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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평점 :
어떤 연구기관이 기억을 분리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있다. 좋은 기억은 살리고 나쁜 기억은 지우고. 자기가 원하는 기억만 살리는 그런것이 실현된다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는거보니 제대로 안되는거 같다. 하기야 인간의 두뇌가 그렇게 만만한게 아닌데 그렇게 딱딱 분리해낸다는게 쉬운건 아닐터. 나쁜 기억이나 좀 덜 기억나게 해준다면 좋을텐데 그것 조차 참 어렵다.
이렇듯 기억이란건 우리가 의지로 어떻게 할수있는 것은 아닌데 여기 특이한 기억 형태가 있다.
눈에 보는건 무조건 전부 다 기억하는것. 이른바 과잉기억증후군. 마치 사진으로 전체를 딱 전사하듯 그냥 보면 다 기억하는거다. 그냥 이론적으로 만든줄 알았는데 실제로 존재한단다. 공부할때는 참 좋다고 여기긴했는데 세상에 좋은일만 있는게 아니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쁜 기억도 있을테니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이게 축복인지 저주일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그런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키가 2미터 전후의 장신에 몸무게는 100킬로가 넘는 거대체격의 소유자인 전직 형사 데커. 그런데 거의 죽지못해 살아가는것처럼 완전 넝마에 거의 노숙자다. 그야말로 억지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에게 과잉기억증후군은 그야말로 자신을 갉아먹게 하는 증상이다. 그가 그렇게 거지처럼 살게 된것이 끔찍했던 기억때문이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의 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당한걸 목격했고 그 기억이 오롯이 떠오르니 그야말로 살기가 싫은건데 무엇때문에자신이 살아있는지 그 자신도 모른다. 아마 범인을 잡아야하다는 무언의 몸부림이 있어서 그랬을지 않았을까.
그렇게 무의미한 세월을 보내던 데커에게 어느날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온다. 범인은 자신을 데커가 무시했다는 이유로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데커에게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그런일도 없었고 범인의 얼굴도 본적이 없다.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그에게도 기억의 헛점이 있을까. 그가 과연 범인일까. 한편 범인이 잡힌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근처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계기로 데커도 범인을 잡는데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어처구니없는 하나의 불씨에서 그 거대한 피의 계획이 세워졌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잘 쓴 스릴러의 특징대로 이 책은 무척이나 흡입력이 좋다. 그냥 막 책을 읽어내려간다. 뒤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막막 책장을 넘기게 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특이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제일 매력적이다. 전직 형사에 그전에는 미식 축구까지 했던 우람한 체격의 데커는 처음에는 형편없는 몰골로 등장한다. 그가 다시 맨정신을 차릴꺼란 생각도 못하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의 살인사건현장. 정신없이 앞부분을 읽고 난뒤에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되는데 그 덩치 크고 굼뜬 주인공이 참으로 섬세하고 세밀하게 수사를 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우면서 아이러니하다. 주인공이기 때문이겠지만 그의 캐릭터가 마치 활어처럼 잘 살아있고 입체감있게 그려져서 더 내용이 살게 된것이 아닌가 싶다.
사건의 치밀함도 이 책의 재미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다. 주인공도 몇번이나 헛물을 켤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사건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한꺼풀 한꺼풀 벗기면 나올듯한 진실이 또다른 벽에 부딪치게 되고 그런 악조건을 헤치고 결국 진실에 이르게 되는 전개가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거 같아서 참 좋았다. 책을 덮고 전체 내용을 상기하면 마치 복잡한 퍼즐을 푼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정교한 미로를 빠져나왔다고 할수도 있을 정도로 진이 빠지면서도 흥미로왔던 책이었다.
수사를 도왔지만 형사신분은 아니었던 데커가 책 말미에 새로운 수사팀에 합류할수도 있음이 그려지는데 분명 시리즈로 나올 사전 포석이다. 하긴 이 독특한 능력의 인물을 그냥 일회성으로 썩히기에는 아까우니깐.
그나저나 초장부터 주인공이 그렇게 처절하게 불쌍하기는 근래 들어 처음이다. 아마 그 설정이 두고두고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하지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