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은 야심찬 것이기에, 언제든지 무감정을 비롯해 온갖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즉, 두려움, 근심, 배고픔, 호기심에서부터, 중립적인 태도로 [슈퍼마켓의] 매장 통로들을 훑어보는 기민함. ˝다가올 변화˝의 전망에 대한 흥분감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전 영역을 포괄한다. 혹은 다가오지 않을 변화에 대한 흥분감일 수도 있다. 낙관이 주는 일상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관습성을 유발하는 것이다. 관습성이란, 사람이나 세상이 만들어 낸 좋은 삶의 여러 장르 속에서 예상할 수 있는 안락함으로 욕구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이다. 하지만 낙관이 목표를 드러낸다고 해서 어리석거나 단순해지는 것은 아니다- 고통의 순간에 위험을 무릅쓰는 애착심은 종종 합리적 계산을 뛰어넘는 지적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낙관의 경험이 구체적으로 어떻든 간에, 낙관적 애착의 정동 구조는 특정한 환상의 장면으로 되돌아가려는 지속적 경향을 포함한다. 그 환상이란 이번에야말로 이 대상에 다가가면 나 자신이나 세상이 딱 알맞게 달라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게 하는 환상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나 민족이 폭넓은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분투를 감행하는데,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에 불을 붙였던 대상/장면이 그런 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그때 낙관은 잔인한 것이 된다. 그리고 어떤 관계 속에 머무르는 즐거움 자체가 관계의 내용과 상관없이 지속적인 것이 될 때, 그래서 심히 위협적인 동시에 매우 확신을 주는 상황에 사람이나 세계가 스스로 매여 있음을 발견할 때, 낙관은 이중으로 잔인해진다. (10-11)
  • 잔인한 낙관로런 벌랜트 지음, 박미선.윤조원 옮김후마니타스 2024-06-17장바구니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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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7-04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 어렵네요. 그래도 제가 더 많이 읽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07-04 11:36   좋아요 1 | URL
달리시는 겁니까? 😎

단발머리 2024-07-04 12:45   좋아요 1 | URL
유시민씨 만나고 있습니다 ㅋㅋㅋ 짬짬히 읽었는데 어렵네요, 이 책…. 라캉보다 쉬울텐데… 그죠? 😜

수이 2024-07-04 18:07   좋아요 0 | URL
라캉보다는 쉽지 않겠습니까? 🤪

공쟝쟝 2024-07-05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녁 먹고 잠깐 정리하고 읽으러나갑니다 쌩---!

수이 2024-07-08 04:52   좋아요 0 | URL
굿모닝~ 이번주도 달려봅시다앙!
 




 















 

















2024년도 어느덧 반년이 흘렀다. 그러니까 딱 정확히 오늘을 기점으로 6개월 남은 거다. 한 건 물론 아무것도 없다. 진지하게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_ 라고 자문하면서 물론 6개월만 더 놀아보면서 생각해보도록 하자_로 결론 내렸다. 기말고사 준비하는 중딩에게 이끌려 새벽 6시 기상해서 7시에 스타벅스에 출근을 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는 고3에도 이렇게 공부를 한 적이 없는데....... 라고. 정확히 김밥집 가서 김밥 먹을 때 빼고는 7시간 30분 앉아있었다. 엄마, 왜 안 졸아? 라고 딸아이가 물었고 어랏, 그러게나, 졸립지 않네?! 라고 대꾸하면서 계속 마쓰모토 타쿠야를 신나게 읽어제꼈다. 아무 생각 없이 펼쳐든 [젠더 스터디]가 그만 발목을 잡아 딱 스무 페이지만 읽고 자야겠다. 바나나와 모기약이 떨어져서 마트에서 사갖고 오면서 대문 앞에서 셀카를 찍었다. 푸코 애정하는 그분에게 푸코 강의 들어야 하는데 일단 책을 서서히 정독해볼까나 하고 발목을 까딱거리고 있다. 때마침 도서관에서는 너 책 반납해야지, 왜 안 갖고 와?! 하고 문자가 날아왔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보도록 하겠다. 딱 반년 남았다. 스스로를 우쮸쮸하면서 올해에는 책 좀 읽어야지! 하고 깊이 반성한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정말 징하게 안 읽었다. 인생 방향 좀 바꿔보겠노라고 별의별 쌩쇼를 다 하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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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6-30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 7시에 공부하러 가야겠다고 스벅 가자는 그 사람을 좀 빌려주세요. 같이 갈 용의가 있습니다. 라캉책 넘 멋지네요! 👍🏼

수이 2024-06-30 20:56   좋아요 1 | URL
그 사람은 공부 집중하기 힘들다고 왔다갔다 8시간 30분 동안 3번 산책 다녀오셨습니다만 ㅋㅋㅋ 라캉은 변태라서 더 멋져보이는 걸까요? 헤헤헤

공쟝쟝 2024-06-30 2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ㅇ ㅏ, 푸코 내껀데.. 다들 왜 읽으려고 하시는 건가요? 이 좋은 거 나만 읽으려고 몰래 읽고 있는 데 ㅋㅋㅋㅋㅋ

수이 2024-06-30 20:19   좋아요 1 | URL
안 읽고 싶은데 라캉에서도 계속 푸코가 나오네유;;;; 별 수 없다;;;;; 읽는 수밖에 -_-;;;

단발머리 2024-06-30 20:20   좋아요 1 | URL
니꺼도 내꺼이요 내꺼도 내꺼.
니꺼내꺼 내꺼내꺼!
푸코 내꺼 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06-30 20:22   좋아요 1 | URL
데리다는요?????????
 

마쓰모토 타쿠야_ 일요일_ 스타벅스 겁날 정도로 맛없는 커피_ 마시고 핫초코


45- 밀레 문장

동물이라는 종은 자연이라는 나침반을 가지고 있으며, 이 나침반은 각각의 종에) 독자적이다. 인간이라는 종에게 나침판은 복수적이다. 인간에게 나침반이란 시니피앙을 조합하여 디스쿠discours에 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인간에게)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준다.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 어떻게 향락할 것인가, 어떻게 번식할 것인가를 알려 준다. (...) 오늘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나침반은 아무리 다양했을지라도 완전히 동일한 극을 향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버지‘라는 점이다. 가부장제는 인류학적 측면에서 변하지 않는다고 믿어져 왔다. 가부장제의 몰락은 신분의 평등과 자본주의가 가진 힘의 증대, 기술의 지배에 의하여 가속화되었다.
우리는 ‘아버지‘ 시대의 출구라는 국면에 도달한 셈이다. (...)프로이트는 ‘아버지‘의 시대를 살았다. 그는 그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수많은 것을 이루었다. 교회는 이 점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 라캉은 프로이트가 열어젖힌 길을 따라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라캉으로 하여금 ‘아버지‘가 하나의 증상이라고 여기게 했다. - P45

라캉주의는 이 시니피앙을 한동안 ‘단 하나뿐인 시니피앙signifiant tout seul‘이라고 불렀는데, 최근에 이르러서는 ‘일자의 시니피앙 signifiant Un‘ 혹은 단순히 ‘S1‘이라고 부른다. 이 시니피앙은 말(시니피앙)의 효과와 그 말을 발화함으로써 생기는 향락의 효과가 분리될 수 없도록 일체화된 ‘라랑그 lalangue‘의 성질을 띠고 있으며,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지만 향락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고 여겨진다.
이 라랑그(=단 하나뿐인 시니피앙)는 각각의 자폐증자에게 특이적 singulier인 향락의 모습을 동반한다. 그러나 라랑그는 자폐증자만이 아니라 신경증이나 정신병 같은 모든 주체가 처음으로 만나는 언어이기도 하기에, 모든 주체가 자가 성애적인 향락을 동반하는 라랑그를 각인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대 라캉주의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러한 증상이 갖는 자폐적인 측면을 자폐증만이 아니라 의존증의 영역이나 모든 증상이 갖는 중독적인 측면으로까지 확장시켜 논의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로랑이 예언적으로 언급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21세기란 자폐증(내지는 자폐적향락)이 "(주체의) 평범한 상태 statut ordinaire"로 나타나는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로랑 2012, p. 176). - P55

라캉의 디스쿠르 도식은 좌우가 각각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어네 개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좌편 상단은 동인 agent, 좌편 하단은진리 vérité, 우측 상단은 타자autre, 우측 하단은 생산물production이위치한다. 이들 네 위치에 주인의 시니피앙(S), 지식(S2), 빗금이그어진 주체($), 대상 a(a)라는 네 가지 항목이 어떤 식으로 배치되는가에 따라서 각각의 디스쿠르가 규정되는 것이다. 기본적인법칙으로는 ‘진리‘에 의하여 지지되는 ‘동인‘이 ‘타자‘에게 명령하고 그 결과로서 ‘생산물‘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때 ‘진리‘와 ‘생산물‘ 사이에는 차단선(//)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주인 디스쿠르는 시니피앙의 연쇄(SS)로 주체($)가 대리 표상되어, 원초적으로 존재했다고 상정되는 향락을 상실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잉여향락(a)을 얻게 되는 구조를 가리키고 있다. 주체($)와 대상(a) 사이에 있는 차단선(/)은 주체가 원초적인 향락을 되찾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잉여향락의 대상을 욕망한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결국 이 디스쿠르에서는 앞서 살펴본 결여(상실)로 인해서 욕망이 구동된다는 논리가 설명되고 있다. 그리하여 주체와 대상 a 사이에는 환상의 구조($a)가 생기고, 주체는 그 환상 안에서 결여를 메우려는 욕망을 품게 된다. - P59

만년의 라캉과 밀레가 규정하는 ‘무의식‘의 개념에 대한 이와 같은 쇄신(혹은 폐기)을 반反프로이트적인 행동이라고 말해야 할까? 이를 콜레트 솔레 Colette Soler(2009)의 표현을 빌려 "재발명된무의식linconscient réinventée"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 표현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변화가 지금까지 무의식을 다루어왔던 정신분석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리라.
한편 증상에서 생톰으로, 무의식에서 말하는 존재로 향한 일련의 이행 속에서 과거에 우월한 위치에 있었던 상징계가 격하되는대신에 종종 실재계가 중시되는데, 최근 수년에 걸쳐 밀레가 오히려 ‘상상계로의 회귀‘라고 할 법한 이론을 발표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2016년 4월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된 세계정신분석협회 제10차 대회에서 밀레는 「아베아스 코르푸스Habeas Corps」라는제목으로 발표를 가졌다. ‘신체를 보호한다‘라는 의미에서 변용되어 붙잡힌 몸을 해방시킨다는 의미를 갖는 이 라틴어는, 지금까지의 일련의 논의 안에서 신체라는 것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관한 재고를 촉구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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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이와 아주 흡사한 에피소드를 1964년 세미나인 11권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에서 말하고 있다. 이는 라캉의 20대 시절의 이야기이다. 라캉이 인텔리였으며 조부가 식초 판매상이었다는 사실에서 보자면 요즘 말하는 중상류 가정 출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노동자계급의 생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라캉은 어느 여름 시골의 조그마한 어촌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뱃사람의 가족과 함께 작은 배를 타고 낚시에 나섰다. 이어서 소개하는 일화는 그 배 위의 장면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물을 거둬들일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명 꼬마 장Petit-Jean, 우리가 그렇게 부를 수 있을 한 남자가 (...) 파도 표면에 떠다니는 무언가를 저에게 가리켰습니다. 그것은 작은 깡통, 정확히 말하자면 정어리 통조림 깡통이었습니다. (...) 그 깡통은 햇빛을 받으며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지요. 꼬마 장은 ˝보이나? 저 깡통 보여? 그런데 깡통은 자네를 보고 있지 않아!˝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 그는 이 작은 에피소드를 두고 아주 재미있어 했지만 저는 별로 그렇지 못했습니다. (...) 어떤 면에서는 그럼에도 그 깡통이 저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깡통은 관점에서 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꼬마 장)가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어쨌거나, 앞서 제가 저 자신에 대해 묘사했듯이 제가 그 당시 거친 자연에 맞서 싸우며 힘겹게 생계를 꾸려 나가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아주 우스꽝스런 그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지요. 한마디로, 저는 아주 작게나마 그림 속의 얼룩이 되었던 것입니다(S11, 88-9/126, 강조는 인용자).

이 장면에서 젊은 지식인이었던 라캉은 뱃사람들과 섞여 배를 타고 노동자 놀이를 하고 있다. 뱃사람은 물결에 떠다니고 있던 빈 깡통을 라캉에게 가리키며 ˝어이, 저 깡통 보이지. 자네는 그걸 보고 있겠지만, 그 녀석은 자네를 보고 있지 않을 거네˝라고 말한다. 이 뱃사람의 말에 대해 라캉은 ˝그렇지만 깡통 쪼가리는 나를 보고 있었다˝고 논평하고 있다. 즉, 여기서 그가 말하는 것은 분명, 자신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있을 때 실제로는 그 대상에게도 자신이 이미 보이고 있음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라캉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 안에 나 자신이 새겨져 있으며, 바로 거기에서 불편함(부끄러움)이 생긴다‘는 것이 그것이다. 먼저 풍채 좋은 노동자들과 섞여 있는 지식인이라는 도식에 주목하자. 라캉은 이를 ˝아주 우스꽝스런 그림을 만들어 냈다 Je faisais tableau d‘une façon assez inénarrable.˝고 표현하며 자신이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음을 자조하고 있다. 나아가 라캉은 ˝저는 아주 작게나마 그림 속의 얼룩이 되었다 faire tache dans le tableau˝라고도 말한다. 이 부분을 [세미나] 일본어판은 ˝나는 그림 안에서 작은 얼룩처럼 떠 있었다˝고 번역하고 있다. ˝떠 있다˝라는 말은 원어민 프랑스판에는 없지만 일본어 번역은 ˝깡통이 (바다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라캉)가 (그 장면으로부터) 떠 있다˝고 읽을 수 있도록 표현하고 있다. 라캉은 자기 자신이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 즉 그 장소에서 붕 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깡통을 통해서- 뱃사람들은 살기 좋은 세계와는 분리되어 있고, 공업 상품으로서의 ˝정어리 통조림˝을 통해서 - 알게 된 것이다. (222-225)

  • 향락사회론마쓰모토 타쿠야 지음, 임창석.임창석.이정민 옮김에디투스 2024-06-13장바구니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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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밑줄_재독

오귀스트 로댕(FrançoisAuguste René Rodin)은 바로 그 출발점이다. 로댕은 조각에 서사적 설득력을 부여하는 해부학적 정확성을 의도적으로 파괴했으며, 조각의 본질을 서사적 내부에서 시각적외부 혹은 표면으로 옮겼기 때문이다(크라우스, 1997: 42).
로댕은 조각에 원형을 다듬은 손과 도구의 흔적을 그대로남기고, 같은 형상을 반복하며, 대상을 독립적이고 실제적인 오브제로 보이도록 해 작품과 실재 간의 차이를 없앤다.
이러한 혁신으로 관람자는 작품을 하나의 완결된 대상이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상을 이루는 행위의 결과"로 보게 되며, 작품의 "의미는 경험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과정 자체에서 발생한다는 현대 조각의 원칙에 동참하게 된다(크라우스, 1997:44).
조각을 관조의 대상이 아닌 경험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현대 조각가들의 새로운 미학적 목표가 되었다. 이때 경험은 크게 조각의 구조를 ‘인식‘하는 추론적 경험, 그리고 그 구조를 감각하는 지각적 경험으로 나눌 수 있다. - P3

그리드의 형식적 기원은 르네상스 회화의 원근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회화의 공간적 구조를 수립하는 원근법의 교차된 선들이 그리드의 원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근법적 격자가 실재(자연)와 재현(회화) 사이의 유비를 보여 주기 위해 창안된 반면, 모더니즘의 그리드는 이러한 자연적 유비와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회화 자체의 믈리적 특성(액자의 사각형, 캔버스 직물의 미세한 수직수평의 짜임새 등)에서 기인하고, 그러한 물리적 특성을 미학적 차원으로 제시한다. 크라우스는 1979년 논문 "그리드"에서 원근법적 그리드를 그림에서 세계라는 외부로무한히 확장해 나가는 원심력의(centrifugal) 운동으로 설명하고, 모더니즘의 그리드를 그림의 내부로 환원해 들어가는 구심력의(centripetal) 운동으로 정의하면서 후자가 "예술의 관습적(물리적) 본성에 대한 반복의 방식"으로 구현된다고 주장했다(Krauss, 1979: 60~61). 크라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의 기원이 순수한 무관심성(puredisinterest)의 관념이 아니라 경험적 통일성에 있다고 보는이들에게, 그리드의 위력은 회화의 물리적 토대를 감추고 - P20

동시에 드러내면서 떠올려 내게 하는 그것의 역량에 있다.
그리하여 회화적 표면의 이미지가 회화적 물질의 조직에서 유래했음을 알리는 것이다."(Krauss, 1981: 54) 회화의 가치를 내용이 아니라 고유한 매체성에 귀속해 회화를 (문학적 내용과 독립된 순수하고 무관심하며 자율적인 대상으로 만드는 그리드의 혁신성에 입각해 모던 예술가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그리드를 "항상 새롭고 독특한 발견"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드는 (피카소의 분석적 화면에서 미니멀리즘의 입방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발견되는 스테레오타입"이며, 따라서 작가가 "자유롭게 느끼면서도 결국 갇히게 되는 감옥" 같은 것이다(Krauss, 1981:56). 작가들은 "그리드에 몰입한 순간부터 작품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대신 동일한 형태를 반복한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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