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명예 민음사 모던 클래식 41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일 문학계의 흐름을 보다.
 
  독일의 문학계에서 작가 '다니엘 켈만'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젋기 때문만은 아닌듯 싶습니다. 30대 중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완숙미가 넘쳐나며 재기있는 표현법과 아이디어가 곳곳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의 기능에 주목한 '다니엘 켈만'은 통신 기술이 중심이 되는 세계 속에서 점차로 흐릿해지는 인간의 정체성을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문학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숙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끝업슨 질문을 '다니엘 켈만'은 현대사회의 통신기술에서 접근하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력을 제시하여왔던 독일 문학계는 '다니엘 켈만'이라는 젊지만 뛰어난 인물의 등장으로 여전히 푸르름을 자랑하는듯 싶습니다.
  <명예>는 현재 영화와 예정 중인데 영화로 나온다면 각각의 에피소드의 복선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기대됩니다.
 
  마트료시카 인형
 
  <명예>에 수록된 에피소드는 9편입니다.(목소리, 위험 속에서, 로잘리에가 죽으러가다, 탈출구, 동양, 수녀원장에게 답장하다, 토론에 글 올리기,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 위험속에서) 9편의 에피소드는 전체의 구성안에서 독립된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작품들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작품 속 인물들의 연관성을 생각하기는 약간 어렵기도 합니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때로는 다른 작품에서 주연 혹은 조연 그리고 실루엣등으로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예를 들자면 첫번째 작품인 목소리의 주인공인 에블링이 역할 바꾸기를 시도하게된 계기가 되는 휴대폰 넘버의 주인공은 '탈출구'편에서의 주연인 랄프 탄너입니다. 그리고 랄프 탄너는 두번째 수록된 위험 속에서 포스터 속 인물로 등장합니다. 탈출구 편의 랄프 탄너와 목소리의 에블링의 휴대폰 넘버가 바뀌게된 계기가 된 인물은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 편에등장하는 화자입니다. 한편의 이야기를 읽고 다음편을 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그리고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유사하면서도 상이한 배경과 전개방식을 보입니다.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러시아의 민속 인형으로 인형안에 또 다른 인형이 들어가있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처럼 겉과 밖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이야기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짧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몰입감을 더욱 높여주는듯 싶습니다.
 
  허구와 현실 그리고 뒤바뀌는 평행세계
 
  <명예>속 평행세계를 읽다보면 최근 출간된  민음사 모던 클래식의 또 다른 작품들인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 인생들>과 <대기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현실들>이 생각납니다. 서로 만날 수 없는 두 세계가 연결되면서 나타나는 혼란은 허구와 현실을 뒤바꾸면서 작품 속 등장인물들과 그 밖에 있는 독자들에게 혼선을 더합니다. 즉 어디까지가 이야기 속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가 애매모호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로잘리에가 죽으러 가다의 경우가 더욱 애매하죠)
  통신매체들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고민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정체성을 지우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이러한 주제는 목소리편과 동양편 그리고 탈출구 편을 보시면 좋을듯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평행세계와 등장인물들 그리고 명예가 가지는 관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과 일치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듯 싶습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는 명예는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대상의 모습과 인정된 모습들입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통신의 두절과 혼선가운데 빚어지면서 더욱 가속화되어 존재가 잊혀지고 사라지기도 하며 심지어는 해체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작가는 무거운 주제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체성이 지워질지도 모른다.
 
  <명예>에 등장하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존재의 부존재화와 관계된 주제는 무겁지만 그 무게가 가볍게 덜여져서 독자들에게 전달됩니다. 마치 한편의 블랙코미디와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희극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가져봅니다. 우리는 모두 한권의 책에서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찾을 수 있겠지만 반대의 주제를 서로 다르게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작가인 다니엘 켈만이 의도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 아니었을가합니다. 평행세계가 서로 교차하지만 그 안에서 지워지는 것들에 대한 공통된 현상을 저는 모두가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니엘 켈만'이 표현해낸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가 창조해낸 세상은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우리 모두는 '다니엘 켈만'이 만들어낸 인물들의 삶을 반복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돌멩 2013-05-05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0
리브카 갈첸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새롭고 흥미로운 실험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이라는 독특한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다양한 과학적 요소들이 활용된 실험정신이 담긴 심리 소설입니다. 미국의 신예 작가 가운데 유망주인 '리브카 갈첸'은 소설 속 주인공 레오 리브갈첸의 불안정한 심리를 기상학과 연관하여 묘사합니다. 기상학은 주인공이 처한 현실을 설명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작가의 새롭고 흥이로운 실험은 분명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심리소설이 많이 등장하는 가운데 '리브카 갈첸'만의 독특한 가정환경과 실험정신은 그녀가 왜 '미국문단을 이끌 40세 이하 대표적 신인작가 20인'인지를 보여줍니다. 

  고도의 심리적 상황에 직면한 독자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느날  자신의 집에 등장한 낯선 여인은 자신의 아내와 똑같이 생겼지만 주인공의 직감은 그녀가 아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이 아내가 아니라는 심증이 강해질 수록 그는 자신의 아내가 어디로 갔는지를 생각할 수록 주인공은 불안정한 모습을 보입니다. 불안정한 심리상태인 주인공의 선택은 진짜 아내를 찾자입니다. 정신과 의사였던 주인공 레오가 진짜 아내인 '레마'를 찾아 가는 여정을 통해 독자는 일련의 현상과 비밀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서고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주인공 '레오'가 겪는 심리적 상황을 '카그라스 증후군'이라고 말합니다. '카그라스 증후군'은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사람, 동물 심지어는 사물이 가짜로 바뀌었다고 믿는 증상입니다. '카그라스 증후군'환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주변에서 인지되는 모든 정보를 끌어 모아 자신을 속인 것을 증명하는 증거로 활용합니다. '레오'의 아파트에 들어선 여인이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작은 행동 하나 그리고 대상의 외형상 모습에서조차도 그것이 자신이 알던 진짜 아내 '레마'가 아님을 증명하는데 사용합니다.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현상들>의 제목에서 현상과 관계된 것을 마음으로 바꿔보면 책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듯 싶습니다. 즉 '마음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픔 마음들'이라는 제목으로 바꿔서 책을 본다면 화자인 주인공 '레오'의 심리적 불안과 묘사가 매우 치밀한 그리고 고도의 심리적인 혼란 유발을 일으키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것과 믿을 수 없는 것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은 화자가 생각하는 믿을 수 있는 것과 믿을 수 없는 것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면서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였던 주인공은 자신이 담당했던 환자의 실종을 끌어와 자신의 아내가 뒤바뀌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해결할 수 있는 단초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진짜 '레마'와 자신이 치료하던 환자 '하비'를 찾던 중 '하비'의 망상이라고 생각했던 왕립 기상학회 비밀요원을 확인하는 모습들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믿을 수 있는 사실들과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을 더욱 혼미하게 만듭니다. 
  '카그라스 증후군'이라고는 말하지만 이는 동시에 정신과 의사였던 주인공 '레오'의 상태를 이해하는 하나의 사실일뿐 진실의 열쇠를 찾아가는과정은 정말 바뀐게 아닐까 혹은 착각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독자를 안내하는 화자의 불안정한 심리상태와는 달리 작품속 기상학 이론은 주인공의 심리적 상황을 정확히 대변해주고 있는 믿을 수 있는 정보입니다. 
  주인공의 마음과 심리적 갈등을 이끌어 주는 기상학 이론들과 논문은 주인공의 발걸음을 미지의 낯선 곳으로 인도합니다. 복잡하게 얽힌 소재의 연결에서 기상학은 작가의 정신의학, 정신분석학과 더불어 작품 속 주인공과 독자를 안내하는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연예 그 미묘한 심리와 '카그라스 증후군'

  주인공 레오가 빠져버린 혼란 스러움 가운데서 독자는 '레마'를 향한 강한 집착을 볼 수 있습니다. 진짜 '레마'를 향한 마음이 과연 허상에서 비롯된건지 아니면 진짜에서 나타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독자 모두가 각각의 판단아래에서 내려야할 결정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왜 이렇게 표현하게 되었는지를 말하기에는 주인공의 마음의 시발점을 찾아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과 불신 그리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약화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카그라스 증후군'에 빠진 주인공이 나타났다면 '레마'의 고향을 향한 여정과 진짜 레마를 만나기 위한 여정의 끝인 '무의식'의 땅 파타고니아로의 여정은 아내에 대한 집착과 사랑에 빠져버린 주인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예의 복잡한 그리고 미묘한 심리상황에 대한 묘사가 돋보이는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일깨워 줍니다. 
  진짜 아내를 만났는지 혹은 만나지 못했는지를 풀어 내지 않는 것은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서 남겨놓습니다. 한가지 밝힐 수 있는 것은  책 속의 모든 내용을 어느 하나의 이론과 사고로 해석하기 보다는 화자와 함께 녹아들어 내면의 복잡함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기회로 삼을때 책의 진정한 즐거움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이상의 단서를 둘 이하로 만들고 제한 시키는 작업가운데 발견할 수 있었던 왜곡된 현상과 이해 그리고 해석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가장 높이 사지만 독자들은 또 다른 평가를 내리시리라 생각합니다. 현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고 훗날의 고전으로 평가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책을 만난다는 것은 독자로서 언제나 즐겁고 기쁜 시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010년 2학기 교육학 주관식 시험문제 가운데 '유리천장'을 묻는 질문이 떠오른다. '유리천장'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대한민국의 가부장적이며 남성중심적인 부분을 드러내며 동시에 여성에 대한 닫혀있는 사회를 보여준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지위적 평등이 일각에서 강조되지만 전체적인 사회 흐름은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인식이 보여진다. 시험문제 속 '유리천장'은 아직도 그 탄탄한 두깨를 자랑하며 많은 여성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고 있다. 가정, 회사, 사회, 학교, 정치등 여러 분야에서 만나게 되는 '유리천장'이 언제쯤이면 사라질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리천장'이 수 많은 여성들의 꿈을 가로막고 그녀들의 자아와 정체성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벽을 치워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 등장하는 여인 '에벌린'은 사회가 제시하는 모범적인 여성상에 순응한 삶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우울하다. 그녀의 삶이 중년에 도달하기 까지 걸어온 삶의 길은 '자신이 부정된 삶'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뒷바라지와 아이를 키우며 요양원의 시어머니를 돌봐왔던 그녀의 삶에는 그녀 자신만의 삶의 시간이 없었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동정심을 갖게 만든다. 앞서 말했던 '유리천장'이 그녀의 가정과 주변을 둘러처친 벽이 되어 그녀를 감옥아닌 감옥에 가둬버린 것이다. '에벌린'의 우울함과 스트레스를 위로해주는 것은 사탕과 초콜릿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요양원에서 만난 한 유쾌한 노부인 '스레드굿'과 우연한 만남으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노부인의 기억 속 1920년대 미국 남부에 위치한 '휘슬스톱 카페'에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휘슬스톱의 카페'의 특별함의 중심에는 스레드굿 부인의 시누이인 '이지'와 그녀가 사랑했던 '여자 루스' 가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루스가 결혼함으로써 잠시 위기가 오지만 '루스'의 불행한 결혼생활 속에서 '이지'가 그녀를 데리고 나옴으로서 운명의 사랑은 더욱 발전하게 된다. 두 사람의 운명같은 사랑은 '휘슬스톱 카페'를 함께 하는 가운데 드나드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눠진다. 그리고 전설적인 이야기를 듣게된 '에벌린'은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변화를 맞이한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보는 동안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헌신과 희생이라는 영역은 분명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녀들에게 지운 짐은 이제 일방적인 강요에서 지워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차고 거침없는 '이지'와 '휘슬스톱 카페'에 모여있는 이들의 공간에는 순간순간이나마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이 거둬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해방의 느낌이야 말로 여성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보는 이에 따라 페미니스트들을 옹호하는 글이될 수도 있다. 그리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글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이야기들은 다양하고 진부한 소제를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편견으로 점철된 사회가 여성들을 얼마나 갑갑하게 억누르는지를 보여 준다.  

  시험 문제로 등장했던 '유리천장'을 치울 준비를 해야겠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것들을 좋아하지만  나는 아내의 해맑은 미소를 좋아한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당당하고 용감하게 살아온 '이지의 삶'을 받아들인 '에벌린'의 변화가 내 아내와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기를 소망하기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편협한 사고와 구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무나 많은 시작 민음사 모던 클래식 37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짙은 갈색과 표지의 수많은 열쇠들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민음사 모던 클래식의 주제 즉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과거의 고전이 아닌 현대의 미래 고전이 될 다분한 가능성이 나타나는 작품들이 모인 시리즈. 민음사 모던 클래식의 작품들은 이러한 가능성이 나타난 현대 진행형의 고전들이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시작들은 이러한 모던 클래식의 큰 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존 맥그리거는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을 통해 2002년 가장 어린 나이에 유일하게 처녀작으로 맨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인물이다. 2003년 서머싯 몸 상과 베티 트라스크 상을 수상하는 그는 이 외에도 여러 굵직한 대회에서 수상후보로 등록된 인물이다. 존 맥그리거의 두 번째 소설작품인 『너무나 많은 시작』역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는데 이는 그의 작품이 단발성 완성이 아닌 지속적인 완숙미를 보여 준다. 2010년 세 번째 소설 『개들조차도』는 아직 출판되지 않았지만 이미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과 『너무나 많은 시작』이 4개월 차이로 나온걸 보면 2011년 모던클래식 시리즈 가운데 소개되지 않을까 싶다.

 

작품의 시작은 작품 속 주인공 데이비드의 어머니, 메리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속에 그녀의 가족 또한 있었다. 고용시장을 통해 계약을 맺고 장기간 근속을 하는 모습은 그녀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온갖 궂은일을 하며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다른 이의 손에 맡긴 채 고향으로 향하는 메리의 모습.

서장은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이 연결될 곳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진부한 듯 보이면서도 『너무나 많은 시작』이 진부하지 않은 이유는 작품이 다루고 있는 소재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 ‘뿌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성장한 데이비드가 가족을 이루고 단란하게 살아가면서도 그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진술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장면은 작품의 반전이 아닌 연결점이다. 독자들을 사로잡는 작품의 매력은 과거를 알게 된 청년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미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뿌리가 된 데이비드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수많은 편린들을 퍼즐 조각처럼 모아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일련의 시간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작품은 주인공 데이비드가 모은 수많은 퍼즐 조각들이 나열된 가운데 단편적인 기록들을 나열하여 ‘뿌리’를 향한 여정의 수많은 시작 포인트를 펼쳐 놓았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낯설고 생소하지만 독특하고 흥미로운 독창적인 방식이다. 자칫 무겁게 가라앉을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시작』의 글의 전개 방식은 여러 편의 에세이나 시를 모아둔 것과 같은 느낌을 더해준다.

 

작가 존 맥그리거는 삶의 전체가 흔들리고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근본적인 기반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은 누구나 ‘뿌리’를 통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생명을 엿보는 순간 우리는 삶의 지지기반에 대해서 다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조각 조각 쪼개어진 수많은 단편들이 맞춰져가며 전달되어지는 깊은 메시지들은 시간과 공간을 아울러서 전 세계적으로 작품이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잘 다듬어진 삶의 노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8
율리 체 지음, 이재금.이준서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주이론에 관한 뛰어난 물리학자인 제바스티안과 오스카 그리고 형사 실프를 통해서 펼쳐지는 추리의 유희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이하 실프)은 독일 문학의 특징은 특유의 철학적 논지와 사색 그리고 이성적인 절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저자 율리 체는 뛰어난 글 솜씨와 지적인 영역확장은 독자로 하여금 단단한 논리의 전개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게 만든다.

<실프>는 분명 추리소설이지만 추리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작품 속 살해 동기와 증거 그리고 상황은 추리소설 작품을 읽어 본 이들에게 이미 범인은 이 사람이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게 해준다. 탄탄한듯 보이는 살인 교사는 우연이라는 변수에 의해서 뒤틀리고 망가진다. “우연은 인간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의 이름입니다.”라는 형사 실프의 확고한 진술처럼 작품 속 우연함은 완벽한 살해사건이 아님을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그렇기에 완벽함 뒤에 숨은 범인을 찾아 나가는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모습을 이 작품에서는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율리 체가 보여주는 탁월한 심리묘사와 이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추리의 유희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작품 전체에는 작가 율리 체의 유희가 펼쳐진다. 논리의 유희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제바스티안과 오스카 두 물리학자는 우주이론을 가지고 논쟁을 벌인다. 또한 형사 실프와 그의 후계자인 리타 스쿠라는 하나의 사건을 둘로 나누어서 서로 논쟁을 벌인다. 심지어는 작품의 시작에 해당하는 살해 사건의 계기인 벌어진 사건과 벌어지지 않은 사건은 독자에게 앞으로 펼쳐질 유희의 즐거움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작가 율리 체의 사고를 거쳐 정제되어 손 끝을 타고 기술되어져 독자들을 끌어 당긴다. 단순히 무겁고 어려운 추리가 아니다. 작품은 추리를 유희의 단계로 이끌어 내어 독자로 하여금 머리아픈 소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든다. 이미 독일 문학의 대가로 발돋움 하고 있는 율리 체의 <실프>는 위트있는 휴식처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생동감있는 문장의 구성력과 논리적 전개만 보더라도 <실프>가 뛰어난 작품임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아마도 그녀의 작품들은 시간이 흘러 고전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될 작품을 먼저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시간선상에서 작품을 만나게 되는 기쁨을 누린다. 즉, 작품 속 타임머신 살인사건과 비교하자면 우리는 타임머신 독서를 즐길 수 있는 혜택을 입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사고, 내연의 관계, 애증, 갈등, 교살, 열등감, 우월감, 시간의 본질을 의심케 하는 완벽함과 그 완벽함을 무너뜨리는 우연의 역할 그리고 이 모든것을 유희로 버무리는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는 분명 현대 작가임과 동시에 후대의 명작가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실프>는 머리 속 상상의 세계 가운데서 펼쳐지는 작품이 아니다. 이론과 현실을 절묘하게 묶어서 삶의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영역까지 확장된 작품이다.


더블 싱크는 제거되어야 한다. 이 말은 단순히 물리학과 시간의 본질 그리고 작품 속 범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의 글을 인용하면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대립 명제 가운데로 내몰리어 어느 한쪽을 선택하거나 양자 사이의 갈등을 제거하고자 하는 인간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한 현대인의 모순을 잡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