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김성보, 기광서, 이신철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 오전 모처럼 근처 도서관에서 어스렁거리다가 우연히 만난 책이다. 

우리에게 북한은 어린 시절 반공교육속의 괴뢰집단 아니면 민족의 공통체로서의 감상적 존재라는 양극단의 진부한 이미지만 남아있어 사실은 가장 잘 모르는 존재이다. 하지만 북한만큼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 나라도 없다. 특히 현재 김정일의 건강이나 북한정권의 한계 등을 본다면 북한정권의 붕괴나 통일문제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 비교적으로 객관적 입장에서 북한역사 전체를 다룬 이 책은 출판한지 5년반이 지난 지금시점에서도 상당히 유용한 책이다. 특히 다양한 사진과 그림이 첨부되어 일반독자들도 쉽게 접근하게 한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신기하면서도 슬픈 것은 도서관을 다녀와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는데, 심지어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의 개론역사서까지 나온 현 상황에서 북한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한 대중서는 이 책이 거의 유일하다 싶다는 정도로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일반적 인식속의 북한은 아프리카나 남미보다도 더 무관심한 나라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 북한초기의 정당성 ↓ 정권붕괴의 가능성  

이 책을 통해서 우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건국과정에서 북한이 국민들의 강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했고, 이를 통한 국민과의 관계가 사상 유례없는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는 점이다. 

보천보 전투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진 항일무장세력의 중심인 김일성이 일제의 패망이후 국내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도별 건국준비위원회 세력들과 중국에서 항일투쟁에 앞선 연안계 등과 연합한 초기 북한정부는 모두 항일전선에 앞장섰던 세력으로 일제의 폭압에 고통받던 국민들에게 정권의 정당성을 호소하는데 분명 설득력이 있었다.  

이어 1946년 단행된 전면적인 토지개혁과 노동법/남녀평등법은 지금 시점에서 봐도 혁신적이면서도 국민들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조치들이었다. 이에 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있기까지 유지된 전면적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도 국민들의 실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을 제외한 채, 북한을 수령에 의한 세뇌된 악의 집단으로만 간주한다면 60년대 이후 인민동원에 의한 강력한 경제성장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북한정권의 생명력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그러한 정당성의 중심이 되는 김일성을 비롯한 항일빨치산세력들과 해방 및 60년대 대약진시대를 경험한 세대가 퇴장하고, 선진적인 기존의 경제나 사회적 보장책들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정권붕괴의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쉽다.

◆ 김정일의 치밀한 집권과정 VS 김정은의 취약한 집권기반

김정일의 집권과정도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도 이 책을 읽기까지는 잘 몰랐지만, 김정일은 단지 수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북한 최고지도자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가 후계구도 면에서 앞서 있었다. 

그럼에도 김정일의 확고한 후계자로 부각한 것은 다소 정체되던 북한사회에 주체사상을 정립해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유일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유일체제의 구축은 결국 실패했지만, 당시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 빨치산 원로들을 대접하면서 그들의 지지와 정통성을 계승했고, 빨치산 세대의 자녀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한 점도 주효했다. 여기에 그는 이미 1967년 당 중앙위원회 전원대회에서 당내 부르조아 수정주의분자들을 제거하는 등 김정일이 사망한 1994년까지 수십년간 수권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김정일이 단순히 혈연에 의해 집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수십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것이라는 사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김정은 후계구도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일단 북한을 둘러싼 대내외적 상황이 김정일 집권을 준비하던 1960년대 후반보다 훨씬 나쁘고, 김정은의 능력이 확인된 바가 없으며 그가 수권을 준비할 시간이 김정일보다 더 짧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의 몰락원인 : 집권세력 내 견제와 균형의 붕괴

60년대 국민들의 자발적인 동원을 이끌어내면서 6.25전쟁의 아픔을 딛고 당시로선 상당히 발전된 국가를 이룬 북한이 오늘날 몰락한 근본적인 원인을 뭘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집권세력 내 견제세력의 붕괴다.

초기 북한정권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만주계 항일 무장세력이 주축이 되었지만, 중국에서 항일빨치산운동을 하던 연안계나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한 한인세대 출신인 소련계 그리고 남로당을 비롯한 국내 공산주의 세력도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일종의 연합체 성격이 강했다. 물론 이들이 모두 사회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보면 하나로 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만약 지금까지 이러한 개별세력들이 나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북한이 지금처럼 일방적인 방향으로 질주하면서 파멸의 길로 가는 것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소련이 폭압적 독재를 했던 스탈린의 사후에 다른 대안을 찾아갔던 것이나 중국이 모택동 시대 대기근과 문화혁명의 후유증을 등소평이 수습한 것 등이 그 예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북한의 수령중심 유일체제가 1970년 이전까지는 지금처럼 확고하지 않았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과 같은 대안세력이 변화를 취할 수 없었다. 6.25전쟁의 실패를 책임지기 위해 전쟁기간 중에 연안계 지도자인 무정, 소련계 중심인 허가이 그리고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수뇌부를 제거했고,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남아있던 연안계/소련계/남로당계를 전멸시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집권세력의 견제와 균형의 붕괴는 사회가 어려워질 때 더욱더 교조적이고 모험적으로 바뀌면서 파국을 앞당기게 되었다. 적어도 중국식의 집단지도체제가 명목상이라도 유지되었다면 김일성 사후 혹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시 개혁개방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일체제만 남아있는 북한에선 주한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정치적 명분을 포기못하고, 핵과 미사일 그리고 대남도발이라는 군사적 강경책만 내세우는 외골수만 제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부담이 북한만이 아니라 우리도 나눠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울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책은 씌여진 시기가 2004년이어서 그런지 "북한이 고립주의적인 자세를 폐기하고 나섰지만, 이를 성공하기 위해선 대미관계를 위시한 대외 교류와 협력이 순조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북한이 개혁개방에 성공할 때 남북간의 평화공존과 통일의 길은 더욱 가깝게 다가올 것"이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그러한 답이 이미 부정적인 것으로 확인된 시점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더욱 아쉬움이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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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0-11-14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기회를 다 놓치고 나니 별로 남은게 없죠.. 그냥 설득없는 억지 후계구도 정도.. 부담은 주변과 후대에게 넘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