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마요르가의 희곡이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관심이 가서 읽어보기로.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 이야기 없는 인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 - 후안 마요르가

[맨 끝줄 소년]의 한 문장. 이걸 좀 꼬아서 이야기하자면 이야기가 없는 인생은 없다. 행복한 가정의 이야기가 모두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나 불행에 있어서는 그 형태가 모두 제각각이라는 건 도끼 오빠 말이지만 그 행복과 그 불행에 있어서 각각의 다양성은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이야기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그걸 정할 수 있는 건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당사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후안은 '이야기 없는 인생'은 가치가 없다고 하지만 인생사 자체에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건 당연지사. 다른 이들이 내 인생을 어떻게 읽을지, 내가 내 인생을 어떤 식으로 기록하며 읽을지는 절대적인 스텝은 아니고. 읽고 쓰고 해석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시간과 등장인물들에 따라 다양하기 그지 없고. 며칠 전 완독한 권영민의 [주피터 초상]을 펼쳐든 건 이상 때문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나는 역시 김기림에게 더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구만 이것도 펼친 후에 다시 깨닫게 된 거고. 아침에 눈을 뜨고 의미 없는 말로 내 공간을 채울 일은 아니로구나 알았다.

프리다 맥파든을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읽고 밑줄. 새벽 여섯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다섯시 십오분에 눈이 떠져서 침대 위에 누운 그대로 다리 스트레칭을 좀 하고 의도하지 않고 떠오르는 그대로 말을 주고받았다. 천장에서 모래알이 끝없이 쏟아져 열린 목구멍 안으로 들어오면 들어오는대로 그 모래알을 씹어 삼켜야 하는 갈증이로구나 싶었다. 이걸 우울하게만 여길 일인가 싶었다. 누구나 갱년기를 한 번씩은 겪어 나가야 하는 거고 나는 이런 식의 갈증을 몸으로 느끼면서 갱년기라는 터널을 거쳐가는구나 했다. 이 정도로 갈증이 깊을 일인가. 무수한 갱년기 증상들을 스텝별로 거쳐 나가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목이 심하게 마르면 목이 마르는대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미칠 정도로 움직이고 다녔는데 올해는 어쩐 일로 그다지 많이 움직이고 싶지 않은데 그것도 갱년기의 증상 중 하나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러한 부동의 시간이 흐르고난 후에는 또 어마어마하게 움직이고 싶어질 테니까. 그리고 예상은 그런대로 맞아 떨어져서 갈증이 최고조에 달할 때 코끼리처럼 물을 마시고 온몸의 근육이 팽팽해져서 더 이상 용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움직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밀리가 앤드류에게 넌 참 신사로구나, 하니 우리 엄마가 나를 그리 키우셨지, 대꾸하고 아이구 잘 키우셨구만, 응답하니 우리 엄마가 들으면 정말 좋아하시겠는걸, 까지.

여기가 반전이지 싶은 건 정말로 그가 신사인지 아닌지는 후에 드러나는 일이고 그가 그런 식으로 폭력성을 드러내는 게 어린아이였을 때 엄마가 그렇게 키워서 그런 건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뭐 인간이 그렇게 단순하게 어린 시절 폭력성을 접하고 자라면 성인이 되어서도 폭력적인 인간이 된다, 이건 아니겠지만. 확률이 높아지는 거겠지. 며칠 전 지인과 브런치를 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복, 배우자복, 자식복, 친구복 등등. 수순을 매길 일은 아니었으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수순을 매기고 있더라. 어떤 부모를 만나서 어떤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느냐? 어떤 친구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냐? 어떤 스승을 만나 학창 시절을 보내느냐? 어떤 연인 혹은 배우자를 만나 시간을 함께 하느냐? 어떤 자식(들)을 만나 어떻게 사랑을 주고 받느냐? 이게 거의 인생사에 있어서 팔할 이상을 좌우할지도. 하여 프리다 맥파든의 소설 속에서 고립됨에 대해서 경찰이 이야기할 때 그것도 암시가 되었고. 권영민의 소설을 읽을 때에도 이상이 어떤 이들과 친구가 되고 어떤 이들을 만나 사랑을 하는지에 따라서 인생사가 확확 바뀌는데 다 읽고난 후에 꼰대처럼 나도 모르게 아 이래서 인간들을 잘 만나야 하는 것, 이라고 중얼거리고 있더라.

134쪽에 밀리가 프랑스어 하는 앤드류 보면서 반해서 저런 이야기 하는데 아니 왜 어째서 겨우 이십대 후반인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싶어 한참 눈을 끔벅였다. 브리저튼 시즌4에서 베네딕트가 프랑스어 하는 하녀 소피에게 반하는 설정이 떠올랐다. 오 그러고보니 앤드류와 베네딕트, 밀리와 소피의 계급성이 동일하군. 후안 마요르가까지 읽어봐야 알겠지만 통제욕과 애정의 상관 관계가 겹쳐지는. 사랑하면 그 사람 말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따르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니까. 사랑을 받기 위해서 엄마와 아빠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 컴플렉스는 태어나 인식이라는 걸 하면서부터 그저 본능처럼 하게 되는 거고. 하우스메이드 결말이 너무 궁금하지만 참고 오늘 완독하지 않는 것이 오늘 계획이다. 앤드류가 신사인지 야수인지는 아직 소설 속에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신사 모습만 보이기는 하는데 정말 그가 신사인지 야수인지는 마지막 페이지에 닿아봐야 알겠지. 하얀 날개를 가졌다고 해서, 단지 보이는 그 하얀 날개만으로 그를 천사라고 쉬이 단정지을 수 없음에도 언제나 쉬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건 눈 앞에 바로 보이는 그 하얀 날개가 하나의 증명 방식이라고 여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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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3-14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사에게서 그 ‘야수 같은’ 면을 보았을 때 얼마나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자꾸 저거 나쁜 거 아니야, 내가 잘못 들었을거야…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니깐요. 앤드류 가면 곧 벗겨지겠군요. (주의: 가발 아님ㅋㅋㅋㅋ)

수이 2026-03-14 20:46   좋아요 1 | URL
그건 숙녀도 마찬가지일 거 같아요. 그러니까 남녀노소 무관하게 쎄한 걸 마주했을 때는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제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맥락을 잘 읽지 못하고_ 이건 비단 읽기 뿐만 아니라 일상 속의 모든 말과 행동들_ 그 안에서 엉뚱한 이야기할 때도 좀 쎄하더라구요. 그럼 아 쎄해, 일단 도망치자. 밀리도 그 쎄함을 무시하고 신사의 좋은 면모들만 보고 퐁당 했다가 결국 그 본능이 옳았음을 후에 인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