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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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여러 번 무너져 내린 마음을 쓸어올린 후에 나온 얘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안타까우면서도 따뜻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다가도 눈물은 뚝 멈춰서고 웃음이 난다.

 

이 책에는 아버지의 지나간 슬픈 날들이, 엄마의 여리고 어여뻣던 시간들이 담겨 있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알게 되면, 엄마 아빠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라는 힘겨운 짐을 짊어지기 전까지 그들도 한 남자, 한 여자였었는데... 아버지가 생전에 써놓은 단가의 시구들에서 유이치는 젊은 날의 아버지를 만난다.

 

 #146. 공장의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껏 험악한 얼굴을 해보았네(1954년)

정면으로 마주 보고 험담하는 면상을 조용히 바라보면 마음 털썩 내려 앉아(1954년)

불현듯 창문이 얼어 붙어도 먹고살기 위해 버티는 몇몇 시간(1958년)

 #147. 몇 수 안 되는 직장에 대한 시구를 이렇게 뽑아보니, 살아가는 것에 크게 겁을 내며 비쩍 마른 몸으로 둘레둘레 주위를 살피는 삼십대 남자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치매를 앓는 엄마는 현실과 과거를 오고 간다. 과거로 돌아간 엄마는 허리가 아프도록 남편과 아들의 옷을 짓고,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퇴근길을 마중나가고, 젊은 시절 친구 치에코를 만나 얘기나누고, 어릴적 죽은 동생 히로코를 안고 있다. 그리고 너무 빨리 미래로 지나쳐 가버린 것인지 아주 먼 과거로 가버린 것인지, 엄마는 가끔 아이가 되어버린다. 그런 엄마의 인생은 시작과 끝이 쫌매어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인생에서 엄마는 슬프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란 말일세, 살아 있을 때 아무리 고생을 많이 해도 죽을 때가 되면 자기를 위로할 방법을 찾는 법이라네.' <인생>이란 책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치매라는 상황에는 적용되지 않겠지만, 그 시간들을 오가면서 엄마는 지나간 자신의 멍든 시간들을 스스로 치유해가는지 모르겠다.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는 한장 한장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넘어간다. 아버지의 단가를 통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과거를 살아가는 엄마를 보면서 지난 날  엄마를 두고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온 죄스러움을 사죄받고, 유이치 자신의 숨겨진 상처들 역시 치료받고 있는 것 아닐까?


아이러니지만 인간은 슬픔을 통해서도 위로를 받는다. 앞으로 이런 진한 감동은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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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1-05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읽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오래오래 가슴에 담으면서
사랑스러운 기운 얻으시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