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이와 아주 흡사한 에피소드를 1964년 세미나인 11권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에서 말하고 있다. 이는 라캉의 20대 시절의 이야기이다. 라캉이 인텔리였으며 조부가 식초 판매상이었다는 사실에서 보자면 요즘 말하는 중상류 가정 출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노동자계급의 생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라캉은 어느 여름 시골의 조그마한 어촌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뱃사람의 가족과 함께 작은 배를 타고 낚시에 나섰다. 이어서 소개하는 일화는 그 배 위의 장면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물을 거둬들일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명 꼬마 장Petit-Jean, 우리가 그렇게 부를 수 있을 한 남자가 (...) 파도 표면에 떠다니는 무언가를 저에게 가리켰습니다. 그것은 작은 깡통, 정확히 말하자면 정어리 통조림 깡통이었습니다. (...) 그 깡통은 햇빛을 받으며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지요. 꼬마 장은 ˝보이나? 저 깡통 보여? 그런데 깡통은 자네를 보고 있지 않아!˝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 그는 이 작은 에피소드를 두고 아주 재미있어 했지만 저는 별로 그렇지 못했습니다. (...) 어떤 면에서는 그럼에도 그 깡통이 저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깡통은 관점에서 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꼬마 장)가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어쨌거나, 앞서 제가 저 자신에 대해 묘사했듯이 제가 그 당시 거친 자연에 맞서 싸우며 힘겹게 생계를 꾸려 나가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아주 우스꽝스런 그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지요. 한마디로, 저는 아주 작게나마 그림 속의 얼룩이 되었던 것입니다(S11, 88-9/126, 강조는 인용자).

이 장면에서 젊은 지식인이었던 라캉은 뱃사람들과 섞여 배를 타고 노동자 놀이를 하고 있다. 뱃사람은 물결에 떠다니고 있던 빈 깡통을 라캉에게 가리키며 ˝어이, 저 깡통 보이지. 자네는 그걸 보고 있겠지만, 그 녀석은 자네를 보고 있지 않을 거네˝라고 말한다. 이 뱃사람의 말에 대해 라캉은 ˝그렇지만 깡통 쪼가리는 나를 보고 있었다˝고 논평하고 있다. 즉, 여기서 그가 말하는 것은 분명, 자신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있을 때 실제로는 그 대상에게도 자신이 이미 보이고 있음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라캉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 안에 나 자신이 새겨져 있으며, 바로 거기에서 불편함(부끄러움)이 생긴다‘는 것이 그것이다. 먼저 풍채 좋은 노동자들과 섞여 있는 지식인이라는 도식에 주목하자. 라캉은 이를 ˝아주 우스꽝스런 그림을 만들어 냈다 Je faisais tableau d‘une façon assez inénarrable.˝고 표현하며 자신이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음을 자조하고 있다. 나아가 라캉은 ˝저는 아주 작게나마 그림 속의 얼룩이 되었다 faire tache dans le tableau˝라고도 말한다. 이 부분을 [세미나] 일본어판은 ˝나는 그림 안에서 작은 얼룩처럼 떠 있었다˝고 번역하고 있다. ˝떠 있다˝라는 말은 원어민 프랑스판에는 없지만 일본어 번역은 ˝깡통이 (바다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라캉)가 (그 장면으로부터) 떠 있다˝고 읽을 수 있도록 표현하고 있다. 라캉은 자기 자신이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 즉 그 장소에서 붕 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깡통을 통해서- 뱃사람들은 살기 좋은 세계와는 분리되어 있고, 공업 상품으로서의 ˝정어리 통조림˝을 통해서 - 알게 된 것이다. (222-225)

  • 향락사회론마쓰모토 타쿠야 지음, 임창석.임창석.이정민 옮김에디투스 2024-06-13장바구니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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