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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채권 정리 - 금융산업의 뉴 프론티어
정재룡·홍은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무더기 도산위기에 놓인 미국 전역의 소규모 주택대출 금융회사의 오너들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이 보유한 주택담보 대출을 사달라고 살로만 브라더스를 찾아왔다. 이 대출은 부실이 아니라 정상대출이었고 시간이 흐르면 전액을 다 상환받을 수 있었지만 기간 미스매치 때문에 단기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금융기관들은 당장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이를 매각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살로먼 직원들이 놀란 것은 아무리 가격을 후려치고 홀대를 해도 이들 오너들이 계속 찾아왔다는 점이다. 이들 오너들은 살로만으로부터 강간(rape)을 당할지 아니면 천천히 죽음(파산)을 맞이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마치 사냥용 오리 같았다. 사냥용 오리는 일정 거리를 날아간 후에는 다시 돌아오도록 훈련을 받는다. 금융기관 오너들은 총을 맞는 것이 운명인 그 오리들처럼 살로먼으로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부실채권 정리"의 P122에서 인용된 [라이어스 포커(Liers' Poker)]에서
주말에 IMF환란위기이후 한국자산공사(영문 이름 KAMCO 이하 캠코로 명함)의 사장으로 있던 3년간 재직했던 정재룡씨가 캠코를 중심으로 한 부실채권정리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부실채권정리(2003년/삼성경제연구소)"라는 책을 봤습니다. 물론 이 책이 캠코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직접 쓴 책이기때문에 다소 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고전분투하던 캠코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자가 책의 프롤로그의 처음을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대규모 왜선들을 앞에 둔 캄캄하고 망망한 바다 앞에서 분노와 절망과 적의와 연민이 뒤엉킨 감정이 뒤엉킨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표현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할 정도로, 암울하고 참담했던 시기에 대한 보고서였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글에서처럼 강간 혹은 죽음을 강요당하던 한국의 상황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사냥하기 위해 덤벼들었던 월가의 투자자본 하에서 고전분투하던 캠코의 모습은 책으로 간접경험밖에 못한 나에게도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대우그룹 해외채 처리와 관련해서, 미숙했던 협상팀과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악용해 엄청난 도덕적 헤이를 벌였던 해외금융기관들의 행태를 보면서 능력이 없으면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간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든지 쉬운일은 아닙니다. 더욱이 그 길이 국가의 문명을 좌우하는 길이라면 부담감은 더욱 클 것입니다. 캠코는 당시 거의 생소했고 지저분하지만 반드시 신속하게 처리해야 했던 부실채권처리를 맡았고, 그 가운데에서 ABS, CRC, CRV와 같은 신종금융기법들을 도입해서 한국 금융시장을 한단계 도약하는데 공헌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무형의 자산화으로 해서 세계부실채권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캠코의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캠코는 공기업이기때문에 컨설팅은 어느정도 가능할 지 몰라도, 부실채권의 인수 및 중개업무를 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 월가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부실채권정리라는 시장에 민간 금융기관들이 적극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진로채권을 인수해서 대박을 떠뜨린 것처럼 이 시장의 이익률은 상당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경계심으로 부실채권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제3세계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좋다는 점, 우리나라의 부실채권처리경험이 상당한 무형자산으로 존재한다는 점, 미국을 제외하면 이 시장에서의 진입자가 거의 없다는 점 등이 이 시장에 대한 우위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시장의 일시적인 상황으로 극단적으로 싸게 거래되는 자산에 투자를 해서 장기간 보유한다는 점에서 가치투자와도 일맥상통할 수 있는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부실채권시장의 활성화는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경제적 효율성을 증대시켜 제2의 환란을 막고 미국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가게 하는 국부유출논란도 차단하는 사회적 기능도 할 수 있습니다.
80년대 금융위기의 진앙지였던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가 그후 부실채권시장의 중심지로 부상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값비싼 경험을 기반으로 제2의 론스타가 등장하기를 기대하면서, 헐값매각논란에 대해서 정재룡사장이 CNN인터뷰에서 했던 내용과 서양속담 하나를 올리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부실채권의 정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부실채권이 정리가 안 된 채 계속 쌓일 경우 경제나 금융 시스템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결국 어느 일정 단계가 되면 정리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부실채권의 경우 신속한 정리가 핵심 포인트라고 본다. 문제는 매각 대상인데, 안타깝게도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부실채권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부실채권에 대한 인식과 투자 마인드가 미미한 실정이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들에게 주로 매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투자자들의 자본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면서 한국 내에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시장 역동성을 마련하고 보다 나은 투자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단 부실채권 시장이 형성되고 시장 분위기가 성숙하면 국내 투자자들의 참여도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부실채권 정리 과정과 시장 형성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국 경제의 투명성과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P 149)
"하인드사이트(hindsight: 일이 모두 종료된 이후의 사후분석)의 시력은 언제나 2.0이다"
"이상주의자들(?)은 장미와 양배추의 냄새를 맡아본 후에 장미 향기가 더 좋으니까 더 맛있는 수프(soup)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는 사람이다.(An idealist is one who, on noticing that a rose smells better than a cabbage, concludes that it will also make better soup.)" (P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