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아이들에게 암울하지 않은 미래를...
"책을 읽기에 앞서 편안한 의자에 앉은 다음 넥타이나 셔츠 단추를 느슨하게 풀고, 안정제나 우울증 약을 복용하길 바란다."
책은 이같은 `안전수칙'을 전하면서 시작된다. 거짓보다 훨씬 더 나쁜 진실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경고다. 미국 정부의 실제 채무는 공식 발표보다 12배나 많고, 물려받을 빚더미에다 과도한 부양의무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라는데 `경제적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단 고령화 사회가 문제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수명이 늘었다. 100년전 아동 인구는 노인 인구의 3배였다지만 이제는 거의 1대 1이다. 인구통계학상 듣도 보도 못할 변화란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30년 후엔 거의 2배. 1950년에는 노인 1명을 16명의 노동자가 부양했지만 2030년에는 고작 2명이 부양하게 된다. 허리가 휘지 않고 버텨낼 도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고민'은 내 몫이 아니길 바라는게 우리네 심리. 미국인들도 은퇴때 급격히 증가할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지금부터 저축하라거나 세금을 더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따라서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정치인을 고용하고 그 정치인들은 더욱더 깊은 구덩이로 그들을 몰아넣는다는게 저자의 지적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 가능한 이유와 관련, 저자는 "미국 정부가 미래비용에 대한 정보를 공식적으로 조작하는 방법이 거의 예술의 경지까지 발전했다"고 비꼰다. 도깨비 예산 놀음을 살펴보자. 미 당국은 2000년 대선 직전 2002~2011년 10년간 6조8000억달러(약 7800조원)의 흑자를 기록할 거라 했지만 대선 후에는 말을 바꿔 4조6000억달러(약 5300조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했다. 미국인 1인당 공식부채는 1만4300달러(약 1600만원)지만 비공식부채를 더하면 미국인 각자가 당장 갚아야 할 돈이 15만9000달러(약 1억8300만원)로 불어난다.
진실을 듣게 되면 정치인들은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게 아니라 다음 선거를 염려한다. 그들은 "그 모든 빚을 하루아침에 갚을 필요가 어디 있나? 점차적으로 갚아나가면 된다. 그것은 우리 세대나 우리 아이들 세대에게 큰 부담은 아니다"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닉슨은 베트남 전쟁자금 마련을 위해 국채를 찍어내 사실상 빚을 후손에게 떠넘겼으며 레이건은 부채 대 국내총생산(GDP) 비율을 33%나 증가시켰단다. 아버지 부시는 교묘한 회계조작으로 적자를 감췄으며 클린턴은 미래세대가 보기에는 완전 실패작인 경제정책을 펼쳤다. 무엇보다 아들 부시는 감세정책에 매달려 재정적자를 더욱 부풀리면서 미국을 재앙으로 빠뜨리는데 결정타를 날리고 있다. 벼랑끝까지 몰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정치인의 속성을 비웃는 저자는 "그래서 미친 소리 같지만 경제가 `임계상황'까지 치닫기를 바란다"고도 한다.
다음 세대가 우리보다 순세금을 2배나 많이 납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 다음 세대의 실질소득은 현재보다 40% 감소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도망칠 수는 있지만 숨을 수는 없는 상황. 현 세대가 즉각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고 `숨겨진 고통'을 나눠갖지 않을 경우, 결국 정부는 파산할테고 우리 아이들은 등골이 휠 것이다.
공동저술에 나선 경제학자와 경제기자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려고 애썼다. 비록 숫자와 계산이 가끔 읽기를 방해할지라도 도저히 눈감고 귀닫을 수 없는 경고다. 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중인 나라에 사는 터라 이런저런 고민에 조급해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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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저자의 문체는 발랄하다. 어려운 책을 재미있는 사례 등으로 꾸미는 재주가 탁월하다. 시니컬한 유머도 괜찮다. 어쨌든 그는 소개한다. ‘책은 미국의 인구통계학적, 재정적 현실을 점검할 것이다. 그것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당연한 얘기지만 스티븐 킹 소설류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책의 2/3를 읽고 난 다음에는, 공포에 떨고 분노하며 안전한 곳을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중도에 그만 두지 말고 끝까지 읽기 바란다. 마지막 부분에 최악의 시나리오로부터 미국을 구할 새로운 정책과 개인금융 솔루션 형태의 위기탈출법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라고.
책의 핵심은 1)미국 재정이 고령화와 맞물려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국가 재정이 파산할 경우 국민들의 고통이 어떻게 늘어날지 등에 대한 설명과 2)어떻게 위기에서 탈출할 것인지로 나뉜다. 각론은 꽤나 전문적이라 부득이하게 하룻밤새 이 책을 읽어야 했던 나로서는 설렁설렁 넘어간 부분이 적지 않다. 2)의 경우야 말로 저자가 하고 싶은 요지라 하겠는데...
저자의 해법은 일단 ‘개인사회보장제도’를 제안한다. 뭐, 설명은 다소 복잡하다만..결국 현재의 은퇴자들이 노령보험 연금혜택을 계속 받더라도, 더 이상 추가적인 혜택은 주지 않는. 미국이 현재의 부채를 갚겠지만 그걸로 끝. 추가부채는 한푼도 발생시키지 않겠다는 방식이다. 또 ‘판매세’ 도입을 주장한다. 역시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 가난한 근로자 세금은 낮추고 중산층과 부유한 노년층의 세부담을 늘리는 일이 된다. 또 65세 이상 의료지원 프로그램인 메디케어 수술방안 등을 내놓고 있다. 저자는 또 극빈자층 의료서비스 메디케이드 개혁, 부시의 감세정책 폐지(이걸로 9조달러가 절약된단다), 연방정부의 재량지출 제한 등을 요구한다. 이 대목은 역시 상당한 전문적 관심을 요구한다.
미국을 위한, 딴 나라도 제 코가 석자일테니..우리 잘해보자는 저자의 촉구이지만...이 책이 현 시점에서 유의미한 것은 미국을 금과옥조로 배우는 우리나라도 같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탓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이 최근 주장한 감세안과 관련, 경기를 살려 재정을 다시 튼튼하게 하면 되니까 일단 세금부터 줄이고 보자는게, 대부분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이같은 감세안이 얼마나 위험한지..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중간부터는 꼼꼼하게 읽지 못했다. 언젠가 다시 읽어봐야겠다 싶지만...사실 그 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이 책을 다시 정독한다면, 그건 우리나라 상황이 악화돼 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졌을 가능성이 높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