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숨은 공신이라고 하는게 적절한지 모르겠다. 유럽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들에게 메디치 가문이 어떠한 가문인지 아는사람이 많을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르네상스를 들어본 사람들에게 메디치 가문은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다. 얼마나 대단한 가문이었는지를 잘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문 덕택에 르네상스가 더 풍요롭게 펼쳐졌는지도 잘 모를것이다. 어쩌면 반 정도 숨은 공신이라고나 할까.
사실 르네상스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학자별로 여러 주장이 있다. 3-4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전반적으로 르네상스의
분위기가 퍼져나간걸로 기준을 정한다면 17-18세기가 아닐까 싶다. 중세를 밀어내고 인간을 중심으로 한 인문주의 르네상스. 전 분야에 걸쳐서
르네상스가 일어났는데 특히 예술쪽에서 오늘날에도 이름을 떨치게 되는 많은 작품들이 탄생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이런 예술활동을 하는데는 돈이
많이 든다. 쉽게 밥먹고 살수가 없는 직업이다. 그것을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면서 르네상스를 이끈 것이 바로 메디치 가문이다. 물론 그런
후원세력이 이 가문만 있었던것은 아니지만 메디치처럼 지속적으로 영향력있게 후원했던 가문은 또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메디치가문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인데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것은 메디치 가문 전체에 대한 역사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메디치 가문이 어떤한지 대략적인 서술을 다룬 책도 있고 중간중간 큰 이름을 날린 인물을 이야기하는 글도 있지만 이 책은 특이하게 메디치 가문 전
역사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메디치 가문 전기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야기도 풍부하고 내용이 방대하다.
메디치 가문이 역사에 드러난것은 1400년부터라고 한다. 이때부터 350여년동안 유럽역사에서 아주 유명하고 중요한 가문이 되는것이다. 이
가문은 15-16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 공화국을 중심으로 번성했는데 이 가문사람이 피렌체의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면서 실질적인 피렌체 공화국의
지배가문이 되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들이 어떤 귀족으로 출발한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평민출신이었다는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권력을 쥔 가문이 아니라
금융업으로 시작해서 점차 세력을 길러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시작이 가진자가 아닌 것이라는게 이 가문이 수백년동안 많은 분야에 큰 공헌을 하게 되는 단초가 아닐까싶다. 자신들의 출신을 귀족으로
탈바꿈시키지 않고 평민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변하게 되었다. 그래서 평민들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고 그것이 피렌체의 전체적인 경쟁력이 높아지게
된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귀족층을 공격만한건 아니고 귀족과 평민의 중간에서 전체적인 조율을 잘 하게 되었다. 그런 신뢰의 입장에서 피렌체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된것이란 생각이 든다. 메디치가는 교황쪽과의 거래로 많은 부를 쌓았는데 그것을 자신들의 부로 담아두지 않고 많은
분야에 후원하고 기부를 해서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크게 일어나는데 견인차를 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350년간 13대를 이어서 내려온 메디치 가문의 여러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서 어떻게 피렌체를 부강하게 하고 후원이나 기부를 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그들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중간 중간에 자료 그림이 있어서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는것도 좋았다.
유럽 역사에서 많은 명문가가 있다. 오랫동안 제국을 경영하고 수많은 왕과 왕비를 배출했던 합스부르크 왕가같은 힘세고 권력있고 권위 있는
가문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메디치 가문이 더 빛난다는 생각을 한다.많은 명문가들이 역사책에나 나오지만 메디치 가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책과 예술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보여준 일종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그 어떤 가문도 쉽게 흉내내지 못한것이기에 더
빛나는것이 아닐까 싶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메디치 가문. 이 가문이 어떻게 르네상스의 공로자가 되었는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알수 있게 된
계기였다. 번역도 매끄럽고 글도 어렵지 않아서 르네상스의 역사를 알기위해서는 꼭 읽어야할 책이란 생각이 드는 좋은
책이었다.