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라브 [학자적임과 민중적임]의 바탕이 된 그리뇽과 파스롱의 세미나에 난 1982년에 참여했어요. 그 세미나는 나에겐 양날의 검이었죠. 사실 랠리가 길게 이어지는 탁구 게임에서처럼 그리뇽과 파스롱이 말을 주고받으면 참신한 공격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더없이 날카로운 사유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죠. 난 그 세미나에서 큰 도움을 받았어요. 그 얼마 전인 1980년에 내가 출간한 [소설에 그려진 마을]에 대해서 비판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이상적인 틀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리뇽과 파스롱이 주고받는 대화가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보이기도 했죠. 난 용기를 내서 경험적인 경우들을 검토하기 위한 발언을 했어요. 조르주 나벨과 농부 작가들의 예를 제시하면서요. 그런데 세미나를 이끌던 두 사람은 그때마다 내 생각을 동정주의 아니면 민중주의로 간주해버리더군요. 그때 난 상징 폭력과 함께 내가 저당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죠. 난 문학을 독학한 사람들이 적법한 상속자들의 문학으로부터 잊혀진 불편함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사실을 분명한 경험적 실례를 바탕으로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생각에 의혹을 심고 싶었어요. 독학자들, 그러니까 농부 혹은 프롤레타리아 작가들이 고유의 적법성을, 고유의 문학적 위계 사다리를 세웠음을, 그 안에서 서로 축성해왔음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중엔 에밀 기요맹처럼 유력 출판사의 인정을 받는 일도 있었고요. 물론, 그런 식의 축성은 그들이 살아가는 지역을 넘어서지 못해요. 하지만 그들은 현지에서는 영광을 누리죠. 나는 문학 영역에서 피지배 문학에 가시성을 부여하는 일이 재평가 시도나 동정주의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글에 대해서는 문학이라는 이름까지 부정하고 배제해버리는 메커니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잖아요.

몇 가지 용어와 개념을 분명히 해주는, 계급 종단자에 관한 샹탈 자케의 책 또한 나에게는 중요했죠. 그녀는 계급 탈주자보다 계급 종단자 개념을 선호해요. 이동의 방향을 미리 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계급 하락과 사회적 상승을 모두 지칭한다는 점에서 좀 더 중립적이고 열려 있는 개념이잖아요. 탈주자라는 용어가 사회적 상승의 궤적을 의미한다고 여겨지는 것과 다르죠. 그런데 난 탈주자가 덜 정교하지만, 그래서 종단자보다 더 이해하기 쉬운 것 같아요. 당신 말대로 샹탈 자케는 "배신" 혹은 "변절"에 대해 말하죠. 사실 난 단 한 번도 내 계급을 배반했다는 느낌이 든 적이 없어요. 그 계급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여전히 내 계급에 밀착되어 있는 거죠.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농촌사회학 연구소에 들어가면서, 벗어나고 싶었던 농촌 세계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게 되기도 했고요. 조사 과정에서, 브누아 코카르의 책 제목에서 빌리자면, "남아 있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이 자기들이 살아가는 지역의 자원과 악조건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 수 있었죠. 그리고 또 정치 영역에서의 참여와 신념들이 나로 하여금 배신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어요. 하층 계급을 위한 투쟁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만일 정말 내가 배신한 거라면, 그에 대한 속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떠나온 농촌에 진 빛을 갚는 느낌인 거죠. 그렇게 하려면 저기 높은 곳에 있는 부르주아 계급의 시선에 걸려들지 말아야 하고요. 결국 지금의 나는 객관적으로는 부르주아 계급에 속하면서도 그 계급의 가치와 행태를 검토하고 있어요.

에르노 어느 순간에 자기 스스로를 탈주자라고 느끼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내 생각엔 단계적으로 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나에겐 절대적으로 분명한 중요한 순간이 있었어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안시에 살게 되면서 부모님을 못 만난 지 2년째 되었을 때였어요. 한 번도 못 만난 건 물론이고,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죠. 부모님 집에는 전화가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찾아갔는데, 어째서 그때 나 자신이 탈주자로 느껴졌을까요? 내 부모의 현실이 단번에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일 거예요. 이전에는 이미지로 떠올렸다면, 그때는 노르망디 억양, 말하는 방식, 다른 사람 말을 자르기, 감정을 표현하는 강렬한 말들, 거친 동작, 모든 게 그대로 나타난 거죠. 부모님 가까이 살 때는 자각하지 못하던 것들이었어요. 사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나 그대로였죠. 똑같이 정겹고 극성맞았어요. 내가 달라진 거죠. 내 부모를 나의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바라보게 되었고, 내 부모가 민중 세계에 속했음을 드러내는 것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부엌에 같이 서 있는데, 그래요, 여닫이문으로 카페와 이어진 부엌이 너무 좁고 초라해서 마음이 아팠어요. 그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냉장고도 없고 욕실도 화장실도 따로 없었죠. 그땐, 그러니까 1960년대에까지도 그런 집들이 있기는 했지만, 점점 줄어들던 때였거든요. 말하자면 그때의 느낌은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나는 저들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물론 애정이 있었고, 아버지는 좋아 어쩔 줄 몰라 하고 어머니는 내 아들에게 달려들었죠. 하지만 아이가 자기가 왜 여기 와 있는걸까 어리둥절하면서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난 내 세계가 바뀌었음을 깨달았어요.

일종의 사회적 현현이라 할 수 있을 그런 순간들은 쉽게 찾아오지 않죠.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가능하니까요. 영화 <레벤느망>에서 임신한 상태로 부모를 보러 간 안이 같이 밥을 먹으면서 우스운 라디오 방송을 듣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안은 침묵을 지키잖아요.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십대 때 옆에서 라디오 뤽상부르에 나온 풍자만담가의 이야기를 듣곤 하던 부모님이 생각났어요. 난 그 장면이 계급 탈주자인 대학생 여자아이를 아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 아이의 침묵은 '나는 더는 저들과 같지 않아. 난 저런 걸 들어도 웃기지 않아' 같은 거죠. 혹은 '내가 임신할 걸 알게 된다면.......', '나는 내 어린 시절로부터 너무 많이 멀어졌구나.......'이고요. 내 생각에는 돈보다는 지적이고 문화적인 획득이 계급 탈주자를 만드는 것 같아요. (104-109)

에르노 난 내가 정신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글을 쓰느라 긴 시간을 보내기는 하지만, 그리고 글쓰기 '노동'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글쓰기가 사치라고 생각해요. 내가 주변에서 지켜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보이는 노동에 비해 글쓰기는 사치라는 생각을 사실 난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장을 보러 마트에 가서 계산대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반복적인 동작을, 그 여자들이 들어 올리는 생수병 묶음을 보면서, 난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만일 내가 저 일을 해야 한다면? 그러면 난 스무 살에도 저 일을 해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죠. 심지어 쉰 살까지 그 일을 하는 여자들도 있는데 말이에요. 1960년대에 장 피에르 샤브롤이라는 작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스스로 육체노동자와 똑같다고 확신하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고단하고 때로는 위험한 일부 육체노동을 어떻게 따뜻한 곳에서 책상에 앉아 하는 글쓰기와 비교할 수 있겠어요? 나는 내 사촌 자매들처럼 공장이나 재봉 작업실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너무나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그러니까 스무 살경에, 난 노동에 따라 보상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주어진 문제들도 다르고요. 물론 그렇다고 몸이 아무 상관 없는 건 아니죠. 보다시피 나는 곧 여든 두 살이 되고, 이미 정형외과 수술을 몇 차례 받았고 걷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요. 하지만 내 가족의 다른 여자들과 달리, 내 어머니와 달리, 육체적 마멸과 영양 부족의 징표가 몸에 남아 있지는 않죠. 나에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몸이 아주 중요한 문제였어요. (128-129) 

엘레나 페란테 다시 읽어야겠네. 계급 탈주가 계속 눈에 걸리는 건 다름 아닌 내 상황과 밀접하게 맞닿아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건 복합적인지라 지금 단순하게 계급 하락, 상승 이런 걸로 뭉뚱그려 말할 수는 없다. 얼기설기 엮여있기 때문에. 계급 상승을 했다고 축하 인사를 받을 때에도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이게 과연 계급 상승의 길인가 갸우뚱 고개를 모로 세우고 이상하다 이상하다 느꼈을 때가 잦아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들과 워킹맘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모임을 갖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뭔가 되게 비루하네, 라는 걸 수없이 느낀 까닭도.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계급 상승에 대한 걸 뭉뚱그려 은유적으로 비유적으로 드러내는구나 싶어서 그랬던건가 싶기도 하고. 집의 자가 소유 여부와 타고다니는 차의 레벨과 명품 가방과 남편의 직업. 한때 독서모임에 드나드는 동안_ 모두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고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게 신기해서 당시 친하게 지내던 언니에게 왜 그런 거야 하고 물어보니 이 독서모임은 모두 남편이 평균 이상의 직업을 지니고 있는 유한 마담들만 참석하고 있으니까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거지, 라고 해서 아 그런가, 놀라웠던 기억도. 그러고보니 당시에 모임의 한 멤버였던 언니도 나만 학원 강사야, 우리 남편만 샐러리맨이야_ 노상 입에 달고 다녔다. 하층민이 이런 모임에 참석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라면서 자조적으로 술 마실 때 자주 이야기했던 기억 난다. 이것도 조금 정리를 해두는 편이 낫겠다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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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2-15 14: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 페란테랑 에르노 딱 알아보는 내 안목ㅋㅋㅋ!!!

언냐 내가 맨날 하는 말 있죠? 과정을 써두라고! ㅋㅋㅋ 해석은 조금 지나서 더 좋은 언어, 렌즈가 생기면 그때해도 되고요.

그나저나 <아니 에르노의 말> 진짜 미쳤지 않습니까? 저 읽다가 너무 지적이라서 잠깐 덮었습니다. 미치도록 지적이다…

수이 2023-12-16 14:04   좋아요 1 | URL
페란테랑 에르노랑 공쟝쟝 알아보는 내 안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