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에티엔 바랄 지음, 송지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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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츄와 에반게리온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를 기성세대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최근의 반일 감정이 고조되는 가운데에서도 일본문화의 대표적인 만화나 게임에 열광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일본문화를 상징하는 오타쿠 문화는 옴진리교의 테러나 변태적인 성행위의 묘사된 만화나 영화 그리고 현실과 유리된 사회부적응아 등의 이미지로 인식되면서 저질문화로 취급되곤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이러한 시선에 당당하며 적극적으로 오타쿠 문화를 향휴하고 발전하고 있다. 최근의 몇년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판타지소설과 온라인게임 그리고 K1으로 상징되는 이종격투기의 열풍 등도 따지고 들면 오타쿠 문화에 기반을 투고 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타쿠 문화는 어떤 것이기에 이처럼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끌어 모은 것인가?

 오타쿠 문화를 간단히 정의하면,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한 현대인이 가상세계에서 열정을 가지고 전문가 이상의 능력을 가짐으로써 자기만족을 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화가 나타난 것인가? 이는 자본주의가 가져주는 물질적 풍요와 그에 걸맞지 않는 정신적 빈곤에 오타쿠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라는 외피로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부여하며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서 그 효율성을 극대화해왔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어느정도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대부분 직감적으로 파악한다. 특히 이미 사회적 지위를 차지한 기성세대와는 달리 젊은 세대에게는, 현실세계에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경제적 풍요와 무한경쟁만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현실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기회의 세계인 가상세계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단지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성숙단게로 들어선 대다수의 선진국들과 한국에서도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문제이다. 키덜트 산업의 발달, 온라인 게임의 성장, 폐인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문화, 심화되는 학교폭력과 서열화 등의 최근 우리가 겪는 상황들은 대한민국이 경험하는 오타쿠 문화의 또다른 변형이다.

  그렇다면 오타쿠 문화는 단순히 현대사회의 병패이며 사라져야 할 필요악인가?  그렇지 않다. 오타쿠 문화는 선악의 차원을 넘어서 이미 우리시대의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기술의 발달이 진행되면서 형성된 가상현실이 현실사회보다 우월하다는 기존의 고정관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들뢰지가 말하던 유목적인 사고 및 욕망의 구성 등에서도 유추할 수 있지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가 실제이고 가상세계라고 부르는 세계가 허상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공각기동대나 이노센트처럼 우리의 몸이 단순히 우리의 기억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이 조차도 과학기술의 발달로 선택사항이 되는 사회가 도래할 수도 있다. 가상현실과 현실세계의 조화가 우리시대의 새로운 화두라면 오타쿠 문화는 이러한 화두에 대한 우리세대의 적응방식이다. 더욱이 다양한 문화산업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미 오타쿠 문화는 아웃사이더 문화가 아니라 주류문화로 편입되고 있다.

  물론 이 책이 이러한 오타쿠 문화의 보편성과 가상세계의 적응에 대한 선구적 역활을 논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일본으로 한정지어 오타쿠 문화의 특성과 오타쿠 문화를 만든 일본문화의 문제점과 오타쿠 문화의 문제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프랑스인이다보니 일방적인 오타쿠 옹호보다는 획일적인 문화에 대한 반항으로 나온 그러나 그러한 획일적 문화의 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오타쿠 문화의 문제점에 집중한다.  개인주의와 이성의 세례가 그 어느 곳보다 강하다는 프랑스인의 눈에서 본다면 오타쿠 문화는 미성숙된 편집증적 문화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과 판타지소설과 인터넷문화를 즐기는 대한민국의 청년인 나에게는 이 책에서 묘사된 오타쿠 문화를 보면서 선과악을 떠나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문화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수백년 뒤 우리의 후손들은 오타쿠 문화를 근대사회를 이끈 유럽의 르네상스 운동에 비유할지도 모른다.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더라도 오타쿠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그를 둘러싼 사회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그 자체로도 일독을 권할 만 하다. 물론 이 책에 댓글에서 지적된 많은 사실적 오류들에 대해서는 고려하면서 읽어야 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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