 내내 답답하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스티븐스의 신념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달링턴 경의 몰락과 함께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링턴 홀의 주인이 바뀐 현재도 그는 여전히 달링턴 경을 모셨던 자신의 인생의 정점을 추억하며 산다.

 

인생의 황혼기에 주어진 6일간의 여행... 스티븐스는 '타인의 삶'을 벗고 오로지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터닝포인트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지나간 영광의 시간들을 반복할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다.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향해 달려가는 바퀴는 때로는 가족, 사랑, 그리고 숨겨진 진실을 짓밟고 지나간다. 그 바퀴가 서서히 멈춰설 즈음(그때가 인생의 황혼기 일지도)... 산산히 부서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신념의 잔혹한 결과들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단번에 바꿀 수 있을까?

 

다소 깔끔하지 못한 결말이 당혹스럽지만, 작가는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스티븐스의 모습을 절망적으로 얘기하지는 않는다. 스티븐스의 이야기를 계속되어야 할 시간의 연속성 위에 놓아 둔다. 여전히 회의적인 그의 다짐이 나를 무겁게 하지만, 자신의 삶을 바꿀 시간이 아직은 그에게 남아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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